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X파일’ 논란에 이준석-김재원 등 지도부 엇박자…홍준표·황교안 ‘윤 견제’ 등 과열 양상
#작전 회의 엇박자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 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근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윤석열 전 총장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X파일’의 존재가 알려지면서다. 대변인이 임명된 지 불과 열흘 만에 갑작스럽게 사퇴한 직후 터져 나온 악재여서, 윤 전 총장 측으로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윤 전 총장 측은 X파일에 대해 ‘공작정치’의 전형으로 규정했다. 이어 “거리낄 게 없다”며 6월 29일 차기 대선 출마 선언 일정을 전격적으로 내놓으면서, 일단 X파일 논란은 ‘윤석열 등판론’에 묻혀 조기 수습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을 ‘잠재적 동지’로 구분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도부 구성원들 간에 윤 전 총장의 이번 사태를 다루는 방식을 두고 이견이 극명하게 노출됐다. “이제 우리 식구이니 적극 엄호사격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과 “집에 들어와야 우리 식구다. 지금의 엄호사격은 총알 낭비”라는 주장이 엇갈린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 주자들의 지지율은 좀처럼 한 자릿수에서 오르지 않고 유력 주자들은 모두 외부에 있는 상황이라, 당 지도부는 외부 주자들을 한 명씩 호명할 때마다 같은 갈등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6월 23일 제주 4·3 평화공원 위령탑을 참배한 후 기자들과 만나 ‘당 지도부 내에서 윤 전 총장 사태에 대응하는 결이 다르다’는 기자 질문에 “(윤 전 총장은) 당내 인사로 분류되는 분이 아니기에 최근 논란이 된 X파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직은 당 밖에 있는 사람이니 현재 국면에서는 우리 식구처럼 대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혔다.
반면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준석 대표 의견에 공개 반박하고 나섰다. 김 최고위원은 같은 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우리 당이 ‘아직 입당도 하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팔짱 끼고 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들려면 다 같이 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보호를 해야 하는데 거꾸로 돼버렸다. 내부 인사(X파일을 언급한 장성철 소장)는 공격하고 당은 팔짱 끼고 있는 그런 꼴이 됐으니 기가 막히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김 최고위원과 비슷한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는 6월 21일 “이번 X파일 논란을 계기로 당 차원의 야권 후보 보호대책을 강구해 나가겠다”며 잠재적 동지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방침을 표명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준석 대표의 전체적인 대선 경선 관리 방침에도 반기를 들었다. 앞서 이 대표는 “(당 밖의 주자가) 막판에 ‘뿅’하고 나타난다고 당원들이 지지해 줄 것도 아니다”라며 “8월 정도가 (입당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2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8월 경선 버스 정시 출발론’에 대해 “플랫폼 정당을 지향하는 당의 근본적 방향과 맞지 않는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은) 10월 초에 입당해도 충분하다”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그는 이 대표의 의견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국민의힘이 플랫폼 정당이라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는 어떤 분이라도 받아들여 버스가 떠난 다음에 택시라도 보내서 ‘좀 와주세요’ 그렇게 해야 된다. 차 떠났으니 이제 볼일 없다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옛 친박계의 핵심이다. 검사 출신으로 윤 전 총장에 우호적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전당대회 내내 ‘유승민계 시비’에 휘말렸던 이 대표로서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김 최고위원은 지도부 출범 초기부터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6·11 전당대회 직후 첫 최고위 회의부터 “주요 당직인선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전 협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이 대표를 몰아세웠고, 이 대표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공직후보자 자격시험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조수진 수석 최고위원도 김 최고위원과 한배를 탄 것 같은 모양새다. 홍준표 의원의 복당이 이뤄진 6월 24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 그는 이 대표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조 최고위원은 이 대표를 향해 “말씀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 대선 후보와 당대표를 지낸 홍 의원에게 ‘아마추어’라 하고, 이후 ‘복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면 누가 이 대표 발언에 동의하겠나”라고 쏘아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 최고위원의 언급은 전날 제주도에서의 이 대표 발언을 공격한 것이었다. 홍준표 의원이 X파일 논란과 관련해 윤 전 총장을 향해 ‘사찰을 늘 했던 분이 불법사찰 운운으로 검증을 피하려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몰아세우자, 이 대표는 홍 의원에게 “가장 아마추어스러운 공격”이라며 “이런 발언들도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말이 너무 많다. 이제 TV정치평론가가 아닌데 아직 그 습관이 몸에 좀 남아있는 것 같다. 대선주자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좀 넓고 크게 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개인플레이 난무?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대권 주자들이 ‘질서 있는 경쟁’을 벌이지 않고 ‘나 아니면 안 된다’ 식의 개인플레이를 할까 가장 걱정하고 있다. 지지율 1위의 윤석열 전 총장을 둘러싸고 그런 조짐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X파일도 드러났으니 이참에 주저앉히자는 의도가 엿보인 것이다.
홍준표 의원은 6월 24일 복당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X파일’과 관련해 “(윤 전 총장) 본인이 검증을 피하려 한다 해도 못 피한다. 대선은 특히 더하다”라면서 윤 전 총장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또한 “나라를 통치하는데 검찰 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 된다. 나머지 99%는 검찰 수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게 (경선 과정에서) 다 나올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을 깎아내렸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도 6월 2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을 둘러싼 X파일을 겨냥한 듯 “대선에 나오겠다고 하니까 검증의 시간이 시작된 것 같다. 본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 그러면 어떤 영역에서 일했던 사람이든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나서선 안 된다”고 직격했다.
보수 야권 주자들 사이 경쟁은 과거 어느 대선 때보다 더 과열 양상을 띨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명박 박근혜 등 압도적 유력 후보가 없는 시대가 도래하다보니 사상 유례 없는 숫자의 후보가 등장하고 있다.
보수 야권의 대선후보는 출마 예상자까지 포함해 6월 말 기준 무려 11명에 이른다. 윤석열 전 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장성민 전 의원, 하태경 홍준표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등 7명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거나 사실상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출마 선언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나경원 전 의원과 황교안 전 대표도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 야권에선 이른바 ‘9룡’ 중 이회창 이인제 이한동 후보 등 7명이 맞붙은 1997년 15대 대선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홍준표 김진태 이인제 후보 등 9명이 등판했던 2017년 19대 대선을 훌쩍 뛰어넘는 경선 경쟁이 예상된다.
강민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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