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인 삼성은 국가경제뿐 아니라 스포츠계에 미치는 영향도 막강하다. 그리고 ‘삼성 스포츠’는 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 회장을 정점으로 삼성전자에 소속된 삼성스포츠단이 관장한다. 13개 스포츠팀 등 삼성스포츠를 총괄지휘(물론 구체적인 업무는 각 팀 및 계열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한다)하고, 삼성전자의 올림픽파트너(TOP) 관련 업무를 맡는 삼성스포츠단은 지난 밴쿠버올림픽까지 박성인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 수장을 맡았다.
하지만 이후 박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나고, 삼성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크게 주목을 받았던 황태선 전 삼성화재 사장이 ‘상담역’으로 사실상 스포츠단을 책임지고 있다(내부 호칭은 ‘총괄’). 황 전 사장은 삼성화재 시절, 비자금 조성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았고, 또 거액의 스톡옵션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까닭에 현재 삼성그룹의 공식임원은 아니고, 삼성스포츠단 수장 노릇도 ‘조용히’ 수행하고 있다.
그럼 향후 삼성스포츠는 황태선 사장 체제로 계속될까. 그렇지 않다. 삼성이 운영하는 프로스포츠팀의 한 관계자는 “독립 운영을 하는 LG스포츠단과는 달리 삼성스포츠단은 총괄을 하는 것으로 그 역할과 구조가 다르다. 그래서 지금처럼 공식적으로 단장(사장)이 없는 어정쩡한 상태로 운영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이고, 올림픽 등 삼성이 관련된 중요한 스포츠 업무가 많은 까닭에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삼성스포츠단의 수장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신치용 삼성화재배구단 감독 |
신치용 감독도 수차례 “삼성스포츠를 책임지는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다. 하지만 현재 삼성화재배구단을 이끄는 일로 바쁘고, 또 그룹 내부 사정이 있기 때문에 내 입으로 어떤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해왔다.
중요한 것은 탁구인 출신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와 친분이 두터워 그동안 삼성스포츠의 얼굴마담 역할을 해온 박성인 고문은 이제 나이가 많아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됐다는 점. 박 고문은 1938년 생으로 올해 72세다. 삼성스포츠단뿐만 아니라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자리도 1997년부터 맡아온 만큼 이제 물러날 때도 됐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삼성스포츠단의 수장, 그리고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자리 등 박성인 회장의 빈자리를 누가 메우느냐가 큰 관심사인 것은 분명하다.
이건희 회장은 오랫동안 공들인 끝에 1996년 IOC 위원이 됐다. 이 회장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42)도 IOC 위원 자리에 관심이 많고, 또 스포츠계에서 활동을 늘려가고 있다. 올림픽 종목인 승마에서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고, 아버지를 수행해 2007년 과테말라 IOC총회, 2010년 밴쿠버올림픽 등 스포츠외교무대에도 이미 많이 얼굴을 비춘 바 있다. 유리한 점이 많은 것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핸드볼협회장을 맡았듯이 이재용 부사장도 이제 국내 경기단체 수장을 맡는 것이 한편으론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학창시절 레슬링을 했던 이건희 회장도 대한레슬링협회장으로 활동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재용 부사장의 자리도 자연스레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삼성 그룹 안팎에서는 박성인 고문이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이재용 부사장에게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초 이재용 부사장을 위해 삼성이 회장사를 맡고 있는 육상 등도 거론됐지만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단점 때문에 현재는 이런 얘기들은 쑥 들어갔다. 반면 빙상은 김연아의 올림픽 쾌거는 물론이고, 밴쿠버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등 한국이 발군의 성적을 내면서 국제경쟁력은 물론이고 이미지도 아주 좋아졌다.
빙상은 그동안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삼성은 꾸준히 지원해왔었다.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까지 10여년간 지원해온 규모는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삼성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경기단체 회장 취임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물밑에서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내년 7월 남아공 IOC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최종 결정되는 까닭에 이 과정에서 이 부사장이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빙상연맹 회장직을 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스포츠단의 한 관계자도 “그룹 내부적으로 확정된 것이 없어 밝힐 수는 없지만 이재용 부사장이 빙상연맹을 맡는 시나리오는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이 부사장은 스포츠보다 기능올림픽에 더 관심이 많다”며 이 부사장의 빙상연맹 회장 취임설을 에둘러 부인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