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동계올림픽, 남아공월드컵, 광저우아시안게임. 2010년은 국제대회가 줄줄이 열린 ‘스포츠의 해’였다. 태극전사들의 눈부신 활약에 온 국민이 환희와 감동의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기쁨만큼 아픔도 있었다. 마약·성폭행·음주운전으로 전·현직 스포츠 선수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광경이 연출됐기 때문. <일요신문>은 2010년 스포츠계에 불거진 3대 사건 사고 그 후를 추적해봤다. 그때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선수, 지도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 3월, 경기도 K 대학 축구선수 2명이 부녀자를 상습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안산이나 대학 주변인 수원 등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다가 주로 여성이 혼자 있는 점포를 노렸다. 흉기와 테이프를 미리 준비해 부녀자를 성폭행한 뒤 손과 발을 테이프로 묶고 입을 막아 신고를 지연시키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들의 강도ㆍ성폭행 행각은 K 대 축구부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K 대학이 물의를 빚은 축구부를 해체하겠다고 발표를 한 것.
최근 2년 연속 전국대회 4강에 오를 만큼 꾸준한 성적을 낸 20여 년 전통의 축구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됐다. 구속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축구부 선수 26명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해야 했다. 학부모들은 학교를 방문해 해체 결정을 철회하라며 반발했지만 K 대학은 선수 구제 해법을 내놓지 않은 채 축구부 감독에게 사표를 종용해 원성을 샀다.
사건 이후 K 대학을 찾았다. 축구부는 해체되지 않은 채 다음 시즌을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었다. K 대학 축구부 A 감독은 “해체 발표 이후 학부모들이 지속적으로 학교와 면담을 한 결과 축구부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며 이후 소식을 전했다. K 대학은 선수 2명이 구속된 바로 다음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수습책을 내놓기도 전에 축구부 해체 결정을 발표해버렸다. K 대학 축구부 관계자는 “다른 26명의 선수들이 무슨 죄냐. 축구부는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그 이후 여러 부분에서 제재를 받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범행을 주도한 선수가 이혼한 어머니가 장애가 있어 합숙비 15만 원도 내기 힘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게 아니라 혈액 투석을 받고 있고 형편도 좋은 것으로 안다. 한 달에 용돈도 30만 원이나 받는다. 다른 한 선수도 합숙비를 못 낼 정도로 형편이 어렵지 않다.”
한편, 두 선수가 구속됐다는 소식에 가장 놀란 건 K 대학 축구부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두 선수 모두 실력도 뛰어난 데다가 평소 성실하게 훈련에 임해왔다. 이런 일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입을 모았다. A 감독은 “둘은 강도ㆍ성폭행으로 징역 8년형을 받아 복역 중이다. 선수 생활은 이제 끝이 아니겠느냐”며 씁쓸한 마음을 내비쳤다.
8월엔 마약 사건으로 축구계가 또 한 번 떠들썩했다. 전직 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 최 아무개 씨가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을 밀수하고 투약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 최 씨는 중국 상하이에서 나이지리아인에게 구입한 필로폰 약 10g을 바지 주머니에 숨겨 입국하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필로폰은 한 번 투약 시 0.03g이 사용되므로 10g은 약 330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분량이었다. 게다가 그는 공범들과 ‘펀드 조성’(돈을 모아서 마약을 구입하자는 뜻), ‘물류비용’(마약 운송, 배달 비용) 등의 은어를 사용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최 씨는 1997년 프로축구 전남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국가대표를 지냈다. 2003년, 3억 원에 포항에 입단했던 시절이 그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경기력 저하와 함께 그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최 씨를 잘 아는 축구계 관계자는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라 보상금 5000만 원을 받고 팀에서 쫓겨난 이후로 축구인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서울에 올라가 중고 외제차 판매 사업을 벌이다 사기를 당해 빚도 상당했던 걸로 안다”며 안타까워했다. B형 간염 보유자인 그는 선수 은퇴 이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K3(프로축구 3부 리그) 청주직지FC 플레잉 코치로 영입된 지 한 달 만에 건강 악화로 그만둬야 했다.
