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한 이승엽이 삼성 라이온즈 경산볼파크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모습(왼쪽)과 오릭스 버펄로스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의 입단 기자회견.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우태윤 기자 wodosa@ilyo.co.kr |
김병현까지 합류할 가능성
‘코리안 특급 박찬호, 오사카에 도착하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의 박찬호, 버펄로스 유니폼을 입다.’ 12월 20일 일본 유력 스포츠 전문지들의 1면 기사 제목엔 온통 ‘박찬호’가 새겨져 있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노모 히데오’로 잘 알려진 박찬호지만, 그의 이름이 신문 1면에 나온 건 이례적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이날 오릭스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박찬호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오릭스 홈페이지에선 박찬호를 ‘메이저리그 통산 17시즌 동안 124승 98패 평균자책 4.36을 거둔 대투수’로 소개하며 ‘오릭스 전력에 큰 보탬이 될 선수’라고 표현했다.
사실 오릭스가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될 선수’라고 표현한 건 박찬호뿐만이 아니었다. 정확히 열흘 전, 서울 모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오릭스 본부장은 “이 선수야말로 오릭스 전력에 큰 보탬이 될 적격자”라며 한 한국선수를 소개했다. 그가 바로 이승엽이었다.
오릭스는 박찬호 영입 전 요미우리와 계약 종료된 이승엽을 극비리에 접촉, 입단을 이끌어냈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대투수와 대타자를 한꺼번에 영입한 오릭스는 “오사카에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 것”이라며 “반드시 팀 전력 강화와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큰소리쳤다.
오릭스에서 한류 바람이 정점에 달했다면 시작은 야쿠르트였다. 야쿠르트는 지난 시즌 종료와 함께 3년 계약이 끝난 임창용과 다시 3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계약액은 3년 전과 비교해 극과 극이었다. 2008년 야쿠르트 입단 당시 임창용의 연봉은 3000만 엔이었다.
그러나 재계약을 앞두고 요미우리와 한신 타이거스, 여기다 미 메이저리그팀들까지 영입 경쟁에 뛰어들며 임창용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결국, 일본에서도 짠돌이 구단으로 유명한 야쿠르트가 3년간 최대 15억 엔(약 209억 원)을 제시하며 임창용을 붙잡았다. 연봉 5억 엔은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고액이다.
임창용, 이승엽, 박찬호로 이어진 한류 바람은 김병현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라쿠텐은 호시노 센이치 감독 부임 이후 미 메이저리그 출신의 마쓰이 가즈오와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잇달아 영입했다. 두 선수 영입은 탄탄한 투수진에 비해 약점으로 지적받아온 타선 강화를 위한 강수였다. 호시노 감독은 여기다 월드시리즈 챔피언 출신의 김병현을 영입해 뒷문 강화에 방점을 찍겠다는 자세다.
만약 라쿠텐이 김병현을 영입한다면 라쿠텐은 일본프로야구팀들 가운데 메이저리그 출신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구단이 된다. 일본야구계에서 “라쿠텐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모양”이라고 농담을 던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임창용(왼쪽)과 김태균. |
“한국 스타 일본서도 통한다”
내년 시즌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5명이다. 임창용(야쿠르트), 김태균(지바롯데), 이범호(소프트뱅크), 박찬호, 이승엽(이상 오릭스)이 주인공들이다. 김병현까지 가세한다면 6명이다. 만약 배영수(삼성)가 야쿠르트에 입단했다면 7명으로 사상 최대가 됐을 뻔했다. 그렇다면 일본프로야구팀들이 앞 다퉈 한국 선수들을 영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한국야구의 우수성이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나가시마 시게오 전 요미우리 감독은 한국야구위원회(KBO)자문으로 방한한 바 있다. 일주일간 한국에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간 나가시마 전 감독은 일본 기자들에게 “한국프로야구의 질적 수준은 일본 2군 리그보다 떨어진다”는 냉혹한 평가를 했다. “투수들의 변화구라곤 커브와 슬라이더뿐이고, 타자들은 장작을 패듯 크게 스윙만 한다”는 게 나가시마 전 감독이 평가한 한국프로야구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후 일본야구계의 ‘한국야구관’은 서서히 변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마무리투수 후지카와 규지가 이종범에게 결승타를 맞아 패했을 때만 해도 일본은 ‘이변’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에 패해 목표로 삼았던 금메달이 좌절되고, 2009년 제2회 WBC에서도 한국에 연달아 패하자 일본야구계는 한국야구를 자신들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한신의 한 스카우트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는 일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게 일본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며 “예전처럼 한국야구를 한 수 아래로 생각하는 일본 야구인은 없다”고 털어놨다.
