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
애인과 교제한 지 2년 된 K 씨. 모처럼 친구가 저녁이나 같이하자고 전화를 했지만, 선약이 있다고 거절했다. 딱히 약속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남자친구와 새로 개봉한 영화를 같이 볼까 하던 차였다. 그것도 혼자 생각으로.
연애를 시작한 지난 1년 반 동안 K 씨의 사생활은 애인의 독차지였다. 백화점을 가면 남성용품만 눈에 보이고 좋은 게 있으면 애인한테 해주고 싶어 안달이다. 물론 애인이 그렇게 해달라고 원한 건 아니다.
문제는 그녀의 애정 공세가 애인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애인에게도 자신처럼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가 혹시 회식이나 중요한 약속이 있어 데이트를 미루면 난리가 난다. 애인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무척 서운해 한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그럴 수 있느냐”는 식이다.
K 씨가 이렇게 사랑에 ‘올인’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애인은 연애가 족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사랑을 받는 것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지금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해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과 잘해주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면 잘해줄 수도 있지만, 잘해주는 것이 꼭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강요하기보다 놓아주는 것
많은 남녀들은 사랑을 하면 뭐든 아낌없이 줘야 하고,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고,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비싼 물건을 선뜻 사줄 수 있어야 하는 등 이런 것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잘해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완벽한 사랑을 주려고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함께 하나의 사랑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내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서로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속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때로는 그냥 놓아주는 것이다.
잘해주는 것엔 분명 끝이 있다. 내가 잘하는 만큼 상대도 잘해주기를 원하게 된다. 잘해준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에게 당당해진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충만한 마음이 든다. 상대가 아니라 내 사랑에 당당해진다.
♥대가 없이 하는 사랑을 즐기라
레바논의 작가 칼릴 지브란의 유명한 저서 <예언자>엔 결혼에 대한 이런 대목이 있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에 구속되지는 말라. … 그대들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서로가 지니지는 말라. … 함께 서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함께하지 말라.’
구속하고 강요하면 더 원하게 되고, 너무 가까이 있으면 상대의 그늘에 덮여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지브란의 말처럼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서있는 사원의 기둥들이고, 함께 울리되 따로 있는 기타 줄이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사랑해보라. 애인을 내 생활에 끌어들이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애인의 생활에 끼어들려고만 하지 말고,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서 개개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두 사람이 받치고 있는 사랑이라는 사원은 흔들림 없이 서있을 것이고, 두 개의 기타 줄은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웅진 좋은만남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