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지면 아침고요수목원의 나무들은 휘황찬란한 불빛의상으로 갈아입는다. |
아무래도 우리 것이니만큼 자생식물에 눈길이 가는데, 이곳에는 축령산에 식생하는 것들은 물론, 도처의 사라져가는 희귀식물들이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이 가운데서 자생 들꽃만도 1000종이 넘는다. 나라꽃 무궁화도 200종이나 된다.
수목원에는 고향집정원, 허브정원, 무궁화정윈, 에덴정원, 석정원, 하경정윈, 달빛정원 등 다양한 테마의 정원들이 오밀조밀 배치돼 있다. 이 수목원은 현재 삼육대 원예학과 명예교수인 한상경 씨(62)가 십수 년에 걸쳐서 세계 최고의 정원을 목표로 디자인하고 가꾸었다. 목표가 너무 크고 높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수목원을 한 번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불가능하지만도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정도로 수목원은 아름답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는 3월이면 한반도야생화전, 4월에는 봄맞이정원전, 5월에는 철쭉제가 열린다. 6월부터는 화려한 여름꽃들이 수목원을 가득 메운다. 눈이 호강한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국화와 단풍이 유혹한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이다. 엄동설한에 볼 수 있는 꽃은 없으며, 나무도 제 잎을 다 떨구며 혹한을 겨우겨우 견딘다. 그렇다. 수목원은 지금 잠을 자는 시기다. 그런 이곳에 무슨 볼거리가 있다고 찾아갈까. 하지만 있다. 그것도 밤을 틈타는 수목원행이어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오후 들어 수목원을 찾는다. 슬쩍 수목원을 둘러보고 따뜻한 차 한 잔쯤 마시면서 해가 이울 시각을 미리 계산해보니 오후 3시~4시 사이가 적당하다. 해가 길어져서 두세 시간의 낮이 남아 있다.
수목원을 둘러보는 데는 1시간이면 족하다. 사실 그 이상은 무리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에 맨얼굴을 노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은 쉽게 지친다.
수목원의 겨울 추천 산책코스는 따로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있기는 한데 그것은 밤의 산책코스다. 낮 동안은 그저 설렁설렁 수목원을 돌아다니며 아직 남은 해의 따스함을 느끼면 될 일이다. 추우면 아침고요수목원 갤러리, 야생화전시실 등 실내 전시를 둘러보면 된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북서쪽 끝 한옥에 이르게 된다. 양반 대가를 그대로 옮겨 한국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소나무, 향나무, 진달래, 개나리, 철쭉, 목련, 벚나무 등 50여 종의 나무들과 작약, 붓꽃, 봉숭아꽃, 맨드라미, 과꽃 등 100여 종의 꽃들로 언제나 아름다운 곳이다.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고 자연을 살린 정원이어서 더욱 마음이 편안하다. 사람들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눈앞에 걸린 풍경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한옥을 나서면 바로 곁에 전통찻집이 있다. 영하의 숲길을 걷느라 꽁꽁 언 몸을 녹이기에 좋은 곳이다. 뜨거운 열기를 뿜는 난로가 중앙에 있고 유자, 오미자, 대추차 등의 전통차가 맛있다.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단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해가 완전히 축령산 뒤로 넘어가고, 하늘에 남은 태양의 잔광도 완전히 사그라지는 그 때 말이다.
겨울해가 길어져서 아직도 밖은 밝은데, 오후 5시 30분이 되자 찻집 주인이 점등했다고 일러준다. 그 말에 마음이 급해져서 서둘러 밖으로 나선다. 한옥을 다시 지나치자, 그 앞쪽 정원의 나무들에 알록달록한 불빛들이 반짝인다. 하경정원, 고향집정원, 분재정원, 하늘길, 달빛정원의 불빛이 밝다.
▲ 하경정원 눈밭을 거니는 모녀. |
전체적인 경관을 조망하기 위해 하경전망대로 오른다. 한옥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에 전망대 오르는 길이 있다. 전망대까지는 15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5분도 걸리지 않는 길이다. 잣나무 무성한 숲길을 오르자 한눈에 식물원의 전경이 보인다. 마치 은하수처럼 한데 모여 꿈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높이 올라 내려다보니 정말로 그것은 불빛이 아니라 별빛처럼 보인다. 추운 날씨 탓에 녹지 않은 바닥의 눈은 마치 구름 같다.
한가했던 수목원은 밤이 되자 활기를 찾는다. 속속 수목원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취한다. 해가 떨어진 수목원은 더욱 춥지만, 손 곱아가며 셔터를 누르고 추억을 저장한다.
특히 분재정원은 큰 인기다. 기이한 모양의 나무 자체로도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거기에 불빛이 치장되니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다. 하늘길도 추천코스다. 분재정원에서 달빛정원으로 이어지는 이 길에는 호박마차, 말, 천사 등의 조형물들이 불빛으로 치장돼 있다. 하늘길 너머의 달빛정원에는 아담한 교회가 앉아 있다. 숲에는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사슴이 물을 마시러 옹달샘에 내려왔다.
이 동화 같은 별빛나라에 있으면 저절로 사랑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그것이 착각인지 진짜로 그러할지는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과 동행을 하게 된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북부간선도로 신내IC 진출 후 유턴→금강로→진관ICD에서 우측 방향→46번 국도→금남IC 진출 후 좌측 방향→46번 국도(경춘북로)→청평검문소 앞 좌회전→아침고요수목원
▲먹거리: 아침고요수목원 내에 ‘들꽃향기’라는 식당이 있다. 들향기비빔밥, 청국장, 스파게티, 허브꽃비빔밥, 두부버섯전골 등을 메뉴로 내놓는다. 수목원 입구에도 음식점이 많이 있다. 잠자리: 아침고요수목원 주변에 아침고요가는날(031-585-0039), 에머그린펜션(010-8883-1788) 등의 펜션이 있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는 숙박업소를 운영하지 않지만, 주변의 펜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홈페이지 ‘사이트링크’를 참고할 것.
▲문의: 아침고요수목원(http://www.morningcalm.co.kr) 1544-6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