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2년 12월 ‘초원복집사건’과 관련, 도청 현 장을 재연하고 있다.[93보도사진연감] | ||
정가에선 정 의원의 도청 의혹 제기에 대해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이번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90년대에도 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불거진 정치권의 도청 공방이 여러 차례 있었으며 이 공방이 그때마다 선거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 대부분이 모두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경전을 펼치는 인사들이다.
지난 92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터진 부산 ‘초원 복집 사건’은 최근까지 계속 세인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번 대선의 유력 후보군으로 떠오른 정몽준 의원 관련설이 끊임없이 나돌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 감정을 일으켜야 한다”는 회합을 한 것이 고 정주영 후보가 이끌던 국민당측의 도청 내용 발표로 인해 들통나게 된 것. “하여간 지역감정을 일으켜야 해” “우리가 남이가”등 당시 기관장 모임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 공개되면서 대선 직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김영삼 후보가 “이번 기관장 모임 파문의 최대 피해자는 나다”라 밝히면서 영남의 여론몰이는 김영삼 후보의 손을 들어주게 됐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당시 기관장 모임에 참석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영전을 하게 된다.
반면 대화 내용을 도청한 이들에게 도피자금 2천만원을 준 정몽준 의원은 범인은닉죄로 징역 6월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반발한 정 의원측은 곧바로 항소했지만 지난 95년 김영삼 정부의 8·15 특사로 인해 정 의원에 대한 실형선고는 무효처리되고 말았다. 아무튼 92년 대선에서 도청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됐다.
지난 94년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측에서 도청 의혹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계은퇴 선언을 했던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의 동교동 집 부근에 경찰이 안가를 소유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도청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당시 동교동측 인사는 “전화를 하다보면 중간에 끊어지는 등 도청의혹이 짙다”며 “때문에 중요한 전화를 할 때면 밖으로 나가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치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지난 94년 당시 이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이 김대중 이사장의 ‘정치권 복귀설’을 의식한다는 설이 퍼지면서 나온 공방”이라 밝힌다. 결과적으로 이듬해 김대중 이사장은 정계에 복귀했고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을 차지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올리면서 훗날 대선승리의 영광을 얻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잉태하게 된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정치권 도청 공방이 다시 불거진 것은 바로 지난 96년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가 “현 정권(YS정권)은 나를 포함해 주요인사 5천여 명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으며 기무사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대중 총재는 “대통령은 과거 군사정권과 다를 바 없는 매우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라며 “김영삼 대통령은 하루속히 과거 민주화투쟁을 하던 당시의 자세로 돌아가야 하며 그것만이 대통령직을 그만둔 뒤 아무 탈 없이 국민과 함께 사는 길”이라 공격을 퍼부었다.
당시 여권은 “김대중 총재는 30년 전부터 행해온 그의 전매특허인 흑색선전을 또 다시 이번 총선의 기본전략으로 삼으려 하고 있으나 유언비어로 정치를 오염시키고 국민을 업신여기는데 대해 국민들이 엄중히 심판할 것”이 라고 밝혔다. 자민련도 “우리 정치권은 엄연한 4당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도 김대중 총재가 확인 안된 유언비어성 내용을 계속 터뜨리는 것은 총선을 앞둔 양당구도 획책의 일환”이라 비난했다.
그러나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자민련은 국민회의와 공조를 하게 된다. 이른바 ‘목동밀약’에 따른 DJP공조가 그것. 국민회의는 여권에 대한 공격과 자신들을 비난하던 자민련 포섭에 성공하며 정권교체를 이루게 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당시 김대중 총재가 제기한 도청설이 김영삼 정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심리를 일정 부분 자극했고 이 여파는 그해 총선과 이듬해 대선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밝힌다.
지난 92년 정주영 후보측이 도청 사실을 폭로했지만 결국 대권은 여론몰이에 성공한 김영삼 후보에게로 돌아갔다. 도청에 연루된 인사들이 영전하는 일까지 생겼다. 지난 96년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측이 제기한 야당 인사들에 대한 도청설은 결국 1년 후 김대중 후보측에 승리를 안겨주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됐다. 과연 정형근 의원에 의해 불거진 이번 도청공방은 올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