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애니콜 권상우 | ||
탤런트 김혜자씨가 TV에 나오면 사람들은 광고 문구를 보지 않고도 쉽게 CJ의 ‘다시다’를 떠올린다.
김씨는 지난 2000년 이 회사의 광고모델을 그만뒀지만, 아직까지도 시청자들의 뇌리에는 ‘김혜자=다시다’공식이 깊이 박혀있다. 그가 20여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회사의 모델을 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룹의 이미지와 모델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이처럼 한 브랜드의 제품은 이를 광고하는 모델 이미지와 직결된다.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 그룹에서는 ‘자사의 얼굴’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모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과정은 쉽게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한 제품 또는 그룹 광고를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최소 한 달 이상이다. 사내조사는 물론 외부 기관에 협력해 가장 적절한 모델을 찾아낸다. 차별성을 위해 다른 그룹의 광고 이미지가 강한 모델은 잘 기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자면, 적합한 광고모델을 찾았다고 해서 곧장 광고제작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주인 ‘오너’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통상 실무진들은 2~3명의 모델을 복수 추천한다고 한다. 누구를 그룹의 얼굴로 내세울 것이냐하는 부분은 광고주들의 ‘최종 낙점’에 달려있다.
물론 광고주 오너들의 개인적 취향이 그룹 모델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어쨌거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만은 사실이라는 얘기다. 특히 광고주들은 단순히 지명도나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룹 모델을 맡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무심코 우리가 TV광고를 통해 넘겨버리는 광고모델은 그 회사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대표적인 광고 모델은 탤런트 이영애씨.
시청자들은 이씨가 TV광고에 등장하면 쉽게 ‘LG’를 떠올린다.
그가 LG그룹의 계열사 광고 대부분을 도맡아 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1999년 LG카드를 시작으로 LG생활건강, LG전자, LG건설 등의 모델로 기용됐다.
그는 ‘당신의 평생친구’(LG카드)라며 화면을 향해 웃어 보이더니 LG생활화학의 세제 ‘한스푼테크’, LG화학의 샴푸 ‘엘라스틴’, LG건설 ‘자이’에도 잇따라 얼굴을 내밀었다.
LG를 대변하는 또 한 명의 모델은 탤런트 배용준씨. 배씨는 지난 1995년부터 LG홈쇼핑, LG카드, LG텔레콤 등의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LG그룹이 이들을 각각 내세운 것은 단순 인기순위 때문만은 아니다. LG의 ‘친숙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잘 알릴 수 있는 모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LG그룹 관계자는 “LG를 떠올릴 때 일반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느끼면서도 점잖은 기업이라는 로열티를 함께 느끼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LG그룹의 다소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스타일이 그룹 광고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셈이다.
또 LG애드 관계자는 “같은 그룹의 관계사들이 동일한 모델을 쓸 경우, 일관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LG그룹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모델들을 젊은 연령대로 바꾸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원톱’ 모델을 기용한 이미지가 깊게 깔려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삼성그룹은 LG그룹과 달리 특정 모델을 전반적으로 기용하지 않고 있다. 삼성의 주력사인 전자의 경우에도 열 명 이상의 모델들이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이동통신사업자와 단말기 업체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삼성전자 휴대폰이 사실상 ‘삼성’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애니콜 광고모델의 대표주자는 가수 이효리씨와 탤런트 권상우씨. 삼성이 이들을 통해 내세우고자 하는 것은 ‘국내 1위 리딩 기업’과 ‘도회적인 세련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이 업계의 변화를 선도하는 ‘1위’라는 데 주안점을 둔다”며 “광고모델의 경우도 각 분야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기용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애니콜 모델들은 복잡한 제품명을 간단하게 만드는 고리 역할을 한다”며 “복잡한 기기 명칭 대신에 ‘이효리 폰’, ‘권상우 폰’, ‘박정아 폰’ 등 쉽게 불릴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 LG텔레콤 배용준 | ||
삼성은 김씨의 도회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는 광고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모델이 되기는 간단치 않다.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하기 때문.
