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인도네시아 비하 논란…K-콘텐츠 위상 높아진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 고민 필요
#인도네시아 팬 항의에 고개 숙인 SBS
SBS는 요즘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타 채널의 드라마 시청률과 반응이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SBS 드라마가 두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최근 SBS 드라마를 대표하는 ‘펜트하우스3’와 ‘라켓소년단’이 연이어 구설에 올랐다.
11일 방송된 금요극 ‘펜트하우스3’ 2회에서 사망한 로건 리(박은석 분)의 쌍둥이 형 알렉스 리(박은석 분)가 등장하면서 집중포화를 맞았다. 해외에서 자라온 캐릭터로 표현된 그는 레게 헤어스타일에 과도한 문신을 하고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달았다. 게다가 말투 역시 독특해 흑인들의 힙합 문화를 비하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박은석은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에 해를 끼치거나 조롱하거나 무례하게 하거나 낙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며 “캐릭터를 보고 화가 난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알렉스의 외모는 의도적으로 조롱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동경하고 되고 싶었던 문화를 표현한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펜트하우스’는 시즌 1, 2를 거듭하며 과도한 설정과 막장 전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빗발치는 등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던 제작진은 인종차별 논란 앞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가 갖는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14일에는 월화극 ‘라켓소년단’ 5회가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극 중 한세윤(이재인 분)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팽 감독(안내상 분)은 “숙소 컨디션도 엉망이고, 지들은 돔 경기장에서 연습하고 우리는 에어컨도 안 나오는 다 낡아 빠진 경기장에서 연습하라고 하고”라며 토로했다. 이어 한세윤이 실수할 때마다 환호하는 홈 관중을 향해 “공격 실패할 때 환호는 개 매너 아니냐. 매너가 있으면 야유를 하겠냐?”고 말했다.
이에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은 즉각 불쾌감을 표시하며 각종 SNS를 통해 항의했다. 결국 SBS는 17일 드라마 공식 SNS를 통해 “특정 국가, 선수, 시청자를 비하하려던 것은 아니었다”며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줬던 일부 장면에 대해 사과드린다. 다음 회차부터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과거, 한국은 주로 해외 콘텐츠의 인종차별적 표현에 문제제기를 하는 입장이었다. 영화 ‘택시’에서는 한국인 택시운전사들이 차량 트렁크에서 잠을 자며 교대로 일하는 장면이 나왔고, 영화 ‘버드맨’에서는 “망할 김치 냄새”라는 대사가 한국 관객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비롯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 문화 콘텐츠가 해외에 널리 전파되며 한국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콘텐츠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SBS 관계자는 “잘못된 표현에 대한 지적을 수긍하고 빨리 사과한 것은 올바른 대처였다”며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만의 문제 아니야
이번 논란을 두고 ‘인종차별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상대를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면 표현의 자유로 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라켓소년단’의 경우 인도네시아를 비하하기보다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는 분석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종차별 및 아시아인 혐오 등이 국제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그동안 우리 연예계가 선보였던 콘텐츠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있다. 듀오 노라조는 10여 년 전 발매한 노래 ‘카레’가 뒤늦게 비판을 받았다. 막강한 글로벌 팬덤을 갖고 있는 아이돌 그룹 세븐틴이 ‘카레’를 부른 뒤 이 노래를 뒤늦게 접한 인도 네티즌의 지적이 잇따랐다. 특히 이 노래의 가사 중 인도의 이슬람 건축물인 타지마할 등을 언급하며 코믹하게 그린 것에 대한 반발이 컸다.
결국 노라조의 멤버 조빈은 SNS를 통해 “노라조는 인종차별이나 종교모독의 생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인도 본고장 느낌을 내기 위해 사용한 몇 가지 단어가 그 말을 사용하는 그 나라 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쓰이고, 또 얼마나 신성한 말인지 제대로 된 뜻 파악이 되지 못했다. 이건 분명한 저희 실수”라며 사과했다.
이 외에도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의 주인공인 배우 지창욱과 음문석이 레게 머리스타일을 한 채 또 다른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음문석이 맡았던 캐릭터인 장룡을 패러디한 장면을 두고도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또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출연진인 한혜진, 박나래, 화사 등이 참여한 스핀오프 예능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를 두고는 화사의 의상이 나이지리아 전통 의상을 부적절하게 표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전 세계에는 많은 문화가 있다. 제작진이 그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의도치 않게 어떤 의상이나 표현이 특정 국가의 문화를 연상시키며 화살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라며 “하지만 한류 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이런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대한 적극적 대비가 필요한 동시에 문제가 불거졌을 시 빠르게 대처하고 사과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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