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한 식당에서 만난 홍성흔은 준플레이오프의 아쉬움과 다음 시즌의 계획 등에 대해 얘기했다. 부인 김정임씨도 함께 자리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준플레이오프 끝나고 어떻게 지냈어요?
▲솔직히 겁이 났어요. 야구선수가 아닌 ‘술꾼’으로 거듭날까봐(웃음). 시즌 내내 술은 입에도 안 대고 착실하게 야구만 해왔거든요. 손등 부상 중에는 재활에만 집중했고 부상 후 복귀했을 때는 롯데 우승에 모든 초점을 맞췄어요. 그렇게 매달리다가 허무하게 시즌을 접게 되니까 긴장도 풀리고 근육통도 재발되고 안 아프던 데가 아프기 시작하대요. 몸이 아픈 건 주사 맞고 약 먹으면 치료가 가능한데 마음을 다친 건 쉽게 낫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술로 풀려고 했죠. 물론 술을 마신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지만 말이에요.
홍성흔이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4회 무사 1루수가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병살타를 쳤을 때 그의 딸 화리(6)는 전국영어말하기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한다. 아빠가 병살을 치는 그 시간에 딸은 전국대회에 출전해 1등을 수상한 것. 그때 홍성흔이 깨달은 사실 한 가지. ‘한 집안에서 두 명이 대박나긴 힘들구나’란 것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요? 지난해와는 달리 롯데의 ‘가을 야구’가 준플레이오프 2차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펼쳐지는 듯했거든요.
▲두산 시절을 포함해서 아홉 번째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며 올해처럼 가슴 떨리고 긴장했던 건 처음이었어요. 절호의 찬스였고, 느낌도 좋았고, 팬들까지 모두 한마음이 돼 우리를 믿고 밀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롯데 팬들의 마음, 로 감독(로이스터)님의 임기, 코치님들의 재계약 등 주접스리 너무 오버를 한 거예요. 그냥 저 혼자만 잘하면 되는데 저 혼자 잘하는 걸 넘어서 마치 팀 총감독처럼 이런 저런 걱정을 하니까 결국 제 야구가 안 되는 거였죠.
옆에 있던 아내 김정임 씨가 거들었다. 홈경기가 있는 날, 평소와는 달리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고 일어섰다, 앉았다, 왔다 갔다 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잠들지도 못했다고 한다. 결혼 후 남편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단다. 홍성흔이 덧붙인다. “결국 ‘뻥카’가 안 되겠다고 큰소리쳤다가 ‘개뻥카’로 끝났지 뭐.”
―마음이 아픈 건 이해가 가는데 죄책감이 들 정도는 아니잖아요.
▲모르는 소리예요. 부산에서 야구를 하다 보니 팬들의 열정과 응원에 어떻게 해서든 보답을 하고픈 욕심이 생겼어요. 롯데 우승으로 이 부산을 들었다 놨다 해보고 싶었죠. 팬들의 열망이, 갈망이 헛되지 않았음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설레발을 친 거죠. 혼자 아등바등하면서 설레발을 치다보니 ‘뻥카’로 끝나 버린 거예요. 오늘 택시를 탔는데 기사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홍성흔 선수, 시즌 내내 잘하시다가 마지막에 아주 제대로 삽질하시데예. 진짜 기대 많이 했는데 실망이 컸어예’. 아무 대꾸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하고 내렸어요. 부산 팬들의 평가는 인정사정 볼 거 없어요.
―8월 15일 KIA전에서 윤석민 선수의 볼에 손등을 맞고 부상을 입었어요. 만약 그 부상만 없었더라면 ‘아웃카운트 잡아 먹는 기계’라는 소리는 안 들었을 것 같아요.
▲정말 그 일이 없었다면 달라졌겠죠.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진 않았어요. (윤)석민이도 바로 전화 걸어선 정중하게 사과를 했고요, (이)종범이 형, 김상훈 모두 ‘괜찮냐’고 안부 전화를 해왔어요. 당시엔 억울하지 않았는데 (이)대호가 타점, 타율을 앞서 나가니까 조금씩 답답해지고 급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깁스를 서둘러 푼 후 방망이를 잡기 시작했어요.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프더라고요. 로 감독도 허락 없이 방망이 잡고 휘두르면 벌금 때릴 거라고 야단치셨고요. 뭐 제 운이 그것밖에 안 된 거였죠.
▲솔직히 전 쉬고 싶었어요. 경기장에서 선수들 뛰는 걸 보고만 있는 게 너무 괴로웠거든요. 그런데 로 감독이 원하셨어요. 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선수들한테 힘이 된다면서요.
―홍성흔 선수한테 로이스터 감독은 어떤 지도자였어요?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술 한 잔 마시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요. 로 감독은 제 야구인생을 바꿔놓은 분이에요. 전 제가 100타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몰랐어요. 로 감독과 타격코치께서 절 완전 다른 선수로 만들어놨죠. 로 감독은 감독님이라기보다는 저보다 몇 살 위의 친한 형 같은 느낌이었어요. 고민도 스스럼없이 털어 놓고 장난도 치고 싶고 가족 같은 느낌을 주는 분이었죠. 올 시즌 로 감독 아니었으면 롯데의 투수진 운영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꾸준히 믿고 기용해준 덕분에 김일엽, 김사율 선수 등이 나올 수 있었죠. 팬들은 로 감독을 비난하고 바꾸라고 성화를 부리시기도 하지만 인간적으로 아주 강한 매력을 풍기시는 분입니다.
