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31일 카타르에서 돌아온 지 19시간 만에 독일로 떠나는 손흥민을 <일요신문>이 만났다. 아시안컵을 통해 선배들에게 전수받은 게 많다는 손흥민은 어서 빨리 이 ‘비법’을 실전에 적용해보고 싶다며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공항에 몰려든 소녀팬, 깜놀~
아시안컵 대표팀 최종 엔트리가 발표된 지난 12월 24일, <일요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직 꿈속에 있는 듯하다”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막내 손흥민의 모습은 없었다. 어엿한 태극전사 한 명이 눈앞에 보일 뿐이었다.
“한 달 새, 한두 살 더 먹은 느낌이에요. 아시안컵이란 큰 대회를 경험하면서 제 자신이 더욱 성숙할 수 있었어요. 대표팀에서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또 경기를 뛰면서 제 부족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아시안컵을 경험하기 전과 후, 제 속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한 달 새, 달라진 건 또 있었다. 아시안컵 출국 전까지만 해도 사인과 사진 촬영을 부탁하던 팬들이 간간이 보이던 것과 달리, 지난 30일 오후 입국장엔 손흥민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손흥민은 그를 둘러싼 수천 명의 여성팬들 속에서 ‘연예인급 경호’를 받으며 어렵사리 공항을 빠져나갔다. 왼손 손등에 생겨난 상처 역시 그때 생긴 것. 손흥민은 “영광의 상처”라며 새빨갛게 부어오른 왼손을 들고 웃어 보인다.
“어제 정말 죽을 뻔했어요(웃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죠. 그렇게 많은 팬들이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저를 향해 초코파이가 막 날아오더라고요. 봉지채로요. 제가 군것질을 좋아하는 걸 아셨는지 사탕, 초콜릿 등을 제일 많이 주셨어요. 비타민제를 주신 분도 있었고, 팬레터도 받았습니다. 이리저리 떠밀려 공항 밖으로 나가느라 제대로 인사도 못했어요.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에게 죄송하더라고요. 팬들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더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팀 합류 직후, 손흥민은 ‘대선배’ 박지성과 한 방을 썼다. 잠을 미루고 호텔 로비에서 대기하던 그는 ‘대선배’가 모습을 보이자마자 재빨리 짐을 받아드는 열의(?)를 보였다. 까마득한 선배와 함께 생활하게 된 손흥민. 불편함은 없었을까.
“지성이 형은 남에게 피해주는 걸 싫어하세요. 제가 편하게 방을 쓸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도 하루하루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정말 ‘대선배’시잖아요. 휴식 시간엔 방에서 3D 안경을 끼고 아이패드로 쇼 프로그램을 보시더라고요. 혹시 방해될까봐 감히 같이 보고 싶단 말도 못 꺼내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어요. 행여 코를 골까봐 엎드려 잤고요. 코를 크게 곤 날도 있었는데 아무 말씀 안하시더라고요(웃음).”
배운 점도 많았다. “지성이 형은 뭘 해도 남들과 달라 보였어요. 지성이 형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어요. 카리스마를 넘어서는 뭔가가(웃음). 그라운드 위에서는 물론이고 축구 외적인 부분까지 전부 닮고 싶어요.”
박지성은 지난 1월 31일 가진 은퇴 기자회견에서 손흥민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이에 대한 그의 소감을 물었다. “지성이 형과 한 방을 쓸 때였어요. 매일 밤 자기 직전, ‘넌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땐 농담으로 듣고 ‘형, 부담 주지 마세요’라고 답하곤 했는데 그 얘길 듣고 정말 놀랐죠. 정말 영광입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린 소감은 어떨까. 손흥민은 인도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 출전해 4 대 1 승리를 확정하는 쐐기골을 넣었다. 그에겐 남들에게 없는 ‘촉’이 있다. 경기 직전 몸 풀 때 그날 골을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 감이 온다는 것. 그 예감은 항상 적중했다고 한다.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린 인도전을 앞두곤 어땠을까.
“인도전에선 저희가 골을 많이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저한테 찬스가 왔기에 공을 힘껏 때렸죠. 상대 골키퍼가 발로 막아서 골이 들어가진 않았는데 그 순간 ‘촉’이 왔어요. 오늘 골 넣을 것 같다는. 두 번째 찬스 때 슛이 골대 맞고 나오자 제 ‘촉’이 잘못된 건가 순간 갸우뚱했는데 결국 세 번째 찬스 때 데뷔 골을 넣었죠. (구)자철이 형이 패스를 해준 순간 화면이 정지된 듯 눈앞에서 엄청 느리게 지나가더라고요. 순간 옆으로 패스해야 되나 그냥 슛을 해야 하나 수십 번을 고민할 만큼이요. 분데스리가 전반기, 하노버와 경기할 때 두 골 넣은 후로 꽤 오랜 시간 골을 못 넣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제겐 A매치 데뷔 골 이상의 값진 골이었습니다.”
