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특임장관이 ‘용의 발톱’을 슬며시 드러냈다. 그가 지난 10월 19일 대구·경북지역 기자간담회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등 4명의 TK 출신 전·현직 대통령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내 이름이 재오(제5) 아니냐”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신이 5번째 TK 출신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그가 언급한 대권에 관한 속내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통한다.
물론 그가 ‘(차기 대권도전이) 정말이냐’는 거듭된 질의에 “차기는 정해진 것이 없지 않느냐”라며 한 발 빼는 바람에 대권도전 의사표시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가 민감한 대권도전 질문에 적극적으로 부인을 하지 않아 당시 기자들은 대부분 “이 장관이 큰 꿈을 꾼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도 그가 킹메이커보다는 직접 킹으로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더 많다.
최근 이 장관 측에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서민층을 대변하는 중도개혁파 후보로 급부상하는 것을 두고 내심 흐뭇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손 대표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던 이력이 있다. 여기에 지난 1996년 15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 재산을 고지한 이래 줄곧 서울 은평구 구산동 단독주택(1억 3000여만 원 상당)에 거주하며 총 재산도 6억 2000여만 원으로 장관급에서 거의 꼴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장관은 향후 손 대표가 서민후보로 급부상하는 정국이 오면 기득권 이미지가 강한 박근혜 전 대표에 비해 자신이 더 경쟁력이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장관의 행보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해 내부적으로 돌파구 찾기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장관은 대외 행사 때 가장 먼저 어느 언론사 기자가 오는지 체크할 정도로 ‘보도’에 민감한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최근 특임장관으로서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게 되자 조급함도 엿보인다. 자신을 구심점으로 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필요한 대목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이 장관이 청와대의 미온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헌 군불을 때는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청와대가 직접 개헌을 추진하는 데서 오는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역할 분담 차원이 있다. 또한 마땅한 역할이 없는 그가 개헌론을 등에 업고 정치적 공간을 넓히려 한다는 점도 있다. 이를 통해 이 장관이 친이계의 대표성을 계속 확보해 나아가고 자신의 대야 정치적 위상도 제고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장관 ‘캠프’가 이미 대권후보 이미지 메이킹에 나섰다고 본다. ‘낮은 자세’가 그 첫 번째 전략이다. 요즘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버린 90도 인사도 그 전략의 일환이다. 최근 이 장관이 자신의 본적지인 경북 영양에 한옥 복원을 추진해 논란이 일었던 것도 대권을 향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반응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