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조감도. |
중국 광저우시 하이신사(海心沙)섬에서 치러진 개막식은 40억 아시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600m 높이 타워에서 쏟아지는 지상 최대의 불꽃 쇼, 거대한 배 모양의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공연들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중국은 6년 전부터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해왔다. 경기장 건설 및 유지에 63억 위안(한화 약 1조 890억 원), 운용비로 73억 위안(약 1조 2600억 원), 도시 인프라 정비에 무려 1090억 위안(약 18조 8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경기 운영이나 관리 면에선 미흡하단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중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경제 대국으로서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반면, 적자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천은 아시안게임 준비 단계부터 삐걱대는 모습이다. 인천시는 7만 석 규모의 주경기장 신축이냐, 기존 문학경기장 활용이냐를 놓고 논란을 거듭해왔다. 송영길 인천시장이 “인천시 부채가 7조 원을 육박하는 상황에서 주경기장 신축은 무리”라며 문학경기장 리모델링 방안을 내세웠기 때문. 기본실시설계가 이미 89% 진행되고, 서구 지역 주민들의 토지보상이 76.8%(사업비 집행 1232억 원) 진행된 상황에서 나온 송 시장의 뒤늦은 ‘뒤집기 발언’은 인천시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서구 주민들은 4차례에 걸친 대규모 규탄대회를 진행하며 “원안대로 갈 것”을 촉구했고, 정치권에선 “정치적 이득보단 인천 시민을 먼저 생각하라”는 주장과 함께 시의원의 삭발, 서구 국회의원의 단식 투쟁 등이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 주경기장 신축에 대해 유일하게 민자 사업 참여를 검토하던 포스코건설마저 사업제안서 제출을 포기하는 바람에 아시안게임으로 인한 재정 부담은 인천시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송 시장은 기존 문학경기장 활용 방안을 접고 수정안을 꺼내들었다. 원안대로 서구에 주경기장을 짓되, 7만 석으로 계획했던 관중석을 6만 석으로 줄이고 통신 센터 등 부대시설도 축소하는 방침을 밝힌 것. 사업 방식도 민간투자사업에서 재정사업으로 바꾸기로 했다. 설계변경과 저가입찰을 통해 건설비를 절반가량으로 줄이고 정부 예산을 30% 지원받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수정안에서 발견된 몇 가지 허점들은 인천시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먼저 인천시는 정부로부터의 사업비 지원을 장담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해있다. 지난해 1월, 인천시는 국고 지원 없이 주경기장을 신축하는 것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MOU를 체결한 뒤 포스코건설과 민자 유치를 추진해왔다. 때문에 정부는 “국고 보조 없이 주경기장을 신축하는 것으로 정한 만큼 이를 다시 변경하기 위해선 예산 관련 부처와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사실상 국고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엔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아시안게임 계획을 추진해 온 송 시장의 독자적인 행보가 한몫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1일 기자와 통화한 이학재(인천 서구·강화군갑) 국회의원은 “아시안게임이 인천을 국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국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송 시장이 정부와 논의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성급한 결정을 해왔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문학경기장 활용이나 주경기장 축소 제안도 중앙 정부와 전혀 상의 없이 이뤄졌다. 게다가 아직 정부에 국비 지원 신청조차 하지 않았고, 계획변경안도 11월 18일에 뒤늦게 제출해 빈축을 샀다. 국고 지원을 바랐다면 진작부터 정부와 세부 사항을 함께 논의했어야 한다.”
민자 유치를 포기한 대신 저가입찰(실제 공사를 맡길 업체를 뽑을 때 입찰 경쟁을 붙여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뽑는 것)을 통해 시 부담을 2100억 원 줄이겠단 계산도 타당치 않단 목소리가 높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업체가 입찰 때 제시한 가격만 요구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의 업체가 입찰 때 깎인 공사비를 실제 공사 과정에서 설계 변경과 물가인상분 반영을 이유로 다시 받아내기 때문이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설계 감리나 단가 조사를 폭넓게 시행해 업체가 함부로 사업비 증액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할 것이다”며 대책을 밝혔다.
일각에선 송 시장이 전임 시장과의 차별화를 꾀해 인천시 부채 상황을 과장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송 시장이 언급한 인천시의 부채는 7조 원. 인천시 순수부채 2조 3343억 원에 도시개발공사부채 4조 4608억 원을 합한 금액이다. 그러나 도시개발공사의 부채 내역을 살펴보면 주민보상과 토지매입비가 전부다. 이는 택지개발사업 등이 완료되면 모두 회수되는 부채이기 때문에 인천시에서 도로 등의 건설을 위해 발생시킨 순수 부채와 다르다. 지난달 30일 기자와 만난 인천시 주민들은 “인천은 희망과 비전이 넘치는 도시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빚쟁이 도시’에 거주하는 가난뱅이 주민이 돼버렸다. 부채 없는 지자체가 얼마나 있겠나. 송 시장의 성급한 부채 발언이 인천시 부동산 시장을 악화시키고 인천 주민의 자부심을 땅에 떨어뜨렸다. 40억 아시아인들이 ‘빚더미 도시’ 인천을 어떻게 바라볼지 두렵다”며 씁쓸함을 전했다.
이에 대해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인천시 재정 상황이 열악한 건 사실이지만 효율적인 비용 전략을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인천의 멋과 대한민국의 미(美)를 살린 콘텐츠를 개발해 광저우와 차별화된 아시안게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