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단 재정이 열악한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이뤄낸 신태용 감독. 마흔의 나이에 AFC 챔피언스리그를 평정한 그를 두고 사람들은 ‘신태용 매직’이라 말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넌 참 훌륭한 놈” 자뻑 감독
<일요신문>에서 진행한 ‘취중토크’의 최다 출연자였던 신태용 감독. 타이틀이 ‘리얼토크’로 바뀌어도 여전히 술자리 인터뷰를 즐겨 한 탓에 신 감독과는 선수 때나 지금이나 허물없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 또한 감독이 됐다고 해서 기자한테 ‘가오’를 세우거나 방송용 멘트를 절대 하지 않는다. 그냥 선수 때랑 ‘똑·같·다’. 워낙 거침없는 인터뷰를 즐기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기자가 알아서 가려 쓸 정도다.
AFC 우승으로 성남 일화는 우승 상금과 수당을 포함해서 약 50억 원의 거액을 챙겨왔다. 신 감독 표현대로 “몇 백 억씩 쓰다가 처음으로 선수들이 돈을 벌어 오니까 체면이 선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난 정말 운이 좋은 감독이다. 내가 봐도 신기할 정도로 우리 팀이 우승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선수를 보강해도 시원찮을 판에 필요한 선수들이 줄줄이 다른 팀으로 팔려 나갔다. 선수층은 얇아지고 구단 지원은 적어지고…, 도저히 아시아축구연맹에서 우승할 전력이 아니었는데도 결국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모든 건 ‘양아치’ 같아 보이는 감독을 믿고 따라온 선수들 덕분이다.”
신 감독의 리더십을 흔히 ‘눈높이 리더십’이라고 표현한다. 선수들에게 자세를 낮추고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지도 방식이 성남 일화 선수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갔던 것이다.
“실제로 운동 외적인 시간 외에는 절대로 부담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모든 건 알아서 조절하고 관리하게끔 한다. 프로 선수가 아마추어처럼 구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율 속에서 엄격한 룰이 있다. 외박을 나가도 밤 11시까진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12시 이후 술 마신 사실이 알려졌을 경우엔 엄청난 벌금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 허락 없이 외박을 했을 경우 주전 경쟁에서 제외될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부분 등이다.”
좀 더 설명을 들어보자. 신 감독은 선수들한테 가끔 외박을 준다. 지루한 숙소 생활에서 벗어나 가끔은 사생활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라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외박이라고 해서 완전한 외박은 아니다. 반드시 집에는 11시까지 들어가야 한다는 걸 명시해 놨다. 그 약속을 깨고 새벽까지 술 마신 게 들통 나면 연봉의 대부분을 벌금으로 헌납해야 한다. 12시 이후에 음주했을 경우 벌금이 무려 500만 원이다. 무단 외박도 벌금 500만 원. 음주와 외박을 같이 저질렀다면 무려 1000만 원의 벌금이 매겨진다. 만약 또 다시 음주와 외박으로 걸렸다면 2000만 원이란 거액을 순전 벌금으로만 내놓는다. 실제로 지난해 성남 일화의 한 선수가 벌금으로만 2000만 원을 토해 냈다고 한다. 일시불이 어려워 6개월 분할로 냈다고 하니 정확한 팩트다.
▲ 신태용 감독과 성남 일화 선수들이 지난 13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조바한과의 AFC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 트로피를 들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내가 의외로 ‘밤의 세계’에 아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알아서 제보를 해온다. 성남 선수 몇 명이 어느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셨다느니, 어떤 선수를 새벽에 포장마차에서 봤다느니 하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런 제보를 받으면 일단 선수를 불러서 물어본다. ‘너 어제 몇 시에 집에 들어갔어?’라고. 그러면 모두 순순히 잘못을 시인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거짓말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걸리면 봐준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벌금과 주전 제외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올 시즌에는 이렇게 벌금 낸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걱정이다. 벌금이 들어와야 선수들한테 용돈도 주고 그러는데 말이다(웃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술 마시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정규리그가 끝나거나 이번처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을 때는 밤새도록 술을 마셔도 뭐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즐긴다.
