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FC에서 파죽의 5연승을 기록한 김동현을 부산에서 만났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네이트 디아즈를 꺽은 그날의 영광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김동현은 용인대 유도학과 출신이다. 하지만 체육특기자로 입학을 한 게 아니라 대학수능점수와 실기를 통해 ‘가까스로(?)’ 대학 문턱을 넘었다. 당연히 전국대회 수상 경력도 없다. 하물며 중·고등학교 교내 유도대회 상장 한 개 없다. 도대체 대학 입시 실기테스트를 어떻게 통과했을까.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때는 선수가 되고 싶기보다는 남자들 세계에서 강자로 인정받으려 했거든요. 즉 어떤 사람도 날 쉽게 건들지 못하게끔 ‘짱’이 되고자 했던 거죠.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는 태권도 유도 합기도를 함께 배웠어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세 군데 도장을 다니느라 도망치기 일쑤였고요. 그때 제일 열심히 운동했던 게 유도였고, 유도를 제대로 배우면서 제법 실력을 갖췄어요. 공부는 정말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가려면 시험을 봐야 하고, 반타작은 해야 통과할 수 있다고 해서 고3 때부터 정신 차리고 공부한 덕에 400점 만점 중 230점을 받게 되었죠. 우리 학교에서 대학 제일 잘 간 아이로 서울대 간 애 빼놓고 제가 손꼽힌데요. 개천에서 용 났다고.”
용인대 입학 후 김동현은 잠시 슬럼프에 빠진다. 유도학과에 입학하면 유도만 배울 줄 알았는데 1학년 때는 전공보다 교양과목에 더 치중하는 커리큘럼으로 인해 학교 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 전공 수업을 제가 대신 들어가기도 했어요. 유도를 더 배우고 싶어서요. 그러다보니 전공은 A플러스인데 일반과목은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죠. 유도를 배우려 했던 가장 큰 목적은 격투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1학년 마치고 해병대 군복무 제대 후 그때부터 격투기 훈련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김동현은 부모의 지원 없이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건설현장의 막노동 일부터 생선가게 점원, 공연장 경호원, 하수구 뚫기 등 몸을 써서 하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2학년 때 무작정 뉴질랜드로 떠났어요. 한국에선 도저히 돈을 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죽어라 일하고 돈을 벌어 와서 운동을 계속하자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정작 외국 생활을 해보니까 돈이 모이질 않더라고요. 영어 안 되지, 대학 안 나왔지, 이러다보니 거기서도 최저 임금자로 취급받았어요. 곧장 귀국했지만 서울 와서도 알바 세계를 전전했었죠. 한번은 신사동의 한 전봇대에 붙어 있는 ‘건축 설비 기사 구함’이란 광고 전단을 발견했어요. 기사 자격증은 없지만 채용해달라고 애원을 했더니 담당자 분이 절 데려 간 곳이 건축 설비를 하는 곳이 아닌 하수구 뚫는 식당이었어요. 2년 정도하면 돈은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전에 제가 죽을 것 같아서 그만뒀죠.”
격투기를 하기 위해 돈을 모으던 김동현은 운동과 생업을 병행해선 이도 저도 아닌 선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과감히 알바를 그만두고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을 하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 격투기하는 걸 결사 반대했던 부모님이 마음을 돌려 김동현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 시작하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래도 생활이 나아지진 않았어요. 대전료라도 받아서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20만 원짜리, 50만 원짜리 경기도 해봤고 잘나갈 때는 100만 원짜리 경기도 뛰었어요.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대전료가 좀 더 오르긴 했는데 그래도 1년에 300만 원 수입이 전부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UFC 진출에 대한 꿈이요.”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로 인식돼온 UFC에 동양 선수, 그것도 최초로 한국 선수가 진출했다는 사실은 UFC 내에서도 작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슈퍼액션이란 케이블 채널이 UFC와 중계권 협상을 맺으면서 김동현의 UFC 진출은 인생 최대의 기회이자 행운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2승2패만해도 성공이라고 마음먹었어요. 솔직히 5연승을 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워낙 강자들만이 살아 남는 곳이고, 동양 선수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버틸 수 없을 거라 예상했는데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인생이 항상 바닥만 존재하는 건 아닌가 봐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3만 원짜리 월세방 신세였던 사람이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UFC에서의 새내기 김동현은 임팩트가 강한 시합을 하지 않는 한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기가 어려운 존재였다.
