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데뷔 2년차밖에 안됐지만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원주 동부의 강동희 감독을 만났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대단한 감독이에요. 데뷔 2년차에 이런 성적을 내는 건 강동희니까 할 수 있는 거죠.”(전창진 부산 KT 감독) “내가 10년 지나서 터득한 걸 강동희는 1년차 때부터 했어요. 수비 전술은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어요.”(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 감독으로 데뷔한 지 2년차밖에 안 된 원주 동부 강동희 감독에 대한 선배 지도자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그것도 ‘명장’으로 평가받는 전창진, 유재학 감독의 입에서 나온 소리니 더 믿을 만하다. 요즘 농구계에는 선수가 아닌 강동희 감독의 농구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6일 현재, 전자랜드와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 시즌 전까지만 해도 농구 전문가들이 평가한 동부는 6강도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다른 팀이 좋은 선수를 영입해 전력 보강을 했다면 동부는 가드 이광재의 군 입대와 KT로 옮겨간 표명일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원주에서 만난 강동희 감독은 이전과 달리 “지금같이만 한다면 4강 진입은 물론 더 좋은 성적도 기대해 볼 만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강 감독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2년차 감독의 희로애락을 들어봤다.
날 울고 웃게 한 로드 벤슨
지난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현장. 강동희 감독은 트라이아웃이 시작되기 전부터 밤잠을 설쳐야 했다. 다른 감독들처럼 직접 외국을 다니며 선수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고 오로지 비디오만을 갖고 분석한 탓에 선수를 선발하는 데 대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까지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선수들을 고르다 로드 벤슨을 지목하기에 이른다. 다른 감독들은 연습 경기를 통해 벤슨이 근성이 없어 보인다며 외면했지만 강 감독은 NBDL(NBA 하부리그)에서 세 시즌을 부상 없이 뛰었고 리바운드 부문 1위를 하는 등 비디오를 통해서 본 벤슨은 분명 재목감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벤슨을 지명하는데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그런 장소에서 선수를 호명하는데 웃음소리가 난 건 벤슨이 처음일 것이다. 더욱이 앞으로 걸어나오는 벤슨의 모습이 가관이 아니었다. 이상한 캐릭터가 들어있는 모자와 소매 없는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내가 더 창피할 정도였다. 순간 벤슨을 지명했던 걸 철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감독마저 ‘왜 저런 애를 뽑았어?’라고 말하니까 착잡하더라. 그때 (전)창진 형만 유일하게 ‘선수 잘 뽑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분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벤슨의 경기력에 대해서.”
시범경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즌이 시작되고 경기를 치를 때마다 비디오에서 봤던 벤슨의 플레이가 살아났다. 특히 벤슨은 김주성과 함께 뛸 때 진가를 발휘했다.
“우리 팀에 들어와서 훈련하다가 한두 번 대놓고 나한테 반항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너 그럴 거면 당장 여기서 나가!’하고 난리를 쳤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뜨끔했다. 정말 짐 싸서 나갈까봐(웃음). 난 엄청나게 화를 내는 척했고, 김영만 코치가 따라나가서 벤슨을 진정시킨 뒤 차에 가서 있으라고 달랬다. 머리 나쁜 코치는 이럴 때 진짜 보내는 줄 알고 짐 싸서 내보내기도 한다(웃음). 나중에 벤슨이 내 방으로 찾아와선 ‘잘못했다’고 말했는데 그때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벤슨이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 피웠더라면 난 무릎이라도 꿇고 미안하다고 사과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웃음).”
강 감독의 용병 다루기 노하우는 전적으로 전창진 감독한테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4년간 전 감독 밑에서 코치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던 그는 “창진 형은 말썽 피우는 용병한테 진짜 비행기 표까지 끊어서 쥐어주며 나가라고 했다. 당연히 ‘쇼’였지만 왠만한 강심장 아니면 그런 제스처를 취하기 싶지 않다”라고 설명한다.
유재학 감독이 날 피하는 이유
친분이 있는 감독들일 경우 경기 전날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할 때가 있다. 허재, 전창진, 강을준 감독은 ‘당연히’ 만나는 감독이고 유도훈, 유재학 감독과도 가끔 식사를 한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이 올 시즌 들어선 이상하게 강 감독을 피하는 것 같다고 한다.
