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애마부인>이 등장했던 1982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10년을 전성기로 삼는다. 김문희는 정확히 이 기간 동안 활동한 후 은퇴했다.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문희(본명 김현숙)는 86년 영화 <여로>로 데뷔했고 마지막 작품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였다. 어쩌면 그녀는 한국 에로 영화가 철저하게 이용하고 폐기 처분한 여배우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크게 두 개의 장르로 나뉜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에로티시즘 사극. 그리고 나머지는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도시 에로였다. 에로 사극의 시작은 <어울렁 더울렁>(1986)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목밀녀’ 순이로 등장한다. 목밀녀는 과거 양반들이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둔 스무 살 정도의 하녀로, 아침에 목밀녀의 그곳에 대여섯 개의 대추를 넣었다가 저녁에 꺼내먹으면 젊은 여성의 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요화 어을우동>(1987)은 이보희의 <어우동>(1985)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에 등장한 아류작. 양반 사회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기녀라는 점에서 <어우동>과 일맥상통한다. 같은 해에 나온 <마님>(1987)은 아마도 김문희의 ‘에로적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영화일 듯. 그녀의 사극 캐릭터는 언제나 하층 계급의 몸 좋은 남자에게 연정과 연민을 느끼곤 하는데, <마님>에선 그 이미지가 집대성되어 있으며 자신을 사모하다 죽게 된 하인 천석(백일섭) 앞에서 은장도로 자결한다. 그리고 1988년 김문희는 ‘옹녀’의 자리에 오른다. 만화가 고우영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자신의 만화를 영화로 옮긴 <가루지기>. 이미 <변강쇠>(1986)에서 ‘원조 옹녀’ 원미경과 호흡을 맞추었던 ‘강쇠’ 이대근이 김문희의 파트너였는데, 원미경의 옹녀가 ‘색기’와 ‘한’의 느낌이라면 김문희의 옹녀는 좀 더 귀엽고 육덕졌다.
<회춘녀>(1989) <육담구담>(1989)에 이어 그녀의 에로 사극 경력에 강력한 방점을 찍었던 작품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 조선 전기 문인이었던 강희맹의 <촌담해이> 중 ‘하용물어’ 편을 옮긴 영화로 청상과부로 등장하는 그녀는 치성 끝에 산신령에게 남성 성기 모양의 나무 조각을 받게 되는데,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주문에 나무는 건장한 남성으로 변해 여성에게 화끈한 서비스를 한다.
사극에서의 위세만큼 현대극에서도 김문희는 비중 있는 배우였다. <매춘>(1988)은 대표작. 몸을 팔아 남자친구의 학비를 댔지만 배신당하고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자로 등장하는데, 이처럼 현대 배경의 에로 영화에 출연할 때 그녀의 이미지는 운명의 멜로 캐릭터가 주류를 이루었다. <매매꾼>(1989) <인신매매>(1989) 같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인신매매범에 의해 납치된 후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여성이 그녀의 몫이었다.
1980년대 말 비디오 에로 영화의 등장과, 1990년대 초 충무로가 기획영화라는 이름으로 물갈이를 하면서 김문희는 급격한 하락세를 겪기 시작한다. <서울 엠마누엘>(1992)과 마지막 작품이 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후로 그녀의 활동 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화끈한 것을 좋아해서인지 러브신이 가장 자신 있다”며 “극중 상대를 모두 사랑할 것 같아 고민”이라던, 에로틱하면서도 아이 같은 얼굴을 동시에 지녔던 배우 김문희. 크게 흥행한 주연작이 없었고 <어을우동>이나 <가루지기>처럼 기존 흥행작에 기댄 영화에 출연했기에 A급으로는 평가받지 못했지만 그녀에겐 독보적인 매력이 있었다. 특히 마님 캐릭터를 맡았을 때 발산되는 위엄과 순수함과 요염함이 복합된 섹슈얼리티는 김문희만이 지녔던 터치. 이보희나 나영희 같은 동시대 배우들이 건재한 지금, 그녀의 귀환을 조심스레 기원해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