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이처럼 박 전 대표가 대선을 2년 앞두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자 정치권에선 베일에 가려졌던 박 전 대표의 인맥, 자금 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군자금’ 규모에 따라 대권 경쟁 양상이 바뀔 수도 있는 만큼 박 전 대표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 및 후원 조직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질 듯하다. 대권 레이스에서 한 발 앞서나가고 있는 박 전 대표의 ‘돈줄’을 따라가 봤다.
박전 대표의 공식 재산은 21억 6000만 원가량이다. 박 전 대표는 올해 4월 국회의원 재산공개(2009년 기준)에서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아파트(5700만 원) 및 전세권(4000만 원), 서울 강남구 삼성동 단독주택(19억 원), 2008년식 승용차 두 대(7000만 원), 예금(1억 원) 등을 신고했다. 2009년에 신고했던 23억 원보다 1억 4000만 원 줄어든 금액이었다. 민주당 의원들 평균 재산(16억 원)보단 많았지만 전체 의원(76억 원)이나 한나라당 의원(122억 원) 평균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잠재적 대권 라이벌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각각 56억, 4억 원가량을 신고한 바 있다.
‘윤호석정치연구소’ 윤호석 소장은 “(박 전 대표) 재산이 적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입지나 경력 등을 고려하면 많다고도 할 수 없다. 지나치리만큼 단순한 재산공개 목록에서 평소 박 전 대표가 돈 문제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줄어든 것은 재산뿐만이 아니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후원금 모금에서도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뒀다. 2008년 3억 6183만 원을 모금해 전체 1위를 차지했던 박 전 대표는 2009년 81위로(1억 5470만 원) ‘추락’했다. 박 전 대표는 2008년 300만 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 집계에서 1억 7600만 원으로 역시 1위에 올랐는데 이것이 지난해 대폭 줄어들면서 순위가 하락한 것이다. 2008년 당시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세운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 씨,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박 전 대통령 누나 박귀희 여사의 아들 은희만 씨, 육 여사 문중인 육만수 청학산업 회장, ‘재력가’로 알려진 신영균 전 국회의원 등이 고액 후원자 명단에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보유 재산과 고액 기부금 현황 등을 고려해볼 때 현재 박 전 대표 측이 직접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후반기로 접어든 지금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후원’이 쏠릴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앞서의 윤호석 소장은 “여권은 박 전 대표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반박’ 세력이 형성되겠지만 당분간은 박 전 대표가 정치권 중심에 설 것이다. 또한 각계에서 박 전 대표에게 ‘보험’을 들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기류 때문인지 박 전 대표 측 내부에선 ‘실탄’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측근 의원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따라잡자 순식간에 후원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본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박 전 대표가 (다른 주자들에게) 큰 격차로 앞서 있다. 돈과 사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기대했다.
사실 정치권에선 그동안 박 전 대표 재산과 관련된 미확인 소문이 무성했었다.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물려 준 막대한 유산이 숨겨져 있는데 비선라인에 속해 있는 한 최측근 인사가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도 그중 하나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 측에서 이런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실패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자문그룹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자금에 있어서 병적일 만큼 ‘투명성’을 강조한다. 아예 언급하기조차 꺼려하는 것 같다. 몇몇 핵심 인사들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박 전 대표 핵심 측근들조차 공식 후원금이 아닌 비공식적인 자금의 실체와 집행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표 비선라인을 포함한 특정 인사만이 여기에 관여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일부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몇몇 친박 의원들이 이들에게 전적으로 자금 관리를 맡기는 박 전 대표에게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러한 정치권 소문과 ‘비선라인에 의한 자금 관리’ 시각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그동안 박 전 대표가 돈과 관련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느냐”면서 “법 테두리 안에서 모은 후원금과 국고보조금만으로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의 대선 사례 등을 살펴보면 현실정치 여건상 이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전국적인 조직 관리, 당내 경선, 대선 본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이 필요한데 후원금과 국고보조금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 역대 정권에서 대선 자금이 항상 ‘판도라의 상자’처럼 여겨졌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인호 정치컨설턴트는 “비교적 돈을 적게 썼다는 평가를 받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대선자금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측근인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가 과거 그 문제로 구속까지 되지 않았느냐. 