최 씨는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계속 번복하며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검찰은 그에게 징역 5년 이상의 중형을 구형해 재판에 회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 배준현 부장판사는 “수사기관에서 날인을 거부하고 조서를 바꿔달라고 하는 등 진술을 안 하다가 재판에 와서 범행을 시인하고 자백했다. 구입 경위도 시인하고 수사에 협조했기 때문에 작량감경으로 징역 2년 6월과 추징금 123만 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최 씨가 마약을 투약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5월 말에 한 번, 7월 초에 두 번 투약한 이후 7월 말 중국에서 마약을 직접 수입해 온 것. 기존에 마약을 투약한 사실은 모발 감정을 통해 덜미를 잡혔다. 배 판사는 “같이 투약한 공범이 또 있었다. 수사기관에서 별건 수사 중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한 최 씨는 현재 구금된 상태로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지난 6월엔 전직 프로야구 선수 B 씨가 성폭행 사건에 휘말려 충격을 줬다. 강남 논현동의 한 술집에서 40대 여종업원의 목을 조르고 옷을 찢은 뒤 성폭행을 한 혐의였다. 그는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그랬다”며 범행을 모두 시인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됐다.
B 씨는 청소년대표 유격수로 활약하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야구 명문으로 꼽히는 C 고등학교 내야를 책임지며 황금사자기 준우승을 견인했고, 대학 입학 후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돼 세계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프로구단 입단 이후 팔꿈치 수술이 그를 울렸다. 부상 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여러 팀을 전전하다 퇴출되고 만 것. 은퇴 이후 지도자로 변신했지만 학교 내부 사정으로 그마저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그와 함께 술집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술에 취하면 일행을 모두 집에 보내고 혼자 술집에 다시 찾아가 맘에 드는 여성에게 접근하곤 했다. 술집 사장에게 전화가 와서 비슷한 일로 몇 번 문제를 일으켰단 사실을 알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B 씨에게 지도를 받던 학생들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성실하게 지도해주셨다”며 그의 편을 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10월 18일, B 씨는 혐의없음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지인은 “B 씨가 술에 취해있는 상황에서 여종업원에게 억울하게 당한 것 같더라. 잘 해결돼서 다행이다. 그는 얼마 전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혼식도 올렸고, 야구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야구를 지도하고 있다”며 B 씨의 근황을 전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박기혁 삼진아웃 ‘와르르’
2010년 역시 음주운전으로 구설수에 오른 프로야구 선수들이 있었다. 2009년 12월 말, 두산 김명제는 음주 교통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맸다. 2005년 계약금 6억 원을 받고 화려하게 데뷔한 그였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는 그를 끝내 마운드에서 끌어내리고 말았다.
두산 이용찬도 지난 9월 6일 혈중 알코올 농도 0.066% 상태로 운전하다 음주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다. 음주 운전에 따른 징계로 잔여 경기에 출전할 수 없던 그였지만 마무리 훈련을 통해 화려한 부활을 꾀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김명제는 현재 혼자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그러나 선수로서 다시 돌아오긴 힘들 것 같아 아쉽다. 이용찬은 시련을 발판 삼아 재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며 두 선수의 근황을 전해왔다.
지난 8월엔, 롯데 박기혁이 혈중 알코올 농도 0.149%의 만취 상태에서 운전하다 경찰 단속에 걸려 물의를 빚었다. 2001년, 2003년에 이은 세 번째 음주 운전 적발이었기에 팬들의 실망은 더욱 컸다.
롯데 관계자는 “구단에서 그에 합당한 징계를 내렸고, 현재 부산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지내며 개인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잇단 음주 폭행으로 지난해 선수생활을 그만뒀다가 1년 만에 해설자로 돌아온 정수근은 지난 6월 13일 만취상태로 승용차를 몰아 택시를 들이받았다. 이 때문에 택시에 탔던 5명과 정수근 차에 동승한 여성 등 총 6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건 이후 정수근은 해설자 복귀 7일 만에 하차하는 씁쓸한 광경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