“UFC 시합은 대회 4일 전에 도착해야 하는 룰이 있어요. 처음에는 순진하게 그 룰만 생각하고 한국에서 딱 4일 전에 라스베이거스에 갔었죠. 시차도 적응 안 되고, 체중 조절에도 문제가 있고, 정작 경기 당일, 옥타곤에 들어섰는데, 죽을 것 같더라고요.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세 번째 경기부터는 요령이 생겨서 항공 스케줄을 조절해 일찍 들어갔어요. 훈련할 수 있는 체육관도 알아보고, 현지 교민들로부터 도움도 받고 하면서 조금씩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갔죠.”
인터뷰 중에 김동현을 알아본 한 아저씨가 축하 인사를 건네며 이런 얘기를 꺼냈다. “이제 떴으니까 추성훈 선수처럼 영화도 찍고 방송 출연도 많이 하라”는 내용이었다. 가볍게 응수하던 김동현이 기자한테 이런 생각을 내비쳤다.
“전 추성훈 선수랑은 색깔이 많이 달라요. 그 분은 남다른 인생 스토리나 멋진 모습 등이 어우러져서 인기 스타로 떠올랐지만 전 단지 격투기 선수로 성공하고 싶거든요. 스타가 되는 것보단 진정한 무사를 꿈꿔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좋은 롤 모델로 비춰졌으면 해요. 물론 유명해지는 것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겠지만 격투기 선수로 성공한다면 다른 부분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요? 그래도 저, CF도 찍었잖아요. 그 정도면 됐죠 뭐.”
김동현은 UFC에서 공공연히 웰터큽 최강자인 챔피언 조르주 생피에르와 맞붙고 싶다고 말했다. 그와 타이틀전을 벌이려면 앞으로 남은 경기들에서 진정한 파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타이틀 도전 자격을 획득해야 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경우의 수를 뛰어 넘어야 한다. 그래도 GSP에 대한 일방적인 구애를 멈추지 않는다.
“만약 GSP와 대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부터 훈련 안 할 것 같아요. 왜냐고요? 훈련하다가 다쳐서 부상으로 뛰지 못할까봐. GSP한테도 전화해서 훈련 안 할 테니까 당신도 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 그도 다치면 못 뛰니까요. 전 그 사람을 이긴다, 어쩐다 하는 생각은 안 해요. 그저 그와 한 무대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찰 것 같거든요. GSP는 제가 격투기를 하는 존재의 이유예요. 항간에 웰터급에서 GSP가 싸울 상대가 없어 미들급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돌더라고요. 그럼 저도 그를 따라 갈 겁니다. 그만큼 GSP의 경기를 좋아하고, 그와 같은 사이즈의 크기로 포스터에 실리는 게 꿈이에요.”
1년 대전료가 고작 300만 원이 전부였던 시절을 벗어나 지금 김동현의 UFC 대전료는 7만 달러(8000만 원)로 올라섰다. 2년6개월가량 대전료로만 벌어들인 수입이 30만 4000달러(약 3억 5000만 원)에 이르는 데다 스포츠 의류 광고와 스폰서 등을 합쳐 5억 원 이상의 수입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부산에 아파트도 장만했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SUV차도 몰고 다니면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여섯 게임 정도를 하면서 저에 대한 단점과 부족한 점들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체력과 파워가 약하다거나 임팩트가 강한 경기 운영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전 일단 이기는 게 중요해요. 이겨야지만 GSP랑 맞붙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단점을 제대로 보완할 겁니다. 그래야 GSP가 저한테 관심을 둘 테니까요. 그 목표를 이룬 다음,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김동현이 훈련하는 부산 체육관은 굉장히 춥고 낡았다. 말이 체육관이지,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일부 팬들은 김동현이 미국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은 환경이 좋아요.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요. 하지만 절 가르치는 양성훈 관장님과 계속 함께하고 싶어요. 양 관장님한테 배우면서 여러 가지 행운이 찾아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지 않으세요? 이렇게 낡고 추운 체육관에서 UFC 5연승을 이룬 선수가 나왔다는 사실이요?”
부산=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