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난 8월 초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강원도지사 출마설’에 대해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전혀 그런 생각 없다”는 입장을 밝혔던 그가 8월 18일 강원도 춘천의 한 아파트로 주민등록 주소지를 이전하고 이사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최근 그를 만난 한 한나라당 의원이 “(엄 전 사장이) 심장이라도 빼서 봉사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밝히면서 엄 전 사장의 도지사 출마 의지가 강력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엄 전 사장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민주당은 거센 비판을 하고 있는 상황. 정세균 전 대표는 이와 관련해 “주민등록을 옮기는 것이나 이사는 국민의 자유이지만 지성 있는 사람이라면 염치가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도 상도가 있고 정치도 정치적인 도의가 있는 법인데 이번 주소 이전이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매우 실망스럽다”고 불편한 속내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직무정지’ 상태에 있던 이광재 지사는 자신이 제기한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 지난 2일 도지사 직에 복귀했다. 만약 엄 전 사장이 이 지사의 낙마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일단 오는 10월 27일 재·보궐 선거 출마는 어렵게 된 상황. 하지만 연말께 대법원 선고가 예정되어 있어 이광재 지사의 임기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이 지사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면 도지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 간 엄기영 전 사장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15일 다시 전화를 걸어봤다. 엄 전 사장은 “주소지 이전이 강원지사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런 (도지사 출마를) 생각에서가 아니다. 정치 쪽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엄 전 사장은 “강원도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뿐 정치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엄 전 사장이 민주당 영입 제의에 부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정동영 고문과의 관계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엄 전 사장이 민주당으로 입당할 경우 MBC 앵커 출신 정동영 고문에 비해 당내 자생력이 취약한 그가 결국 자신보다 두 살 아래인 정 고문의 아래 반열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엄 전 사장은 “민주당 입당에 부정적인 이유 중에 정동영 고문과의 관계도 원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며 “(강원) 지역 분들과 이야기 중이라 오래 전화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정치는 노(NO), 봉사는 예스(YES)’라는 엄 전 사장. 그에게 도지사는 정치적 자리일까, 봉사의 대상일까.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