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의원. |
이번 예산안 통과를 놓고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한나라당이 정기국회 마감인 12월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 ‘부실심사’를 했다는 우려가 높은 것이다. 예산을 증액 혹은 감액하기 위해서는 여야 정책위와 예결위가 의견을 조율한 뒤 리스트를 작성해 정부에 요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올해의 경우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에 시간에 쫓겨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결위 소속의 한나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무조건 처리해야 한다는 게 당론이었다. 조정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졸속’이라고 꼬집어도 할 말이 없다”고 고백했다.
이런 가운데 여권 실세 의원들이 속한 지역구 예산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예산안 중 도로나 항만 등을 짓는 데 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은 대폭 증액됐는데, 이는 몇몇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이 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경북 포항 지역 관련 예산이 1369억 원으로 가장 크게 증가했고, 그 뒤를 이어 이주영 예산결산특위 위원장(경남 마산 갑·360억 원), 박희태 국회의장(경남 양산·168억 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한나라당이 증액을 약속했던 양육수당 예산, 영유아 필수예방접종에 대한 국가지원 예산 등 ‘서민형 예산안’은 금액이 늘어나지 않아 대조를 이룬다.
2011년도 예산안이 부실하게 심사됐다는 것은 여권 내에서 벌어진 ‘템플스테이 논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불교계 주요 사업인 템플스테이 관련 예산이 당초 한나라당이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줄어들자 여권 지도부가 크게 당황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한 청와대는 임태희 비서실장이 직접 불교계와 접촉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고 한다. 특히 그동안 불교계와 마찰을 빚어왔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관련 예산 수정 작업에 참여했던 당직자와 의원에 대해 징계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면피’ 논란을 낳고 있다.
한편, 야권에선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기국회 마감 전에 처리를 요청했고, 이 때문에 당 지도부가 무리하게 예산안 통과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청와대 배후설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 대통령 최측근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직접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에게 강행처리를 독려했다는 말들이 여권 내에서조차 파다한 실정이다. 박지원 원내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김무성 원내대표와 합의처리하자고 큰 틀에서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윗선의 지시를 받고 갑자기 한나라당이 돌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