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27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부적격 후보자의 즉각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박 대표의 활약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를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른바 ‘영포게이트’ 정국에서는 현 정권 실세의 이름을 거론하며 공세를 강화하기도 했다. 그가 18대 총선을 통해 원내에 복귀한 뒤로 민주당의 ‘전투력’이 부쩍 강화됐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강화된 전투력의 뒤편에는 박 대표의 막강한 정보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시절 구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대여 공세의 선봉장에 서 있다.
박 대표의 이 같은 막강 정보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실체를 추적해봤다.
지난해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천 후보자를 낙마시킨 결정타는 천 후보자가 스폰서로 알려진 박 아무개 씨 부부와 해외동반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를 폭로한 장본인은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였다. 박 대표는 관세청 직원으로부터 관련 내용 일체를 넘겨받아 이를 청문회에서 폭로했다. 당시 관세청 직원은 박 대표와 동향(전남) 출신으로, 이 직원은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관세청에서 해고됐다. 당시 정치권 인사들은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들이밀며 검찰총장 후보를 압박하는 박 대표의 정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얼마 전 국무총리실 불법 사찰 의혹으로 불거진 ‘영포게이트’ 사건 때도 박 대표는 전방에 나서서 사정기관을 압박했다. 그의 폭로로 인해 금감원이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박 대표의 정보력은 단연 빛을 발했다. 그는 정보원들을 통해 수집한 청문대상자 관련 정보들을 해당 상임위 의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청문회 준 비 과정에서 한 민주당 인사는 박 대표의 정보력을 빗대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결정적인 한 방은 본인이 쥐고 있었는데 이것은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사퇴하지 않을 경우 ‘히든카드’로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이러한 활약 덕에 민주당의 정치력은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인해 정치권을 떠나 있던 박 대표는 2008년 4월 총선을 통해 여의도에 복귀했다. 지난해 천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박 대표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그는 관세청뿐만 아니라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사정 기관에 다수의 정보원을 심어놓고 적재적소에서 이들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법조계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인사들 중에서는 고위직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박 대표가 국민의 정부 핵심 실세로 지내면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다.
박 대표가 이처럼 막강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정치권과 사정기관에 퍼지면서 한때 몇몇 기관에서 그 출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소문 중 하나는 박 대표가 서초동 모처에 일종의 ‘정보 사무실’을 차려놓고 검찰 및 법원을 비롯한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나오는 정보를 샅샅이 훑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도 나왔다. 그가 서초동 D 빌딩에 있는 A 변호사 사무실을 활용하고 있으며, A 변호사는 박 대표가 대북송금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변호한 인물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흘러 나왔다. 변호사 사무실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인물을 영입해 정보 취합을 전담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취재 결과 박 대표가 A 변호사 사무실의 고문을 맡고 있는 것은 확인됐지만 실제로 이 사무실에서 정보 수집 등의 일을 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불거져 나온 것은 결국 여의도 정치권 관계자들이나 사정기관 직원들이 박 대표의 정보 소스에 그만큼 관심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 대표의 막강한 정보력과 그 파괴력은 단순히 정보의 양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내며 쌓아온 경험과 정치적 감각이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번 청문회에서 박 대표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의원이 질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대중 정부 시절 ‘소통령’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권 구석구석을 꿰차고 있던 그가 장관 후보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어떤 식으로 장난(?)을 치는지 모를리 없으니 박 대표가 던지는 질문 하나 하나는 그 무게감이 달랐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의 막강 정보력이나 조직력은 민주당 당권 경쟁 과정과 향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