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딸랑 딸랑딸랑…….”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오고 행인들의 진입이 통제되자 자그마한 기차가 “쇠엑” 하고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칙칙폭폭 지나간다. 도무지 거짓말 같은 제주의 풍경. 여기가 대체 어디야?
이 놀라운 곳은 교래곶자왈 지대를 누비는 대한민국 최남단 철도 ‘에코랜드’다. 겨우 몇 개월 전 개통한 탓에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철도다. 제주도민조차 태반이 “어, 그런 곳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에코랜드는 돌문화공원에서 가깝다. 1118번 도로(남조로)상에 자리하는데, 97번 도로(번영로, 구 동부산업도로)를 타고 제주시에서 표선면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1118번 도로가 나온다. 이 길로 갈아탄 후 약 10분쯤 가면 오른쪽에 돌문화공원이 있고, 그곳에서 다시 약 1~2분 더 달리면 왼쪽에 에코랜드가 나온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1221-1번지 일대다.
철도는 장거리 대량 운송 수단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제주에는 기차가 달리기 어렵다.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를 남북으로 횡단하는 데 겨우 1시간, 해안을 따라 한 바퀴를 완전히 도는 데 2시간. 해저터널이라도 뚫지 않는 이상 기차가 다니기에 이 섬은 너무나 작다.
그런데, 교통이나 운송의 수단이 아니라 단지 여행의 수단이 된다면 어떨까? 에코랜드는 그 점에 주목한 철도다. 바쁜 사람들을 실어 나르거나 끙끙 거리며 짐을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히 제주 특유의 숲인 곶자왈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철도, 그것이 바로 에코랜드다.
에코랜드의 기차는 1800년대 증기기관차인 볼드윈기종을 모델로 영국에서 제작한 링컨 기차다. 기관차 뒤로 10량쯤 되는 객차가 달려 있는데, 보통 기차보다는 그 규모가 훨씬 작다. 2분의 1 정도 크기를 생각하면 된다. 에코랜드에서는 총 5대의 기차가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에코랜드의 기차가 제주 최초의 기차는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터. 하지만 정말이다. 제주에는 이미 기차가 있었다.
제주시 연동에 가면 삼무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까만색 기차가 한 대 있다. 등록문화재 414호로 지정된 이 기차는 미카형 증기기관차 304호로 1944년 일본에서 제작되고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것이다. 한때 신의주와 부산을 왕복했던 것으로 분단 이후에는 경부선과 호남선을 달렸다. 디젤기관차가 등장하면서 1967년 퇴역했다. 이때까지 운행거리가 총 226만 4000㎞에 달한다. 지구의 둘레가 4만㎞이니 무려 지구를 57바퀴 가까이 돌 만큼 열심히 달린 기차다.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이 기차는 1978년 어린이날을 맞아 ‘물 건너온’ 것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차를 볼 수 없는 섬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보냈다고 한다. 거지·도둑·대문이 없는 것을 자랑하는 삼무공원에 ‘없어서 부러워했던’ 기차가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어쨌든 에코랜드 기차는 삼무공원 것 다음으로 제주라는 섬으로 들어온 기차다. 대신 삼무공원의 것은 달리지 않는 박제된 철마, 에코랜드의 것은 쌩쌩 잘만 달리는 철마. 움직이는 기차로는 에코랜드의 것이 ‘최초’다.
에코랜드 기차는 교래곶자왈 지대를 누빈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바위와 가시덤불이 뒤엉킨 지대인 ‘자왈’의 합성어로, 화산분출 후 용암지대에 형성된 제주만의 우거진 밀림을 뜻한다. 제주의 곶자왈은 조천-함덕지대, 애월지대, 교래지대, 구좌-성산지대로 나뉘는데, 교래곶자왈 지대는 약 500종의 식물과 노루, 고라니, 산새 등이 어울려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다. 이곳에는 특히 제주상사화, 주걱일엽, 금새우란, 으름난초 등 국내 분포가 불연속적이고 제한된 식물들이 자란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기차는 이렇게 멋진 제주의 밀림을 천천히 훑으며 나아간다. 메인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에코브릿지, 레이크사이드, 피크닉가든, 그린티&로즈가든역 등 독특한 역들을 지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가장 먼저 지나는 에코브릿지역은 간이역이다. 약 2만여 평 규모의 호수에 수상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호숫가를 따라 산책을 하거나 수상데크를 통해 호수를 가로질러 걷기에 참 좋다. 이곳에서는 그 다음 역인 레이크사이드역까지 걸어갈 수가 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면 억새터널을 지난다. 제주의 억새는 아직까지도 마르지 않고 은빛의 자태를 뽐낸다.
레이크사이드역은 예전에 말을 기르던 초지다. 이국적인 풍차가 눈길을 끈다. 레이크사이드역은 그 이름처럼 호수와 접해 있는데, 이곳에서는 육상과 수상을 맘대로 오가는 호버크래프트라는 기구를 체험해볼 수 있다.
피크닉가든역은 드넓게 펼쳐진 금잔디광장이 무척 아름답다. 봄가을로 가족들과 피크닉을 즐기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그린티&로즈가든역은 제주의 오름을 재현한 동산과 녹차밭, 야생화원 등이 있는 곳이다. 봄에는 장미가 특히 아름답다.
이 모든 역들을 지나 기차가 메인역으로 돌아오기까지 총 1시간이 걸린다. 거리는 4.5㎞. 성인이 1시간에 4~5㎞를 걸으니, 달린다기보다 느릿느릿 기어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하지만 그 덕에 빨리 가면 놓칠 수 있는 풍경들이 모두 가슴에 와 안긴다. 이 느림보 기차를 타고도 사람들이 불평을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제주공항→97번 번영로(구 동부산업도로)→봉개동→검문소(남원 방향으로 우회전)→1118번 도로(남조로)→돌문화공원 방면→에코랜드 ▲먹거리: 교래리 쪽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 교래사거리에서 산굼부리 방면으로 가다보면 맛집이 많다. 꿩, 토종닭, 흑돼지 요리를 주로 하는 음식점들이다. 지난해 여름 물찻오름 숲길을 소개할 때는 꿩 육수가 일품인 교래손칼국수(064-782-9870)를 추천했는데, 이번에는 토종 옻닭을 잘 하는 해락원(064-784-3378)을 추천한다. 다른 곳과 달리 전복과 게 등을 넣어 국물이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닭고기를 다 먹으면 녹차밀면을 넣어 육수에 끓여 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잠자리: 에코랜드 인근에 숙박할 곳이 더러 있다. 에코랜드에서 교래리 방면으로 조금 내려오면 비엔빌(064-782-6445)이 있다. 반대편 돌문화공원 약 2~3분 올라가면 사계절펜션(064-784-5662)이 있다. ▲문의: 에코랜드(http://www.ecolandjeju.co.kr) 064-802-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