“작년에 우리가 2연패 당하고 모비스 경기를 위해 울산을 내려갔었다. 그때 재학 형이 처음으로 나한테 저녁을 먹자고 말씀하시더라. 속으로 ‘나를 위로해 주시려 그러나?’하고 자리에 참석했다. 그런데 다음날 모비스전에서 우리가 20점 차 이상으로 이겼다. 당시 1위를 달리는 모비스로선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고 재학 형이 받아들인 충격은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저녁 먹자는 얘길 안 하신다(웃음). 매번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라고 하시는데 그 멘트는 강을준 감독한테도 똑같이 하셨다고 들었다.”
강 감독은 지도자의 롤 모델로 유재학 감독과 전창진 감독을 꼽은 적이 있었다.
▲ 김영만 코치와 손을 잡고 결의를 다지는 모습. |
1년차와 2년차의 온도차
처음 동부 감독직 제의를 받았을 때 김주성이 없었다면 정중히 거절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강 감독. 그만큼 강 감독한테 김주성은 ‘고마움’의 대상이다. 아니, 김주성이란 선수를 데리고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면서 강 감독은 감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처음 경기를 치렀을 때를 회상한다.
“경기 내내 감독은 서 있게 되는데 그때 내 팔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팔짱을 끼자니 옷이 끼고(일동 폭소), 주머니에 손을 넣자니 나이 어린 놈이 건방져 보인다고 할 것 같고, 소리를 지르자니 오버하는 것 같고…, 정말 자세가 안 나와서 미칠 것 같았다. 2년차가 되니까 조금은 편해졌다. 광고판에 기대고 있을 정도니까.”
억울한 심판 판정이 나올 경우 제대로 항의를 하고 싶지만 나이 어린 감독이란 타이틀 때문에 소심한 어필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가끔은 나도 다른 감독들처럼 광고판도 뻥뻥 차고 불같이 화를 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노련한 감독들은 심판한테 어필할 때도 수가 보인다. 재학 형은 항의할 거 다하면서 테크니컬 파울을 의식해서인지 마지막엔 꼭 씨익 웃는다. 창진 형이 화낼 때는 주위에 뭐가 있으면 안 된다. 다 걷어차니까. 그런 액션을 가까이서 보면 판정하는 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기자가 물었다. “지난 번 SK전 때 보니까 양복 상의 벗어서 패대기치던데요?”라고. 그러자 강 감독이 대답하길, “그건 너무 더워서 바닥에 던진 거죠. 벗은 김에 한 번 해본 건데 아무나 할 게 못되더라고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후배 김승현에 대한 안타까움
한국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꼽히는 강 감독은 이전 사석에서 김승현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러 차례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팀 얘기지만 선배 입장에서 후배의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승현이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 기업하고 선수가 싸워서 선수가 이길 수가 없다. 그리고 기업도 선수를 상대로 복수를 하거나 진로를 막는 방법을 써선 안 된다. 그 전에 승현이가 먼저 농구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자세로 들어가고 구단에선 순순히 받아줬으면 좋겠다. 한국 농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승현이는 계속 선수 생활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승현이랑 한 번 뛰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만큼 아끼는 후배이기 때문이다.”
감독직 맡고 나서 강 감독한테는 평생 있을 것 같지 않았던 ‘불면증’이란 직업병이 생겼다. 선수 때는 눕기만 하면 3초 안에 코를 골던 사람이 아무리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가도 잠이 안 오는 병이 생겼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선두에 올랐다고 해서 좋은 게 없다. 그 자리 지키려고 더 악착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새삼 선배 감독님들이 존경스럽더라.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술을 마시거나 공포영화 보며 농구를 잊는 거다.”
마지막 질문으로 ‘지금 당장 무릎팍 도사에 나간다면 무슨 고민을 얘기하고 싶은가’하는 내용이었다.
“다섯 살, 일곱 살된 아들이 있다. 큰 애가 내년이면 벌써 학교에 가는데 애들과 몸 부대끼며 같이 놀아주지 못한 게 항상 마음에 걸린다. 애들이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친구말고 아빠를 더 좋아할 때, 옆에 없어서 나중에 애들이 크면 날 왕따시킬 것만 같다. 강호동 씨한테 그걸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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