삼성은 모델과 광고계약을 맺기 전 사생활과 외부 이미지를 망라하는 ‘사전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광고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광고 회사-모델의 ‘이미지 메이킹’은 계속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모델을 선정하기 전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전부 파악을 한다”며 “계약 이후에도 비정기적으로 모델과 ‘이미지 관리’에 관해 협의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SK그룹의 광고컨셉트는 ‘튀지 말자’는 것이다. 지난 2001년 영화배우 한석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는 카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적이 있다. 011의 TV광고였다.
한석규 씨의 011광고는 현재 방영되고 있지 않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SK를 떠올리면 ‘011=한석규’라는 묘한 법칙을 떠올린다.그가 무려 5년 동안이나 011의 모델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SK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K모델로 활동할 당시 다른 그룹 광고에는 출연하지 않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는 것.
광고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이동통신은 손에 잡히지 않는 서비스 상품이어서, 브랜드 로고 못지 않게 광고모델의 비중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SK가 한석규씨를 자사 모델로 기용한 이유는 ‘튀지 않는 무난한 그룹’의 이미지를 내세우기 위해서다.
SK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주력사업인 텔레콤과 정유의 경우,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우리 고객이라고 볼 수 있다”며 “기업 이미지도 톡톡 튀는 젊고 발랄한 이미지보다는 조용하고 무난한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또다른 통신회사인 KTF역시 ‘무난하고 신뢰있는 기업’ 이미지를 광고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KTF는 지난 2000년부터 영화배우 안성기씨를 광고모델로 기용하고 있다.
안씨는 광고를 통해 ‘KTF적인 생각’이라는 광고 카피를 말하고 있다.
KTF가 그를 기용한 것은 회사 사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2000년은 KT의 016과 한솔의 018이 합병되던 시기. 양 사의 고객들은 회사 합병으로 인해 제품의 서비스와 질이 좋아질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많던 시기였다고 한다.
광고의 효과가 절실한 때. KTF관계자는 “당시 회사로서는 합병이후 고객들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신뢰감을 주는 일이 가장 시급했다”고 말했다.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모델을 찾은 것이 바로 안씨였다.
현대차 그룹은 딱히 떠오르는 광고모델이 없다. 지난 2002년 소형차 ‘클릭’은 댄스그룹 god가 모델로 나섰고, 지난 2003년 ‘뉴베르나’는 축구선수 최진철을 기용했던 것이 전부.
광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자동차 회사의 광고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회사보다는 자동차 브랜드가 우선이라는 것과, 유명 모델에게 자동차 브랜드가 묻히는 것은 피하라는 것.
이런 이유 때문에 그동안 국내 자동차 회사의 광고는 주행모습, 코너링, 성능 등이 강조된 광고가 대부분이다.
최근 가장 치열한 광고전쟁을 벌이고 있는 곳은 이동통신단말기 회사다.
한 남자가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So Coooooool~’ 이라며 매듭지었던 광고.
가수 윤도현씨가 출연한 팬택&큐리텔의 광고다. 윤씨는 지난 2002년 9월부터 팬택의 얼굴로 활약하고 있다. 팬택&큐리텔의 광고는 ‘가식없는 휴대폰’이라는 것.
팬택 관계자는 “휴대폰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인식이 강한 점에 착안했다”며 “휴대폰 가격의 거품을 빼면서도, 통화 품질이 좋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 광고모델에 딱 적합한 인물로 낙점된 것이 바로 가수 윤도현씨. 이 회사 관계자는 “윤도현씨를 통해 털털하면서도 가식이 없는 회사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이 탄 자동차가 눈 길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그때 긴급 출동 차량이 오지만 주인공은 멋쩍게 웃으며 “저 동부화재 아닌데요.”라고 말한다. 곧 이어지는 말. “차보다는 사람이 먼저죠”.’
동부화재의 CF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3년 전부터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룹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광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사람’을 키워드로 하는 광고를 기획했다”고 말혔다.
동부화재의 ‘차보다는 사람 먼저’, 동부건설의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집’, 동부금융의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금융’은 모두 동부가 같은 컨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광고 카피들이다.
‘사람’을 컨셉트로 하다보니 가장 ‘인간미가 나는 모델’을 섭외하는 것이 급선무.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드라마 <허준>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탤런트 전광열씨가 낙점됐다고 한다.
그룹 광고와 그룹 광고모델들 사이에도 ‘궁합’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