두 번째는 상품성이다. 2007년 요미우리는 SBS에 홈경기 중계권을 70억 원에 팔았다. 순전히 이승엽 덕분이었다. ‘일본프로야구의 국제화’를 외치던 요미우리였지만, 정작 중계권은 한 번도 국외로 판 적이 없었다. 2006년 이승엽을 영입하고서 처음 중계권을 팔았다. 2007년 70억 원을 받고 한국에 중계권을 판 건 일본프로야구에선 경이적인 일로 통했다.
오릭스가 박찬호, 이승엽을 거액을 주고 영입한 것도 한국에 중계권을 팔면 두 선수의 몸값 정도는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용병 잠재력보다 실력 따져
박찬호의 일본행을 지켜본 베테랑 일본 스카우트는 “오릭스가 박찬호를 즉시 전력감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즉시 전력감이라, 무슨 말인가 싶었다.
“2004년 이승엽이 지바롯데 마린스에 입단할 때만 해도 한국 선수들은 예외 없이 ‘1년 2군 경험 2년째 1군 승격’이란 순서를 밟았다. 그러나 2008년 임창용이 야쿠르트에 입단하고서 이 같은 공식이 깨지고 ‘데뷔 첫 해 풀타임 1군’이 공식화됐다. 올 시즌 이범호가 실패를 맛보긴 했지만, 김태균은 1년 내내 1군에 머물렀다. 오릭스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풍부한 박찬호라면 2군 경험 없이 바로 1군에 투입될 전력으로 생각한 것 같다. 오릭스가 이승엽한테 1년 계약을 제시한 것도 즉시 1군 전력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일본프로야구에선 ‘가능성은 둘째’다. 과연 이 선수가 당장 1군에서 얼마나 뛰어난 활약을 펼칠지가 영입의 최우선 순위다.”
맞는 말이다. 최근 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 영입은 이름값에서 실리로 바뀌고 있다. 고액을 지급해야 하는 한국 선수는 말할 것도 없다. 실제 예가 있다. 일본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내년 시즌을 끝으로 FA로 풀리는 이대호(롯데)보다 정대현(SK)한테 더 관심이 많다. 정대현이 이대호보다 상대적으로 몸값이 싸고, 일본프로야구에서 바로 통할 즉시 전력감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찬호가 뜬다고? 스포츠케이블들 초비상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스포츠 케이블채널들에 시청률 비상이 걸렸다. 박찬호, 이승엽이 뛰는 오릭스 경기가 안방에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2006년 이승엽의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경기가 생중계되면서 프로야구 시청률은 급감하고, 광고도 뚝 떨어진 바 있다. 방송가에선 “오릭스 중계 파급력이 2006년 요미우리보다 몇 배는 위력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한 경기에 4번 남짓 타석에 서는 이승엽은 타석 때만 채널을 돌려 보면 그만이지만, 선발이 유력한 박찬호는 1회부터 강판당할 때까지 TV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릭스 홈경기 중계권은 SBS가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방송가에선 CJ가 운영하는 XTM과 SBS가 중계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오릭스 홈경기 중계권 판매를 맡은 오릭스 캐피탈 코리아가 SBS 실무진만 접촉하면서 XTM은 협상 테이블마저 앉지 못했다. <일요신문>의 취재결과 SBS와 협상을 마친 오릭스 캐피탈 코리아 고위인사가 지난해 12월 말 방일해 구단 측에 협상 결과를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릭스는 내부 회의를 거쳐 한국 내 중계사를 SBS로 최종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오릭스 홈경기 중계권료는 최소 40억 원, 많게는 60억 원으로 알려졌다. 오릭스 내부에서 “박찬호의 몸값 연봉 120만 달러(약 13억 6000만 원), 인센티브 100만 달러(약 11억 3000만 원)와 이승엽의 연봉 1억 5000만 엔(약 20억 8000만 원) 정도는 중계권료로 충당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있었음을 고려할 때 “40억 원 이상은 확실하다”는 게 방송계의 중평이다.
