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선수들의 유럽 리그 이적 패러다임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국내 에이전트가 사전 제작된 DVD 동영상을 보내고 이적 타진 서류를 제출하는 등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해당 클럽 관계자가 영입 대상 선수의 경기를 지켜본 뒤 일련의 입단 테스트와 메디컬 테스트를 거쳐 이적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유럽 클럽과의 직접적이고도 돈독한 연결 고리가 없으면 이적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야 테스트라도 진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단순한 외국 에이전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직접 클럽을 뚫을 수 있는 특별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배후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
유감스럽게도 또 이웃 라이벌 일본을 거론해야 한다. 1월 막을 내린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정상에 올라선 일본대표팀에는 무려 10명의 유럽파가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을 꺾고 3위를 차지한 조광래호에도 11명의 해외파가 있었지만 3명이 일본 J리그에서 활약했고, 3명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중동 리거였다. 전력의 핵심으로 꼽을 수 있는 유럽파는 일본의 절반 수준인 5명에 불과했다.
국내 축구인들과 에이전트들이 탄식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 속에 일본 축구를 애써 낮게 평가했지만 국제 경험에서 양국은 큰 차이를 보였던 셈이다.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는 이미 5명의 선수들이 독일에서 활약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못했던 야노 기쇼(프라이부르크), 마키노 도모아키(FC쾰른) 등 2명을 추가하면 7명으로 그 숫자가 불어난다. 한국과 준결승전에서 역전 골을 넣었던 미드필더 하지메 호소가이도 2부 리그 아우구스부르크에 몸담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임대 신분. 호소가이의 원 소속 클럽은 바이엘 레버쿠젠이다. 한국 스트라이커 지동원(전남)을 영입 리스트에 올려놓은 명문 클럽이다.
여기서 독일행의 이면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일본 선수들이 대거 독일로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일 국적의 거물급 에이전트 토머스 크로트가 있다. 토머스는 K리그 수원 삼성에서도 활약했던 왕년의 스타 다카하라를 분데스리가로 진출시켰던 유력 인물. 현재 독일에서 뛰는 일본 선수들 전원이 토머스가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전언이다.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넥션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자철이 아시안컵 득점왕을 계기로 볼프스부르크로 떠났지만 손흥민(함부르크)까지 포함해 2명에 불과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프랑스 르 샹피오나 등에 그간 닦아둔 남다른 연결 고리가 있지만 독일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결국 독일 진출은 든든한 방패 막도 없이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외국인 감독의 커넥션
아시안컵 취재 결과, 유럽 축구는 선수 수급을 위해 에이전트들과 해당 클럽 스카우트들만이 활동하는 게 아니었다. 일본만 해도 거물급 에이전트인 토머스뿐 아니라 또 다른 루트에서 나름 풍성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었다. 특히 사령탑 출신들의 역할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J리그나 국가대표팀 등 지도자로 명성을 떨친 인사들이 요소요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일본 축구계에서 활동하는 독일 출신 인사들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교토 상가와 우라와 레즈 등을 지휘했던 헤르트 엥겔 전 감독이 꼽힌다. 동독 출신의 엥겔 전 감독은 아시안컵에도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국내에는 ‘캡틴’ 박지성(맨유)과 교토 시절 사제지간으로 한솥밥을 먹었다는 사실이 화제였다.
물론 감독 출신들이 직접적인 선수 스카우트 역할은 하지 않는다. 유럽, 그것도 독일은 공사 구분과 업무 분담이 명확한 편이라 어디까지나 선수 영입에 관여하는 쪽은 에이전트들과 해당 클럽들이 파견한 스카우트들의 몫이었다.
다만 오랜 경험 속에 묻어나오는 선수들의 기량과 잠재성, 시장성을 두루 체크할 수 있는 인물로는 지도자만한 이들이 없어 스카우트 역할에 간접적인 기여를 한다는 게 일본 스포츠 기자들의 공통된 전언이었다.
실제로 엥겔 전 감독에게 선수 체크를 부탁한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들은 꽤 많았다. 이름만 대면 쉬이 알 수 있는 상당수 클럽들이 엥겔 전 감독의 조언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대표팀을 이끄는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도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탈리아 세리에A 최고 명문 클럽 중 하나인 인터 밀란으로 이적한 유토 나가토모가 체세나를 떠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자케로니 감독의 추천이 결정적이었다. 자케로니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유벤투스, 인터 밀란, AC밀란 등을 이끌었던 명장이다.
사실 한국도 거스 히딩크 감독(현 터키 대표팀)이라는 남다른 루트가 있었기에 2002한일월드컵 이후 박지성, 이영표 등이 유럽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다만 히딩크 감독이 더 이상 한국 축구에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다소 아쉽다. 물론 FC서울을 3년간 이끈 세뇰 귀네슈 감독이 터키 쉬페르리그 트라브존스포르 지휘봉을 잡고 있지만 터키 무대가 소위 빅 리그가 아닌 탓에 크게 매력적이진 않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구자철 어디 ‘러브콜’ 받았었나
아시안컵 활약을 발판 삼아 독일 분데스리가 VfL 볼프스부르크에 입단한 구자철은 과연 어떤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았을까. 확인 결과, 독일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직·간접적인 관심을 표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작년 말부터 거론됐고 가계약 서명까지 이뤄진 스위스 영 보이스는 차치하고도 구자철 영입을 추진했던 유럽 내 클럽들은 포르투갈, 러시아, 잉글랜드 등 꽤 다양하다. 일부 클럽들은 구체적인 이적료까지 산정해 구자철의 전 소속 팀이었던 제주 유나이티드와 선수 측에 입단 의향을 타진하기도 했다.
볼프스부르크는 대략 200만 달러에 구자철을 영입했는데, 1월 25일 볼프스부르크-제주 간 합의를 이루기 전까지 FC포르투(포르투갈), 루빈 카잔(러시아), 볼턴(잉글랜드) 등이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청용이 소속된 볼턴은 이적료 180만 유로를 책정해 제주 구단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일부 외신을 통해 이름이 거론됐던 슈투트가르트(독일)와 리버풀(잉글랜드)의 경우, 오퍼 자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