아시안컵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인터뷰가 자연스레 그의 일본전 ‘폭풍눈물’ 장면으로 흘러갔다.
“제가 워낙 승부욕이 강해서 지는 걸 싫어해요. 게다가 상대팀이 일본이었기 때문에 꼭 이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결국 ‘폭풍눈물’을 보이고 말았는데요. 그만큼 정말 이기고 싶었어요.”
형들 승부차기 연습 땐 ‘펄펄’
손흥민은 일본전 승부차기 4번째 주자였다. 세 명의 승부차기 주자가 연속 실패하자 그는 공을 찰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제가 원래 페널티킥을 잘 못 차요. 못 넣을 것 같아서 절대 안 차거든요. 그런데 일본전 때만큼은 정말 차고 싶더라고요. 넣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니 꼭 넣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신기해요(웃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차고 싶어요.”
일본전 직후, 베테랑 대신 어린 선수를 주축으로 한 조광래 감독의 승부차기 순번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손흥민은 승부차기 연습 당시를 떠올리며 이런 논란을 일축했다.
“비공개로 승부차기 연습을 많이 했어요. (정)성룡이 형이 골키퍼를 보고 공을 찼죠. (홍)정호 형은 찰 때마다 100% 성공했어요. (이)용래 형, 자철이 형 성공률도 70%를 넘었죠. (기)성용이 형이야 워낙 잘 차고요. 연장전 직후 감독님께서 순번을 정할 때 연습 당시 성공률을 고려하신 것 같아요.”
승부차기 연습 당시 본인 성공률은 어떠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연습 때 안 들어간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운 좋게 들어간 게 대부분이라 성공률을 따지기 민망한데요”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일본전 패배 직후 대표팀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였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식사할 때마저도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대표팀의 이 같은 적막을 깬 건 다름 아닌 ‘트위터’였다.
“저랑 (이)영표형, 성용이형이 먼저 시작했죠. 트위터에 서로 ‘농담트윗’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곧 대표팀 내에 트위터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분위기가 많이 올라왔어요.”
트위터가 대표팀 사기를 올리는 ‘소통창구’였던 셈이다. 뿐만 아니다. 아시안컵 기간 동안 또 하나의 소통창구가 있었단다.
“<시크릿가든> <드림하이> <마이프린세스> <싸인> 등 최신 인기드라마 USB 교환 열풍이 불었어요. 어린 선수들이 드라마를 USB에 담아 선배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파됐죠. 대표팀 선수 전원이 ‘주원앓이’를 경험했다니까요. 아, 성용이 형 빼고요. 성용이 형이 <시크릿가든>을 안 봤거든요. 드라마 안 봐서 왕따 당한다고 트위터에 글 올리셨던데(웃음). 대표팀 내 ‘김주원’의 위상은 정말 대단했죠.”
일본전 ‘폭풍눈물’만큼이나 화제가 된 게 바로 손흥민의 ‘이영표 목마’ 장면이었다. 손흥민은 우즈베키스탄과의 3·4위전 승리 직후 이영표를 자신의 어깨에 올려 목마를 태웠다. 은퇴를 선언한 선배에게 존경을 표하는 훈훈한 장면이었다.
하체 부실? 저 튼튼함다^^
“아시안컵 3위가 확정되고 나서 (차)두리 형과 영표 형 목마 태워드리자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래서 제가 목마를 자청했죠. 영표 형이 트위터에 제가 목마 태울 때 안정감이 없었다고 하체운동 더 하라고 남기셨는데, 사실 아닙니다. 저 하체 튼튼해요(웃음).”
일본전 이후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이 박지성, 이영표의 은퇴를 예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직접 입으로 이야기하신 건 아니지만 대표팀 내에 자연스레 두 선배의 은퇴식 분위기가 조성됐어요. 두 분의 마지막 무대에 함께 설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한편, 구자철이 독일 분데스리가 VFL 볼프스부르크 입단을 결정하면서 많은 축구팬들의 시선이 분데스리가에 쏠릴 전망이다. 손흥민 역시 “자철이 형과 어제 통화를 했어요. 안 그래도 독일 가서 곧 보기로 했습니다”라며 대표팀 선배와 함께 뛰게 될 분데스리가 후반기 리그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손흥민의 후반기 목표는 7~10골을 채우는 것. 매 경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대한민국 대표 스트라이커를 향한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