▲ 지난 18일 오후 목동 야구장에서 부상을 털고 복귀에 성공한 김상현과 인터뷰를 가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평소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김상현도 생후 80일이 지난 아들 도윤이 얘기를 꺼내자 이내 곧 환한 미소를 띠며 아들 자랑을 한다. 김상현을 만나기 전 이미 그의 미니홈피에서 아들 사진을 본 기자는 진심으로 “아들이 너무 잘생겨서 딸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얘기를 꺼냈더니 “저를 안 닮아서 정말 다행이죠”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빠보다는 엄마를 닮았고 그 덕분에 팬들이 자신보다 아이를 더 좋아한다고 답한다.
아빠 김상현. 아이가 생김으로써 달라진 부분에 대해 묻는 걸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진정한 가장이 됐어요. 책임감도 크죠?
▲그럼요. 일단 제가 왜 야구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누구를 위해 야구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아이한테 자랑스런 아빠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빠가 야구 잘하는 선수였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기도 하고요. 생각이 많아지게 되더라고요.
▲ 김상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캡쳐 모습. 아들 도윤이의 50일 기념사진을 올려놓았다. |
▲부상은 핑계일 뿐이에요. 시즌 초반에는 별로 아프지 않았어요. 감각이 떨어져서 그런지 타격감이 안 살아나더라고요. 솔직히 지난 시즌을 치르면서 올 시즌이 힘들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관리를 제대로 못한 거였죠. 제 탓이에요. 부상을 당한 것도 제가 못한 탓이고요.
―부상 중에 팀이 16연패에 빠져 있었어요. 지켜보는 심정이 복잡했죠?
▲자책감이 컸어요. 제가 조금만 조심을 했더라면,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고 몸 컨트롤을 잘 했더라면 팀이 16연패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물론 제가 없어도 게임을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작년에 좋은 성적을 보였던 선수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니 팀 입장에서 얼마나 아쉬움이 컸겠어요. 감독님, 선수들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일부러 KIA 게임을 보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재활 기간 동안 약점으로 지적된 변화구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웠다고 들었어요.
▲우리 팀 경기를 안 봤다고 했잖아요. 그러다보니 다른 팀 게임을 많이 보게 됐고 덕분에 모니터를 할 수 있게 됐죠. 다른 팀 투수들이 변화구를 어떻게 던지는지, 어떤 선수가 어떤 투구폼으로 변화구를 던지는지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까 복귀 후 도움이 되더라고요. 눈으로만 공부했어요. 몸으로 (변화구에 대해) 연습할 정도였으면 1군으로 올라갔게요(웃음)?
―지난 시즌 MVP 수상 등 타자로서 누릴 수 있는 상들은 죄다 차지했어요. 모든 시상식들이 끝나고 한동안 허탈하진 않았어요?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었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더 컸어요. 다음 시즌에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지금의 이 영광이 거품이라느니, 반짝 효과였다느니 말들이 많을 게 분명했으니까요.
―그런데 걱정한 대로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면서 이런저런 소문들도 많았죠?
▲‘역시 김상현은 반짝 선수였어’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1년 반짝 선수였다고 해도 좋아요. 8개 구단 선수 중에서 1년만 이렇게 반짝이었음 하는 선수가 정말 많을 테니까요. 소문들에 신경쓰고 싶지 않았어요. 어차피 복귀해서 성적으로 보여주면 되니까요.
―김상현 선수가 복귀하니까 KIA가 달라졌다고 해요. 팀 타선에 힘이 생기고 선수들이 ‘한번 해보자’하는 분위기 변화로 더그아웃이 시끌벅적하다면서요.
▲팀에 있어야 할 선수가 가세하니까 좋아해 주는 거죠. 복귀해서 한 방씩 쳐주니까 선수들도 더 믿고 신바람을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롯데를 잡고 4위로 올라서야 하는데….
▲ 김상현은 지난 1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KIA가 2-2로 맞선 9회말 1사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고 동료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홈플레이트를 밟고 있다. 사진제공=KIA타이거즈 |
▲잘 알죠. 롯데와 SK전 때 김광현이 선발로 나온다고 해서 2게임 차로 좁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롯데가 이기더라고요(웃음). KIA가 유난히 넥센을 만나선 맥을 못 췄거든요. 큰일이다 했더니 어제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게 되고. 롯데가 이길 때 우리도 이기고 질 때 우리가 이겨야 4위에 올라갈 텐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한 게임, 한 게임, 집중해서 해야 되겠죠.
―이대호 선수의 홈런 퍼레이드도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두 선수의 방망이에 4위 싸움이 결정될 거라는 얘기도 있어요.
▲작년에 해볼 거 다 해봤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 욕심이 안 생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대호 홈런 치는 거 보니까 다시 홈런왕을 차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어제까지 3경기 연속 홈런을 쳤어요. 이대호 선수처럼 9경기 연속 홈런 신기록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어요?
▲어휴 전 제 자신을 잘 알아요. 지금은 제 개인 기록보다는 팀이 어떻게 해서든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타점을 올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류현진 선수도 29게임 퀄리티스타트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에요. 김상현 선수만이 알고 있는 류현진 선수 공략법이 있나요?
▲제가 투수들 중에서 류현진 볼에 제일 약해요. 정말 좋은 투수예요. 빈틈이 안 보일 정도로. 제가 생존하는 방법은 아예 류현진 볼을 포기하고 다른 투수에 더 집중하든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쳐보려고 하든가, 둘 중 하나겠죠.
―3루수를 볼 때와 지명타자로 출전할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일부 KIA 팬들은 김상현 선수의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수비를 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던데.
▲전 수비를 해야 방망이를 치는 선수라 에러를 해도 수비를 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몸이 굳어 버리거든요. 솔직히 수비 욕심은 없어요. 감독님이 배려해주시기 때문에 타격에 더 집중해서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노림수의 대가’라는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저보단 이대호가 ‘노림수의 대가’죠. 대호 실력을 쫓아가려면 전 한참 멀었어요. 일부러 겸손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게 사실이거든요.
―부상으로 자리를 비울 때 박기남 선수가 펄펄 날았어요. 은근히 걱정이 되진 않았나요?
▲박기남이랑 LG에서 같이 트레이드돼 KIA로 왔잖아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보다는 서로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같이 고생한 만큼 마음도 잘 통하는 친구 사이거든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좋은 활약을 펼치는 걸 보니까 진짜 기쁘더라고요.
김상현에 대해 팀 동료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복귀 후 실전에 적응하느라 힘든 상황인데도 언제 아픈 사람이었냐는 듯이 펄펄 날고 있는 모습들이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극을 준다고 한다.
KIA가 16연패에 빠져 있을 때 서재응은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사람이 왜 우울증에 빠지는지, 왜 자살을 하는지 그때 실감했다”고 말할 만큼 한국 복귀 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그런 가운데 김상현의 복귀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고.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상현이의 존재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지금은 상현이를 잘 모셔야 한다”며 웃음을 터트린다.
김상현은 이런 말로 KIA 팬들의 감동을 자아내게 만든다.
“제가 KIA를 많이 좋아해요. 그래서 KIA가 4위로 올라서는 건 물론 한국시리즈에 올라설 수 있도록, 그래서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할 수 있도록 몸을 바칠 겁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한 해였지만 마무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테니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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