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민주당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전국위원장 선출을 위한 합동연설회에서 손학규 대표가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민주당은 지난 연말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처리에 반발해 장외투쟁을 시작한 이후 성과가 없다는 비판에 시달려온 터라,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모멘텀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그것을 민주당의 집권 전망을 높이는 사례로 들기는 힘들다.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정책적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미 당론으로 채택한 복지정책은 무상급식과 무상의료다. 여기에 지난 13일 의원총회를 열어 무상보육과 대학생 반값등록금 정책을 제시했다. 비록 재원확보방안에 대한 당내 이견 때문에 당론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정책기조로는 채택됐다. 이른바 ‘3(무상급식·의료·보육)+1(반값등록금)’의 무상복지 전략이 세워진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치밀한 프레임 전략이 들어 있다. 선거구도가 어떠한 이슈의 대결로 짜이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고전적인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 차기 선거에서 여야 간 대결 구도가 ‘복지 대 반(反) 복지’로 짜이는 것을 전제로, 미리 이슈를 선점해 선거판을 주도하겠다는 의도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프레임 전략을 구사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고 판단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형성된 안보정국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안보강화를 주문하면서 대북 강경발언을 쏟아내자 민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는 문구를 선거 구호로 내세웠다. 결국 한반도 긴장이 지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민심의 호응을 얻어 민주당은 지방정부의 정권교체를 이뤘다.
이와 관련, 박지원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보편적 복지, 복지문제가 정치권에서 화두로 이슈화된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며 “한나라당에서 안상수 대표는 ‘70% 복지’, 박근혜 의원은 ‘한국형 복지’를 얘기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무상복지로 이슈 대결의 판을 형성한 만큼 한나라당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노골적인 프레임 전략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2012년 대선 때까지는 1년 반, 2년의 기간이 있기 때문에 무상복지 ‘3+1’을 계속 수정, 보완, 업그레이드를 시켜갈 것”이라며 “이것은 2012년에 우리가 집권했을 때 5년간 순차적으로 집행할 정책이기 때문에 일종의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전현희 대변인도 “민주당이 제안한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정책은 현재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인 보편적 복지 이념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아직은 초기단계라 구체적인 방법이 정교하게 다 정리되지는 않았으나, 이 내용은 민주당이 집권시 추구해 나아갈 보편적 복지의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향후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과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과 여론을 수렴하여 수정보완하고 보다 정교하게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무상복지 드라이브는 차기 총선과 대선의 판세를 가를 중산층과 서민의 표를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에 대해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당 지도부 내에선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복지 이슈의 경우,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결국은 표가 된다’는 경험을 믿는 것이다.
지난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는 ‘농가부채 탕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신한국당 후보였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그때 김대중 후보의 공약이 언론과 사회단체로부터 무책임한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농민들의 표가 상당히 많이 김 후보 쪽으로 갔다”면서 “유권자들은 특정 정책의 적정성 여부를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다는 그저 ‘해주면 좋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성과를 확신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진영 후보들이 당선되는 데 무상급식 공약이 만만치 않은 위력을 발휘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손해 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상복지 정책이 그 효용성에도 불구, 당내 노선갈등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무상보육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못한 배경에도 이런 기류가 작용했다.
당시 의총에서 9명의 의원들이 토론에 나섰는데, 모두 무상복지 정책에 대해 확실한 재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중 강봉균, 이용섭, 조영택, 장병완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각료를 지낸 정책통들이다. 정장선, 김동철 의원도 정책위의 안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이들은 손학규 대표와 가깝다. 그밖에도 손 대표와 가까운 중도성향의 의원들이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여론에 민감한 편이다. 손 대표가 “무상복지 정책의 재원 문제에 걱정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현재 손 대표는 ‘집토끼를 먼저 잡자’는 차원에서 진보강화를 내건 당의 노선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그가 중산층을 겨냥한 ‘산토끼 잡기’에 나설 경우 계파 간 정책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무상 복지를 내세운 프레임 전략이 외부 적을 겨냥한 무기로 쓰이기 전에 내부에서 제 발목을 잡는 무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 web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