“나도 선수 때 놀 만큼 놀아봤다. 대표팀 시절에는 타워호텔에서 비상 벨트를 타고 내려와 술 마신 적도 있었고, 다시 그 줄을 타고 숙소로 기어 올라갔다가 코치들한테 죽지 않을 만큼 맞았었다. 그런데 그게 결코 선수 생활에 좋지 않더라.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선수들한테 절제와 자제를 강조하는 것이다.”
신 감독의 용병 다루기 노하우는 진짜 프로급이다. 성남에는 라돈치치, 몰리나, 샤샤 이렇게 세 명의 용병이 뛰고 있다. 한번은 라돈치치가 후반전에서만 4개의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했다. 경기 종료 후 신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있는 라커룸에서 라돈치치한테만 30분 동안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동안 신 감독의 스타일로 봤을 때는 아주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난 경기 후 미팅을 10분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라돈치치가 잘못 걸린 거다. 경기장에서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한두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했는데 용병이라고 해서 봐줬다가는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30분 동안 욕 반, 말 반해서 심하게 몰아붙였는데 나중에 라돈치치가 찾아와서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말하더라.”
신 감독은 선수들이 용병한테 반말을 하는 것도 눈감아 주지 않는다. 용병보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야, 밥 먹었어?”라고 말하는 게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야, 라돈이 네 친구야? 너희들이 자꾸 반말을 하니까 얘네들도 감독한테 반말하잖아. 나한테 ‘밥 먹어’라고 말하는 거 누가 가르쳐줬어? 너희들, 선배들한테 반말 안 하잖아. 앞으로 용병한테도 존댓말로 해, 알았어?”
마음을 열고 대하는 신 감독의 진심에 세 명의 용병들은 그를 ‘형님’으로 모시며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길 소망한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이 확정되던 날, 신 감독은 새벽까지 선수들의 음주를 허락했는데 그날 샤샤와 라돈치치가 새벽 1시에 전화를 걸어선 “보스, 우리 이태원인데 지금 보스 있는 데로 가도 돼요?”라고 물어봤다고. 그날 신 감독과 두 용병은 신 감독의 집 부근인 분당 쪽에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단다. 감독과 용병이 함께 술을 마시고 어울리는 건 성남밖에 없을 것 같다.
신 감독은 경기가 저녁에 열리는 날에는 점심 식사 이후 선수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나가서 당구를 치든, PC방에서 게임을 하든 머리를 비우고 들어오라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선수들이 당구장이 아닌 카페로 모여들었다. 차를 마시면서 그날 있을 경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역할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등 자유로운 미팅이 형성된 것이다. 신 감독의 바라는 선수들 문화였다.
하지만 결과가 좋아서 과정이 아름다워 보이지, 실제 그 과정들을 거치며 신 감독은 진한 외로움과 위기를 겪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가 구단의 재정 악화였다. 감독 입장에선 구단이 선수들을 위해 풍족한 지원을 해주길 바라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병들이 ‘형님’으로 모셔
이번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앞두고 신 감독은 성남의 박규남 단장한테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선전포고를 했다. “단장님, 만약 우리가 우승하면 나 감독 그만둘 거예요. 남자라면 최고에 올라섰을 때 물러설 줄 알아야 하는 거잖아요. 우승하면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지에 가서 감독해 보려고요.” 박 단장의 깜짝 놀란 반응에 호탕하게 웃음으로 넘겼지만 신 감독은 항상 양지만을 쫓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난 1등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1등도 해보고 꼴찌도 해보고, 팀에서 쫓겨나보기도 하고, 동남아시아 등지에 가서 지도자 생활도 해보고, 이런 선수, 저런 선수 모두 다 겪어보고 경험해 가면서 지도자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다. 젊을 때, 두려운 게 없을 때, 많은 경험을 해봐야 나중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신 감독이 이런 경험을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에 처음 밝히는 얘기라고 전제한 뒤, “막연하게 국가대표팀 감독을 운운하는 게 아니다.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때, 꼭 도전해 보고 싶다. 그래서 선수로서 못다한 한을 꼭 풀어내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홍명보, 황선홍, 그리고 또 다른 선배들과의 경쟁을 즐기고 싶다고 덧붙인다. 태극마크와 관련해 유난히 사연이 많은 신 감독. 이젠 그 악연을 인연으로, 선수가 아닌 감독이 돼서 풀어보고 싶다고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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