―로이스터 감독과 시즌 종료 후 제대로 인사를 나누긴 했는지 궁금해요. 곧 재계약 여부가 발표날 텐데 말이죠(결국 다음날 로이스터 감독의 해임 소식이 전해졌다).
▲준플레이오프 5차전 끝나고 호텔 로비에서 만났어요. 제가 먼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까 눈물을 글썽이시며 우시더라고요.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 프로야구에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결국 저 때문에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많이 부대꼈어요. 만약 감독님이 재계약을 하지 못하신다면 편지를 보낼 거예요. 너무 고마웠고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요. 야구를 하고 지도자를 만나 이런 감사함과 감동을 느낀 건 두산 시절 초기에 만났던 ‘김경문 코치님’과 로 감독님, 딱 두 분입니다.
―플레이오프 탈락 이후 TV로 야구 중계 봤어요? 두산과 삼성의 1점차 승부가 야구 팬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대단한 열기를 이끌고 있잖아요.
▲당연히 보고 있죠. 두산이 있는 자리에 롯데가 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해요. 처음엔 가슴이 찢어지고 화도 나고 답답하고 그랬어요. 앞으로 야구하면서 올해와 같은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복잡한 마음이 들었죠. 그런데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정신력 하나는 기가 막힌 것 같아요.
―지난해 ‘취중토크’하면서 한국야구위원회를 향해 메시지를 띄웠잖아요.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비의 ‘레이니즘’을 해보이고 싶다고. 결국 그게 현실로 이뤄졌는데 올해는 또 뭐 없을까요?
▲꿈은 한 번만 이루면 되죠 뭐. 그런데 당시 리허설 때 무척 많이 틀렸어요. 생방송인데 중계를 담당한 SBS 담당자 분들이 초긴장 상태셨죠. 저한테 웃지 말고 진지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절 야구선수가 아닌 진짜 가수처럼 대하시더라고요. 대기실도 애프터스쿨, 카라랑 같이 쓰고.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공연 후에 진짜 가수 비한테 전화가 왔어요. 지금까지 ‘레이니즘’을 흉내낸 사람 중에 제가 제일 멋지게 해냈다고요.
―내년 시즌 또 다시 가을이 찾아오는데, 아무래도 다음 시즌 전에는 변수가 많을 것 같네요. 감독이 바뀐다면 여러 가지 변화도 찾아 올 것이고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만약 감독님이 바뀌신다면 제 스타일이 또 바뀌어야 해요. 헛스윙 삼진을 해도 믿고 맡기면 어느 순간 폭발해서 그 믿음에 보답할 수가 있는데 그냥 빼버리면 안타 치려고 스윙이 작아지게 되겠죠. 중거리 타자에서 중장거리 타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데에는 로 감독님의 믿음이 절대적이었어요. 그래도 코칭스태프가 교체된다면 그에 맞춰 가야죠. 한동안 혼란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 롯데 선수들은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찾아 갈 거예요. 저도 그렇고 이대호도 이번 시즌에 대해 분명 책임감을 느끼고 있거든요. 환경이 바뀐다고 해도 롯데 선수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한’이 있고 그 한을 이루고 싶은 갈증이 존재하니까요.
부산=riveroflym@ilyo.co.kr
‘홍 패밀리’ 번갈아 으샤으샤!
▲ 사진제공=두산베어스 |
“흔히 연예인 하면 선입견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은 그런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다. 지훈이(가수 비)랑은 지금까지 만나서 술 한 번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번 5차전 끝나고 처음으로 같이 술을 마셨다. (천)정명이 왔을 때도 맥주 한 잔 입에 안 대고 밥만 먹고 헤어졌다. 서로를 배려하는 부분이다. 가수, 연기자로서 성공해야 주위 사람들이 행복하듯이 나 또한 내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지인들이 행복해진다. 그 마음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교감을 이룰 수 있었다.”
비는 홍성흔에게 힘들 때마다 위로와 용기를 주는 후배라고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정규 시즌 중에 홍성흔이 잠깐 슬럼프에 빠졌을 때가 있었는데 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난 이후 일주일에 홈런 6개를 몰아쳤다는 것.
“난 평소에 술도 안 먹고 잘 놀 줄도 모른다. 만약 놀기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면 이런 내가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런데 내 패밀리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좋아해 주고 응원을 보내준다. 서로 ‘간’이 맞는 거다.”
홍성흔은 혹시 은퇴 후 방송이나 연예계 쪽으로 관심을 두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never’라고 부정하면서 야구를 한 사람은 선수 생활 끝나도 야구로 밥을 먹고 사는 게 제일 멋진 일이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