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와의 평가전을 위해 출국하기 하루 전날 만난 조광래 국가대표팀 감독은 인터뷰 답변을 미리 준비해서 나오는 꼼꼼함을 보였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지성·영표 공백 해결 시험대
―답변할 내용을 미리 준비해서 나오신 모습이 상당히 신선하다. 내일(2월 5일)이면 터키전을 위해 또다시 출국하게 되는데,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체력적으로 힘들 것만 같다.
▲이미 잡힌 A매치 일정이라 힘들다는 생각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치르고 싶다. 나야 벤치를 지키기만 하면 되지만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심할 것이다. 그래도 새로 들어온 선수들도 있고, 박지성 이영표의 공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시험해 볼 수 있는 경기라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A매치다.
―아시안컵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 대회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축구가 어떤 것이었나.
▲내가 추구하는 축구를 하기까지에는 4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 1단계는 미드필드 진영에서의 세밀한 패스워크였다. 세밀한 패스를 통해 정교한 게임을 펼치면서 게임을 지배하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시안컵 전까지 훈련의 60~70%는 그 연습이었다. 2단계는 미드필드진의 세밀한 플레이가 상대 문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공격수들이 슈팅에 대한 의식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봤다. 3단계가 수비조직이다. 아시안컵에서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면 시간적인 부족으로 인해 수비수들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점이다. 현대 축구는 강한 압박이 아닌 영리한 수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수비수들은 맨투맨을 펼치면서 몸으로 강하게 부딪치는 습관이 배어 있어, 급할 때는 무조건 밀어붙이고 본다. 그런 수비들로 인해 페널티킥을 4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조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도 체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게 아닐까? 아시안컵을 보니까 한일전이나 우즈베키스탄전은 선수들 체력이 거의 바닥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보니 세밀한 패스도, 정확한 슈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안컵은 일주일에 세 경기를 치렀고 그중 두 경기가 120분 연장전까지 갔었다. 이런 스케줄에서는 당연히 체력이 문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본다. 월드컵 예선전은 단기전으로 치르기 때문에 선수들 체력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더욱이 이번 아시안컵은 K리그 선수들이 정규시즌을 마치고 휴가 기간에 모여서 운동을 한 터라 제 컨디션으로 끌어올리기가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아시안컵 한일전 승부차기에서 키커 순서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박지성이나 기성용을 1번에 배치했더라면,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이영표가 포함됐더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순서를 정한 것인가.
▲한일전을 앞두고 승부차기 연습을 두 차례 했었다. 당시 박지성을 1번에 세운다는 가정 하에 연습을 했는데 지성이의 슛 성공률이 좋지 않았다. 지성이도 가급적이면 승부차기에서 빠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가장 슛 성공률이 좋은 선수가 구자철이었다. 자철이는 연습할 때 100%의 성공률을 자랑했다. 기성용은 1번 못지 않게 중요한 5번 자리가 적합하다고 봤다. 만약 이청용이 교체되지 않았더라면 박지성을 뺏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하는 이영표, 박지성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약 실패할 경우, 두 선수한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건 감독 책임이다. 이 또한 값진 경험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은퇴 만류 했었나
―아시안컵 기간 동안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를 만류한 적이 있었나.
▲당연히 하지 않았겠나(웃음). 지성이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은퇴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감독 입장에선 ‘그래도’ 대표팀에 남아 주길 바랄 수밖에 없더라. 그래서 한일전 마치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아직 은퇴를 거론하기엔 어린 나이고, 무릎 부상이 염려된다면 최대한 무릎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대표팀 생활을 지속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가급적이면 월드컵 예선전에는 부르지 않고, 본선에 올라갔을 때, 무릎 상태가 괜찮아졌을 때, 대표팀에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도 얘기했다. 많은 국민들이 대표팀에서 뛰는 박지성을 보기 원한다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간청했었다. 그러나 지성이가 자신의 무릎은 수술할 때부터 많이 쓰면 쓸수록 선수 생명이 단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얘길하더라. 지성이 말을 들으니까 내가 만류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혹시 브라질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뒤, 선수들, 코칭스태프, 그리고 국민들이 박지성의 대표팀 컴백을 바란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성이가 대표팀 은퇴 기자회견 때 월드컵 본선 진출했을 때의 선수 구성은 예선전에서 고생한 선수들의 몫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하지만 후배 선수들도 지성이가 대표팀에 합류해서 브라질월드컵을 즐기길 바랄 것 같다. 그 당시 지성이의 몸 상태가 좋다면 말이다. 난 아직 지성이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다.
―이영표의 은퇴는 어떻게 보나.
▲영표는 남아공월드컵을 마치고 대표팀을 떠날 생각을 했었다. 그때 내가 영표를 불러서 조금 더 대표팀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대표팀은 돈 주고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후계자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남아달라고 했는데, 결국 아시안컵 까지 뛰어준 것이다. 영표가 아시안컵 끝내고 이런 얘길 하더라. 후배들의 게임 운영 능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하는 후배들이 있으니까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됐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내가 ‘문딩이 자슥, 문딩이 같은 소리한다’라고 뭐라 했다(웃음).
―박지성은 자신의 후계자로 손흥민과 김보경을 지목했다. 감독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두 선수도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지성이 자리를 대신하기엔 경험과 나이가 어리다. 지금은 구자철과 박주영을 번갈아 세우면서 적합한 선수를 찾을 계획이다. 영표 자리에는 홍철이나 윤석영, 김동진을 생각 중이다. 모두 왼발을 사용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수비 위치 선정이나 수비 형태를 유지하는 밸런스에 대한 의식 변화를 강하게 심어준다면 영표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지성의 뒤를 이어 새로운 주장이 누가 될지에 대해 관심이 높다(조광래 감독을 인터뷰할 당시에 주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조 감독은 터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박주영을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했다).
▲터키에 가서 주장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미 박지성과 이영표한테 새로운 주장이 누가 됐으면 좋은지 의견을 물은 바 있다. 나도 같은 그들과 같은 생각이다. 코칭스태프와 상의 후에 본인한테 의사를 물어보고 곧 공개할 것이다. 대표팀 주장은 프로팀 주장과는 역할이 다르다. 대회 2~3일 만에 모여서 발을 맞추고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주장의 할 일이 많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주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도 있다.
선수 중복 문제는
―올림픽대표팀도 올해 예선전을 치르기 때문에 월드컵예선전을 준비하는 성인대표팀과 선수 구성에 있어 중복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성인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이 올림픽대표팀의 핵심 멤버들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예정인가.
▲어느 나라든 성인대표팀 위주로 선수 구성이 이루어진다. 지금 올림픽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연령대의 선수들을 무조건 올림픽예선전에 데려간다는 생각을 하기보단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이 선수들을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본다. 홍명보 감독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리수를 두면 선수한테 문제가 생긴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한테만 매달리지 말고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올림픽대표팀과 감정적인 대립을 하고 싶지 않다. 협회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지난 번 홍명보 감독 인터뷰 때 그는 구자철, 지동원, 윤빛가람 등의 선수들이 올림픽대표팀에서는 가장 중요한 핵심 멤버이기 때문에 그들이 빠진 선수 구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미 서정원 코치가 성인대표팀으로 옮겨가면서 한 차례 마음 고생을 했던 터라 홍 감독은 선수 구성이 중복되는 부분에 대해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과연 홍 감독이 ‘새로운 선수를 발굴해서 미리 준비해 두라’는 조 감독의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