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 허들 1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연경과 남자 허들 이정준은 한국 육상 ‘허들 커플’의 사랑을 쌓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원래는 육상 단거리 허들 커플의 알콩달콩 연애 스토리를 취재할 요량이었다. 둘이 연애를 공개한 지 4년이 됐지만, 마침 이연경(29)이 지난 11월 25일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 허들 100m에서 아시안게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이다. 세 살 연하의 남친 이정준(이상 안양시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육상 트랙종목에서 한국선수 최초로 결선에 진출해 화제를 모은 선수다. 한국신기록만 해도 여친은 7개, 남친은 4개를 작성해 커플의 합계가 11개나 됐다. 당연히 보기 드문 ‘허들 사랑’이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인터뷰는 육상계에서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한 이정준의 하소연과 이에 대한 이연경의 내조라는 심각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더없이 아름다워야만 할 허들 사랑의 주변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일요신문>이 둘을 만나봤다.
이연경 “정준이 너무 고생 많아”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 허들에 대한 둘의 애정은 각별하다. 여건이 좋고, 좋은 코치가 있다는 소식에 자비를 들여 중국, 일본 등지에서 개인 전지훈련을 했을 정도다. ‘황색탄환’ 류샹(27)이 있는 상하이의 경우 둘이 함께 찾아가 훈련을 하기도 했다.
100m 여자 허들에서 독보적인 이연경은 육상계에서 큰 잡음을 낳은 적이 없다. 하지만 2008년 한 해에만 4개의 한국신기록을 작성하며 혜성같이 나타난 이정준은 2009년과 올해는 악몽과도 같았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두기만 하면 알아서 잘 운동할 텐데 대한육상경기연맹(KAAFㆍ연맹)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정 때문에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이다.
“2009년 초였죠. 연맹에서 회장까지 나서서 자메이카 전지훈련을 가라고 했어요. 내키지 않았지만 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거기는 수용소나 다름없었어요. 침실에 쥐가 출몰하고, 방에서 잡은 바퀴벌레는 100마리도 넘을 겁니다. 식사도 워낙 형편이 없어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연맹에서는 비행기 표도 안 보내줬어요. 그래서 5개월 동안 버티다가 결국 제 돈으로 표를 끊어 귀국했어요. 한국 언론에는 ‘자메이카 유학’ 운운하며 기사가 나왔는데 실상은 끔찍했습니다. 현지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육상연맹의 모 이사가 자메이카와 비즈니스를 추진하면서 전지훈련이 기획됐다고 했어요.”
자메이카에는 이연경도 나중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연경 등 후발대는 호텔에서 묶는 등 이정준과는 다른 생활을 했다. 이연경이 호텔 뷔페에서 음식을 조금씩 싸다주면 이정준은 이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네 여자친구한테 음식 좀 많이 가져와달라 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연경은 “심해도 많이 심했어요. 정준이가 정말 고생이 많았죠. 덕분에 그렇게 잘하던 선수가 허벅지 부상을 당하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장기 슬럼프에 빠졌어요. 너무 속상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이정준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도 전지훈련을 했다. 자메이카보다 나았지만 차량 및 통역 지원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몇 달 동안 숙소에 갇혀 있기만 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정준은 연맹 고위층으로부터 ‘불만이 많고, 말을 잘 듣지 않는 문제아’로 점점 낙인 찍혔다. 이정준은 “개인훈련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까지 연경이한테 빌려 쓴 돈만 해도 한 5000만 원은 될 겁니다. 제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이연경 선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연경도 “언론과 여러 번 인터뷰를 했는데 이정준 선수가 당한 불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아 속이 상했어요. 연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잘 운동하고 있다고 거꾸로 소개되기도 해 참 황당했어요. 어쨌든 이번엔 제가 잘 했으니 빨리 정준이가 다시 한국기록을 세웠으면 합니다”하고 거들었다.
“연맹선 불만 많은 문제아 취급”
둘은 대표선수였던 2006년부터 연인관계가 됐다. 매일 같은 훈련을 하다 보니 서로에게 의지가 됐고, 3년 선후배 관계를 넘어섰다. 이정준은 “연경이는 정말이지 몸 관리를 잘해요. 우리나이로 서른이지만 몸은 20대 선수보다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연경도 이정준에 대해 “아직 나이도 젊고(웃음), 운동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요. 지금 고생하고 있지만 정말 더 잘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라고 치켜세웠다. 허들이 맺어준 사랑인 까닭에 서로의 허들에 대한 칭찬은 기본인 것이다. 각각 키가 174㎝와 185㎝인 둘은 사진을 찍을 때 근사한 남녀모델로 손색이 없었다. 주변사람들은 궁금증에 시선을 뗄 줄 몰랐다.
둘은 허들과 함께 연애를 해왔다. 원래 울산시청 소속이었던 이연경이 남친을 따라 안양시청으로 적을 옮기기도 했다. 소속팀이 같고, 둘 다 대표선수이니 자연히 함께할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참고로 둘의 기록을 보니 이연경은 13초F(한국기록), 이정준은 13초53(역대 2위)이다. 여자가 100m, 남자가 110m인 점을 감안하면 같은 조건에서 뛸 경우 남자인 이정준이 7~8m는 앞서는 셈이다.
군 입대로 결혼 계획 잠시 미뤄
그런데 이제 둘은 제법 오랫동안 헤어져야 한다. 바로 오는 12월 30일 이정준이 군입대하기 때문이다(경찰대 근무 예정). 물론 대표 소집이 되면 다시 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대표팀 상황에 따라 서로 떨어질 공산도 크다. 둘은 당초 이번 아시안게임을 끝내고, 2011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군입대 및 대표팀 소집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아직 날짜를 잡지도 못했다. 이에 이정준은 “제가 다시 한국기록을 세우면 그때 결혼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군 입대를 계기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친의 쾌거가 낙담하고 있던 남친에게 큰 자극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연경과 이정준은 현재 공히 한국기록 경신 및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 결승에 서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허들은 장애물을 극복하며 앞으로 정진하는 철학이 담긴 종목이다. 둘의 허들사랑이 남은 장애물을 마저 뛰어넘어 결승점을 1위로 통과했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들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