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명성산 정상 능선을 뒤덮은 억새. | ||
화마로 잃을 뻔한 억새밭
억새와 단풍에 빠지기 전에 먼저 화재 이야기를 해야겠다. 얼마 전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소식이 있었다. ‘명성산에 불.’ 그곳을 다녀온 당일(11월 1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 위해 부랴부랴 이곳저곳 루트를 뚫어 연락을 취했지만, 마차바위에서 오후 4시께 화재가 발생했고, 절벽과도 같은 돌계단길이라 접근이 쉽지 않아 진화가 어렵다는 대답만 들었다. 불길은 무려 16시간 만인 2일 오전 8시40분이 돼서야 완전히 잡혔다. 그래도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화재시간에 비하면 피해면적이 큰 편이 아니고, 억새 군락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번 화재로 정상에서 자인사로 내려오는 구간이 폐쇄가 됐지만, 다른 코스로는 등산이 가능하다. 여전히 명성산 억새 산행은 유효하다.
명성산(鳴聲山)의 옛 이름은 울음산이다. 지금의 이름은 우리말을 한자로 훈차한 것이다. 명성산은 해발 923m로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은 한국의 명산으로 꼽힌다. 정상부 능선에 거대한 억새군락이 형성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암릉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산을 타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명성산을 오르는 코스는 대략 3개가 있다. 등산시간은 3~4시간 정도 걸린다. 비선폭포로 올라 자인사 쪽으로 내려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자인사길은 통제되어 이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비선폭포에서 등룡폭포를 거쳐 억새꽃을 감상한 후 그 길 그대로 내려오거나 책바위를 타는 방법이 있다. 산행에 아주 자신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충고하건대 책바위 쪽은 다리 힘 빠지게 하는 난코스다.
| ||
| ▲ 등룡폭포. | ||
명성산 주차장 앞 등산로가든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상가가 밀집된 지역에서 빠져나오자, 곧 비선폭포에 이른다. 이곳에 책바위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있는데, 주변이 잣나무숲이다. 침엽수지만 잣나무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었다. 이어지는 길은 평지처럼 가뿐하다. 산을 오르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렇게 20분쯤 가면 등룡폭포가 나온다. 요즘 계속된 가뭄 탓인지 비선폭포와 마찬가지로 물줄기가 무척 가늘다.
여기서도 길이 갈린다. 평탄한 코스는 등룡폭포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험한 코스는 등룡폭포에서 그대로 직진하는 길이다. 물론 돌아가는 코스가 낫다. 하지만, 간혹 그곳으로 가고 싶어도 못 갈 때가 있다. 명성산 뒤편으로 전차포사격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훈련을 할 때면 평탄한 코스를 군인들이 통제하기도 한다. 질러가나 돌아가나 시간은 거의 비슷하게 걸린다. 돌아가는 대신 편하고, 질러가는 대신 힘들어 자주 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1시간30분쯤 산을 오르면 드디어 고대하던 억새군락이 펼쳐진다. 정상부 능선을 따라 억새가 구름처럼 깔렸다. 명성산은 우리나라 5대 억새 군락지 중 하나로 꼽힌다. 그 넓이가 무려 19만 8000㎡(약 6만 평)에 이른다. 억새군락은 팔각정을 지나 삼각봉 바로 아래까지 포진하고 있다. 바람이 파도가 치듯 함께 너울거리며 햇빛에 부서지는 억새들을 보노라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한편, 억새꽃군락에는 궁예약수터가 있다. 명성산은 왕건과 궁예의 전설이 깃든 산이다. 그 이름도 왕건에게 크게 패해 이 산까지 쫓겨온 궁예가 크게 울었다 해서 탄생됐다. 아직도 궁예가 서럽게 우는지 억새군락의 약수는 그 눈물처럼 마르지 않고 조금씩 샘솟아 등산객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 ||
| ▲ 11월1일 화재가 발생한 명성산 마차바위. 암벽으로 이루어져 숲의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접근이 어려워 화재진압 또한 애를 먹었다. | ||
자인사로 하산할 수 없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이 코스 또한 책바위 못잖게 어려운 등산로이긴 하다. 로프에 의지하고, 나무계단을 내려선 후 끊임없이 돌길을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택하는 것은 중간쯤 자리한 쉼터 때문이다. 벤치 두 개가 놓여 있는 이 쉼터에서는 산정호수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러나 화재복구로 인해 이 길은 한동안 폐쇄된다. 바라건대 내년 이맘때 억새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길이 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인사 쪽으로 내려오지 못 하더라도 1965년 창건된 이 절은 들러볼 만하다. 명성산이 뒤로 버티고 있는 모습도 좋지만 절 풍경보다 가는 길이 마음에 들어서다. 약 200m쯤 되는 숲길이 일품이다. 소나무가 대부분이지만, 더러 잣나무가 섞여 피톤치드를 무한정 뿜어대는 상쾌한 길이다. 절의 물맛도 좋기로 아주 유명하니 목도 축일 겸 비선폭포로 하산한 후 일부러라도 찾아보도록 하자. 주자장에서부터 걸어서 10분쯤 걸린다.
단풍 곱게 물든 호수 산책로
물가라 그런지 곱게 물든 명성산 바로 아래 자리한 산정호수의 단풍은 늦도록 생생하다. 산정호수(山井湖水)는 ‘산 가운데 있는 우물 같은 호수’라고 해서 그처럼 불린다. 1925년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저수지로 축조된 이 호수는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포천 최고의 명소다.
산정호수에는 호반을 따라 도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 단풍이 아직 붉다. 산책로 총 길이는 3㎞쯤 된다. 산책로 곳곳에는 벤치가 마련돼 있다. 호수에는 드라마 <신데렐라언니> 촬영세트장도 있다. 산책로를 따라 한화리조트 방면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세트장이 나타난다. 우리의 전통술을 주제로 했던 드라마였는데, 세트장은 비교적 생생하게 술도가의 모습을 재현해놓고 있다.
그렇게 천천히 호수를 한 바퀴 돌면 조각공원으로 오게 된다. 2005년 포천 국제조각심포지엄 당시 조성된 공원이다.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선착장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IC→47번 국도→78번 국도→387번 지방도→산정호수·명성산 또는 외곽순환고속도로 의정부IC로 나온 후 43번 국도 이용→포천시청 지나 78번 국도→387번 지방도→산정호수·명성산 ▲먹거리: 산정호수 주차장에서 유원지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이모네(031-534-6173)라는 식당이 있다. 우렁초무침(2만 원), 우렁쌈밥(2인 기준 1만 8000원) 등이 맛있는 집이다. 한화콘도 근처에는 묵사발(6000원)과 야생버섯매운탕(2인 기준 2만 원)을 비롯해 각종 민물고기매운탕을 잘 하는 두메산골(031-534-2129)이 있다. ▲잠자리: 산정호수가족호텔(031-532-2266), 산정호수 한화리조트(031-534-5500), 산정호수파크텔(031-531-6843) 등 숙박시설이 많다. ▲문의: 산정호수·명성산 관광안내센터 031-532-6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