SBS는 과거 국내프로야구 방송시간대에 요미우리 생중계로 비난을 샀던 SBS스포츠 대신 경제채널인 SBS CNBC를 통해 오릭스 홈경기를 중계할 예정이다. SBS 관계자는 “지난해 XPORTS를 인수해 재출범한 SBS CNBC의 인지도 향상과 보급 가구수 확대를 위해 오릭스 중계를 킬러 콘텐츠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시노 감독이 뒤에서 ‘팍팍’
박찬호에 이어 ‘풍운아’ 김병현도 일본에서 뛸까? 지난 11월부터 한·일 스포츠전문지에선 ‘김병현이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할 것’이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만약 김병현마저 일본프로야구에서 뛴다면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인 투수 2명이 한꺼번에 일본에서 활약하게 된다.
김병현의 라쿠텐 입단 소문은 11월 16, 17일 양일에 걸쳐 실시한 입단테스트부터 시작됐다. 당시 비밀리에 진행된 입단 테스트에서 김병현은 다부치 고이치 라쿠텐 수석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약 40개의 공을 던졌다. 외부에 알려지기엔 김병현이 시속 140㎞대의 속구를 던졌다는 것이지만, 현장에 있던 라쿠텐 관계자는 “김병현의 속구가 시속 130㎞ 초반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날 입단테스트를 통해 김병현이 라쿠텐에 눈도장을 찍었다고 알려진 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라쿠텐 내부 관계자는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김병현 영입에 회의적이었다”고 털어놨다. “구속이 너무 느리고, 몸 상태 역시 완벽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코칭스태프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김병현 영입에 적극적이었다”고 밝혔다. 바로 호시노 센이치 라쿠텐 감독이었다. 호시노 감독은 코치와 구단 프런트에 “몇 년 간 쉰 투수에게 당장 큰 기대를 하는 건 무리”라며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된 베테랑 투수이니만큼 시간을 두고 지켜볼 것”을 주문했다.
12월 중순 국내·외 스포츠전문지에서 김병현이 라쿠텐 입단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나왔다. ‘김병현과 라쿠텐이 계약과 관련해 막바지 조율 중’이란 소식도 전해졌다. 실제로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라쿠텐 고위관계자가 극비리에 방한해 김병현을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라쿠텐 고위관계자는 김병현에 계약 대신 스프링캠프 합류를 제의했다.
라쿠텐 관계자는 “구단 고위층이 ‘호시노 감독이 다시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는 뜻과 ‘내년 2월에 열릴 라쿠텐 스프링캠프에 와도 좋다’는 의사를 김병현에 전달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김병현이 어떤 답변을 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쿠텐 관계자는 “정작 일본 언론은 조용한데 한국 언론에서 김병현 영입을 너무 앞질러 보도하고 있다”며 볼멘소릴 하고 있다. 김병현 에이전트의 말만 듣고 영입을 확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쿠텐 고위층이 전격 방한해 김병현과 접촉한 것만 보면 영입에 회의적인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영입을 둘러싸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올 시즌 퍼시픽리그 최하위 라쿠텐은 이와쿠마 히사시 등 10승 투수 세 명을 보유하는 등 선발진은 강했지만, 마무리는 허약했다. 와기시 쓰요시와 고야마 신이치로가 번갈아 마무리로 나섰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된 김병현이 제 실력을 회복하면 당장 마무리로 활용하고 싶다는 게 라쿠텐의 생각이다.
라쿠텐은 김병현이 내년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경우, 그 결과에 따라 영입 여부를 확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라쿠텐 내부에선 메이저리그 베테랑 투수의 예우를 들어 내년 1월까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