법을 파격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박 전 대표 역시 법 한도 내에서 자금을 운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에선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박 전 대표를 향한 기업들의 ‘줄서기’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11월 중순경 일부 대기업과 박 전 대표 측 간의 접촉이 뒤늦게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시 만남은 한 사정기관이 포착해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30대 그룹의 몇몇 고위급 임원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한 고급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폭탄주가 여러 차례 돌았고 참석자들은 건배사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여’란 구호를 외쳤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그 모임에 참여했던 한 대기업 관계자의 측근은 “대부분 안면이 있었다고 한다. 연말도 다가오고 해서 만난 것이었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주목받는 것 같다. 대선 얘기를 꽤 오랫동안 주고받았고 박 전 대표 측 인사가 협조를 요청했던 것으로 안다. 우리 쪽에선 박 전 대표 측이 대권 레이스를 앞두고 세 결속을 다지려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귀띔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날 모임에는 4대 그룹 중 두 곳, 굴지의 유통 및 중화학 그룹 관계자 등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계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미래 권력’에 대비한 기업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특히 4대 그룹 중 한 곳인 A 사는 총수 일가가 ‘박근혜 지지’를 확정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A 사는 지난 12월 초 극비리에 한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잠룡들의 자체 지지도를 조사했는데, 이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가 타 후보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여론조사에 관여했던 A 사 관계자는 “한나라당 후보끼리 실시한 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40%대를 넘겨 2위와의 격차가 30%p 이상 벌어진 것으로 나왔다. 전체 여론조사에서도 34%를 기록한 박 전 대표 외에는 두 자릿수가 넘는 후보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A 사 실무진은 이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경영진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A 사 관계자는 “누구보다도 차기에 민감한 곳이 재계다. 우리만 이런 여론조사를 했겠느냐”면서 “아마 대기업들 상당수가 박 전 대표와의 핫라인 개통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후원 여부는 부수적인 차원”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재계 일각에선 ‘친박’으로 분류되는 기업들 이름이 조심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딜레마’도 털어놓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 초 친박 의원들을 후원한 기업들에 대한 ‘보복성’ 세무조사가 이뤄졌다는 야권의 주장이 나온 이후 재계는 더욱 몸을 사려왔다고 한다. 또한 아직 대선이 2년이나 남은 만큼 박 전 대표에게 ‘올인’할 수는 없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박 내부에선 대기업들이 박 전 대표에게 공식·비공식적으로 후원을 늘릴 것으로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솔직히 비주류인 우리로서는 대기업들 도움이 절실하다. 박 전 대표가 예전 ‘3김 시대’처럼 적극적으로 돈을 모아오는 스타일도 아니지 않느냐”면서 “대세론이 확산되면 기업들도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박근혜 테마주 ‘들썩’
박전 대표가 대권을 향해 시동을 걸자 들썩거리는 곳이 있다. 바로 주식시장이다. ‘박근혜 테마주’로 불리는 일부 종목들이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 선봉은 박 전 대표 동생 박지만 씨가 최대주주(지분율 35.34%)로 있는 코스닥 상장사 EG다. EG 주가는 박 전 대표가 복지 공청회를 열었던 지난해 12월 20일 2만 6900원에서 12월 30일 3만 8000원으로 급등했다. 지난해 이맘때 EG의 주가는 1만 6000원대를 오르내렸다.
박지만 씨 배우자인 서향희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회사들도 주목받고 있다. 서 변호사는 2006년부터 가죽원단 제조업체인 신우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신우는 박 전 대표의 공청회 이후 다섯 차례나 상한가를 기록하며 주식시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12월 20일 664원이던 신우 주가는 12월 30일 1695원에 장을 마쳤다. 역시 서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올라 있는 동부티에스블랙펄SPAC의 경우 12월 20일 1965원에서 12월 30일 2245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2010년 5월 14일에 설립된 동부티에스블랙펄SPAC은 서 변호사가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식시장에서 ‘박근혜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회사다.
이밖에 박 전 대표 사촌인 박설자 씨 남편이 대표이사로 있는 동양물산도 12월 20일 8000원에서 12월 30일 1만 9400원으로 주가가 대폭 상승했다. 박 전 대표 팬클럽인 ‘박사모’ 간부가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건설업체 서한 역시 같은 기간 604원에서 1255원으로 두 배가량 올랐다. 지난 12월 27일 출범한 박 전 대표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한 이성민 대표의 엠텍비젼과 이경수 대표의 넥스트칩도 부각되고 있다. 엠텍비젼은 12월 27일 3780원에서 30일 4600원으로 올랐고, 같은 기간 넥스트칩은 2만 2050원에서 2만 3250원으로 상승했다.
반면 이명박 정권 출범 전부터 각광받았던 이른바 ‘MB 테마주’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MB 테마주로 꼽혔던 4대강 관련 종목 ‘이화공영’은 2007년 12월 3만 원대까지 치솟았으나 3년이 지난 2010년 12월 30일 5580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같은 4대강 관련주였던 삼호개발 역시 같은 기간 1만 6000원에서 2775원으로 급감했다. 또한 자전거 대장주인 삼천리 자전거는 이명박 정부의 ‘자전거 정책’으로 2009년 5월 3만 2600원까지 올랐으나 12월 30일 1만 400원에 장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