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기홍은 세계 각지를 단지 구경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느끼기 위한 여행을 다닌다. 특히 훨씬 고생스러운 크루즈 여행을 선호하는 것은 크루즈 여행만이 갖는 독특한 경험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5년 동안 자신을 홀린 세 사람, 니코스 카잔차키스, 칼 융, 그리고 조셉 킴벨의 흔적들을 따라다니며 유럽 각 나라와 남미 지역을 돌아다닌 경험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것이다.
독일 유대인 학살 추모관에서는 독일 민족을 그렇게 광기로 몰아넣은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며, 한 유대인의 편지를 보고, 그에게 관연 돌아갈 고향은 있는가를 묻는다.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의 추모관에서는 약소민족의 백성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울음을 터트린다. 체코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그는 ‘과연 프라하에는 봄이 왔는가?’라고 묻는다.
크레타 섬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추모하며 그의 묘비명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가 인생의 길잡이로 삼았다는 사람은 오디세우스다. 왜 파우스트도 아니고 햄릿도 아니고 돈키호테도 아닌 오디세우스를 길잡이로 삼은 것은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라는 그의 말에 있다. 에게 해가 바로 오디세우스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핀란드 헬싱키를 방문하면서는 75년도 아닌 자그마치 7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식민지로 남았던 핀란드 사람들의 고통을 떠올린다. 그런 아픔을 극복하고 젊음이 넘치는 헬싱키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저자는 인생에서 ‘좋은 때’는 언제인지를 반문한다.
이과수폭포를 몇 차례 다녀오면서는 그 자신의 여행을 ‘순례’라고 표현한다. 영화 ‘더 미션’의 가브리엘 신부를 떠올려서다. 그는 포르투갈과 가톨릭교황청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자신의 온몸을 던진 가브리엘 신부의 마지막 한마디, ‘권력이 선이라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오’라는 말을 곱씹는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물랑루즈의 무용수들을 보며 그들의 철저한 직업정신을 헤아려 보고, 그들의 춤은 단순히 몸으로 추는 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정해진 체중에서 단 1kg이라도 초과할 경우 다른 직업을 알아보아야 하는 그런 무용세계의 냉혹한 현실을 어찌 눈으로만 즐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저자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미켈란젤로가 만들은 피에타 중 24살 때 만들은 바티칸 피에타에 비견될 작품이 없다고 찬사를 보낸다. 우아함, 맑음, 평화, 꿈속에서라도 그런 얼굴을 보면 마냥 잠들고 싶다고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닌, 대학에서 학생들과 오랜 시간 교감한 사람이 자신의 사고의 폭을 더 넓히려고 세계 각지를 순례하며 곱씹은 철학책이라고 해도 된다. 문학과 역사를 더 깊이 체험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미술을 이야기하고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민족성을 이야기하는 사회학 책이나 심리학책, 또는 역사평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저자는 서울대학교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공부하고 UCSD에서 정보경제학과 응용게임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KIET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동욱 기자 ilyo3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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