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관람’으로 기지개 켰지만 국산 대작들 여전히 개봉 미뤄 OTT에 주도권 내줄 수도
#‘분노의 질주’의 성공
5월 19일 개봉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개봉 첫날 4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날이 석가탄신일로 휴일이었다고 하지만, 이 수치는 코로나19 창궐 이후 최고 오프닝 성적이었다. 2020년 배우 강동원·이정현과 황정민·이정재를 앞세운 영화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각각 35만 3000여 명, 34만 4000여 명에 그쳤던 것을 고려하면 관객이 ‘대작’에 목이 말라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분노의 질주’는 개봉 첫 주 수월하게 100만 관객을 돌파한 후 1주일 만인 25일까지 126만 관객을 모았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의 성공을 ‘보복 관람’으로 보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며 백화점·마트 등이 엄청난 매출을 기록하는 ‘보복 소비’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은 2010년대 들어 1인당 연평균 극장 관람횟수가 4회 이상을 유지하며 전세계 1위였다. 하지만 2020년 4분의 1 토막이 나 1.15회에 그쳤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으로 밀폐된 공간에 다수가 모이는 극장행을 꺼린 것과 더불어 관객이 줄자 주요 영화들이 일제히 개봉을 미룬 것이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최근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외에도 배우 공유·박보검 주연작인 ‘서복’, 설경구·변요한의 ‘자산어보’, 강하늘·천우희가 출연한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 티켓파워가 강한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하며 다시금 극장문을 두드리는 관객이 늘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멀티플렉스 시스템이 잘 구축된 한국에서 영화는 관객들이 가장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다. 게다가 다른 국가에 비해 평균 관람료도 낮은 편”이라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극장에서는 단 1명의 확진자도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극장에 대한 두려움 역시 많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착륙 성공한 OTT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의 성공을 ‘블록버스터의 성공’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 시리즈의 특성상 대규모 카체이싱을 비롯해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래서 CGV 아이맥스와 롯데시네마 슈퍼플렉스 등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이 영화를 확인하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스크린을 통해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영화들의 부진은 향후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월 말∼4월 초 개봉한 한국 영화 ‘자산어보’, ‘서복’, ‘내일의 기억’,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흥행 추이를 살펴보자. 각각 33만, 38만, 33만, 36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네 편을 모두 합쳐도 140만 명 수준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기대작 한 편이 개봉 2∼3일 만에 거둘 수치다. 출연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을 때도 아쉬움이 크다.
이 가운데 ‘서복’을 제외하면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다고 보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물량 투입이 적으니 볼거리보다는 스토리 위주로 흘러가는 영화들이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최근 규모가 작은 영화들 위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자본이 투입된 한국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관객들이 극장을 외면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이 만성화되면 ‘극장에서 볼 만한 한국 영화가 없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어 우려된다. ‘분노의 질주:더 얼티메이트’의 성공에서 알 수 있듯 큰 화면으로 즐길 만한 콘텐츠라면 관객들이 기꺼이 극장을 찾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복’은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는 토종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티빙을 통해 동시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미 티빙에 가입한 이들이라면 굳이 웃돈을 주고 극장에서 ‘서복’을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2020년 ‘승리호’, ‘사냥의 시간’, ‘콜’ 등 극장 개봉을 목표로 제작됐던 영화들이 줄줄이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극장 개봉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으로 인해 세 영화 모두 제작비를 회수하고 적잖은 수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사와 투자사 입장에서는 코로나19 직격탄을 피한 결과라 할 수 있지만, ‘OTT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란 우려 또한 크다. 이 관계자는 “향후 넷플릭스나 티빙과 같은 OTT 동시 공개 혹은 단독 공개 형식으로 대중과 만나는 콘텐츠가 늘어날 것”이라며 “이 같은 OTT의 성장은 향후 극장업계가 가장 크게 고민하고 대응해야 할 지점”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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