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병석 C&그룹 회장이 10월 24일 새벽 구치소로 가기 위해 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하지만 이미 퇴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C&그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으며 결국 최종 종착지는 정치인들이 될 것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검찰은 여권 유력 정치인들이 C&그룹 임병석 회장과 만난 정황을 포착하고 이들까지 수사를 확대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으로 비화되는 C&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C&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현재까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C&그룹이 사세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장부조작, 분식회계 등의 방법으로 금융권에서 부당대출을 받은 부분이다. 검찰은 C&그룹이 M&A(인수·합병) 과정에서 총 1조 3000억 원의 대출을 받았고 이 중 상당부분이 불법 대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불법 대출 과정에 이른바 C&그룹 내 ‘3대 라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3대 라인’이란 C& 내에서 임 회장과 같은 나주 임씨 종친회 라인, 임 회장이 졸업한 전남 S 고교의 동문 라인, 임 회장 친척이자 임원이었던 임 아무개 씨 측근 라인을 말한다. C&그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그룹 내에 나주 임씨와 전남 S 고등학교 출신 인사들이 유독 많았다”면서 “임 회장의 친척 임 아무개 씨는 출신 초등학교 동문 정치인을 통해 그룹 대출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이 타깃이다. 검찰은 C&그룹에 대한 우리은행의 대출이 박해춘 전 행장 재직시 이뤄졌다는 점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 전 행장의 동생 박택춘 씨는 우리은행의 대출이 이뤄질 당시 C&중공업의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검찰은 또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우리은행장·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겸직한 황영기 전 회장 관련 부분도 확인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의 또 다른 방향은 정치권을 향해 있다. 검찰은 C&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자금 지원 뒤에는 거래은행의 암묵적인 비호나 정치권 외압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정·관계로 수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정치권 살생부’의 윤곽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은 C&우방 등 계열사 4곳을 통해 조성된 비자금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의 유력 정치인 5~6명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C&그룹이 야권 소장파 의원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에게 회사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로비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 임병석 회장이 로비장소로 활용했다는 강남의 D 일식집. D 일식집은 지난해 8월 폐업했으나 간판만 바뀌었을 뿐 내외부의 모습은 당시와 거의 흡사하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C&그룹 압수수색 이후 이처럼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던 검찰 수사가 최근에는 조금 더 복잡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 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거론되기 시작한 것. 수사진은 C&그룹이 자금난으로 퇴출 위기에 몰리자 여권 인사들을 접촉하며 ‘구명로비’를 펼쳤다고 보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앞으로의 수사를 잘 지켜봐라. 야권에 대한 표적수사라고 언론에서 보도하지만 수사의 최종 목적지는 전혀 다른 곳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은 임병석 회장이 친척 명의로 운영했던 강남의 D 일식집에서 여권 인사들을 수차례 접촉했던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폐업한 이 일식집은 사실상 임 회장의 로비 장소였다고 한다. 월 매출 1억 원 정도인 이 일식집은 임 회장이 그룹 직원을 관리담당으로 파견해서 수시로 매출을 보고받을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인 곳이다.
주로 옛 여권 인사들과 친분을 과시했던 임 회장은 그룹이 자금난에 빠진 2008년 무렵부터는 현 여권 인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로비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C&그룹 안팎에 따르면 임 회장은 2007년부터 무리하게 조선소 신설을 추진하다가 금융위기로 그룹이 급격하게 기울게 되자 필사적으로 여권에 줄을 대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임 회장은 자신의 친척이자 일식집 여주인인 이 아무개 씨를 통해 여권 인사들을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수도권의 재선 A 의원과 친분관계가 있었으며 이 씨의 주선으로 임 회장과 A 의원은 이 일식집에서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임 회장이 A 의원의 주선으로 여권 내 유력 정치인 B 의원도 두 차례 접촉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당시 A 의원과 B 의원은 모두 금융기관에 영향력을 미칠 만한 위치에 있었다. 특히 C&중공업이 자금난으로 쓰러지던 시기에 대구에 본사를 둔 C&우방 역시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임 회장은 C&우방 대표이사로 직접 취임한 뒤 대구지역에 영향력이 있는 고위 인사들을 만나 구명운동을 벌였다.
검찰 수사가 여권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보이면서 여의도 정가는 여야 할 것 없이 숨죽이고 이번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 오는 11월 12~13일 있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나면 검찰이 정치인들을 잇달아 소환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단 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과 금융권 인사들을 만난 것은 인정하면서도, “접대는 내 연봉으로 했고 불법 로비를 한 적은 없다”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수사 때처럼 검찰이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물증을 들이댈 경우 결국 임 회장도 입을 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 수사진의 전망이다. 지난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정치권이 숨죽이고 그의 입을 바라봤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야 정치인들이 눈과 귀는 임병석 회장의 입에 쏠려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대출 받아오니 차장서 상무로”
C&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정·관계 및 금융권 로비와 관련한 전직 C&그룹의 임직원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일요신문>이 만난 전직 C&그룹 계열사 임원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각 계열사의 본업은 미뤄둔 채 은행 저축은행 대출에만 몰두했다. 대출을 잘 받아오는 직원은 무조건 승진했다. 나도 몇몇 저축은행 등을 통해 돈을 대출해오자 1년 만에 차장-부장-상무로 세 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이건 약과였다. 다른 계열사에서는 중간 단계를 생략한 채 곧바로 임원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들었다.”
명동 금융시장에서 10년 넘게 일해 오며 시중은행에 기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한치호 파레스인포 대표는 2008년 C&그룹의 자금난과 관련한 일화를 소개했다.
한 대표에 따르면 하루는 C&그룹 임원이 찾아와 C&그룹에 유리한 정보를 시중은행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결국 한 대표는 앞으로 C&그룹이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를 바탕으로 리포트를 작성해 은행 측에 제공했다. 이후 정보를 제공한 은행에 C&그룹이 100억 원가량의 대출을 요구했다. 사전에 C&그룹 위기 정보를 입수한 은행 측은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1주일 만에 대출이 떨어졌다고 한다.
한 대표는 “회사의 신용도가 1주일 만에 바뀌어 대출 승인이 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당시 이 은행은 정치권의 입김이 어느 은행보다 강했는데 이를 보면 C&그룹이 정·관계 및 금융권에 전 방위적 로비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