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계 밀어주기나 주관적 심사 가능” 우려…564명 지원 흥행몰이는 성공
이준석 대표는 당대표 후보 때부터 “누구나 능력이 있다면 등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 일환으로 국민의힘은 ‘토론배틀’을 통해 수석대변인과 상근부대변인 각 2명씩 선발하기로 했다. 1942년생부터 2003년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564명이 지원했다. 김철근 정무실장은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뽑겠다는 이준석 대표 말에 지원한 사람이 많다”며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에서 볼 수 없었던 이 대표의 새로운 시도에 반응은 엇갈린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진영에선 능력주의의 폐해를 꼬집는다. 소득에 따른 교육수준 차이가 있다는 점은 생각한다면 능력 경쟁은 그 자체로 불공정한 동시에 우리 사회를 경쟁 사회로 내몬다는 지적이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사회라는 인식 탓에 젊은 층이 이 대표의 능력주의에 지지를 보내는 것 같다”면서도 “능력주의는 또다시 청년들을 스펙 경쟁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 시험을 준비하는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시험이라는 제도가 갖고 있는 한계는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대표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진영에선 ‘음서제(상류층 자손을 관리로 채용)보단 과거제(시험으로 관리를 채용)가 낫다’는 말로 정리한다. 현 정부의 인사 행태를 ‘내로남불’ ‘내 사람 챙기기’에 빗댄 셈이다. 이 대표는 “능력주의는 공정의 도구”라며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면 경쟁을 해야 하고, 그 기반이 안 될 때 배려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능력주의를 내건 이 대표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당대표에 선출됐다.
‘이준석식 능력주의’의 관건은 ‘공정한 기준’이다. 시험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이 공정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토론배틀’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30초 자기소개와 1분 논평을 담은 동영상으로 지원자 564명 중 150명을 추리고, 150명을 상대로 압박면접을 진행해 16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16명은 본격적인 토론배틀에 돌입한다. 16강전은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에서 생중계하고, 8강전부턴 ‘TV조선’에서 생중계한다.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민의힘은 토론배틀 8강전부터 TV 생중계와 동시에 국민 참여 문자 투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김 정무실장은 “TV 생중계가 시작하는 8강전부터 국민들이 참여하는 문자 투표를 시작할 것”이라며 “심사위원과 문자 투표 반영 비율은 5 대 5 정도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프로듀서(PD)가 순위를 조작한 것과 비슷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유한국당계’로 분류되는 청년 당원들 사이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년 당원은 “8강전부터 TV 생중계를 한다곤 하지만 그 전 과정에선 비공개로 진행된다”며 “선발과정 자체가 공정한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압박면접이나 논평 평가의 경우 심사위원의 성향에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보니 지도부 입맛에 맞는 ‘바른정당계’ 사람을 밀어줄 거라 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당원은 “이미 이 대표가 임명한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바른정당계’ 사람들”이라며 “계파를 따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계파가 존재하는 한 이 대표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시험 문제 출제자와 잘 아는 사람이 시험에 유리할 수밖에 없으니 상대 계파 당원들은 불안하다”고 귀띔했다.
국민의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자 인적사항을 심사위원에게도 비공개로 하고 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경우엔 선발된 지원자의 검증 문제가 숙제로 남는다. 선발된 인물이 과거 학력위조나 성 관련 문제 등으로 파문을 일으킨다면, 이 대표에게 곧바로 타격이 갈 공산이 크다.
이에 김 정무실장은 “심사위원들은 지원자 약력을 끝까지 알 수 없다. 지원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심사에 임한다. 친한 사람을 뽑고 그런 건 전혀 있을 수 없다”며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딱 보면 알 수 있다. 실력 차이도 딱 보면 보인다. 국민들도 TV 생중계로 보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대표의 능력주의에 관한 여러 우려에도 국민의힘이 진행하는 토론배틀은 호응을 얻는 분위기다. 이를 비판하는 진영에서 공정한 기준을 세울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완벽한 공정함은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이 이 대표에 호응하는 이유는 공정한 기준 자체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에 이 대표가 특정 기준을 만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비판하는 쪽에선 아무런 대안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힘을 잃는 거다. 지금은 덮어두고 비판하기보단 새로운 시도인 만큼 진행되는 사항을 지켜보고 평가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인은 어쨌든 당을 흥행시켜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대표는 대선을 앞두고 큰 이벤트를 열었고 호응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준석 돌풍’에 위기감을 느낀 여권 또한 대처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생 신분인 25세 박성민 전 민주당 최고위원을 1급 고위직인 청와대 청년비서관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이 또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발탁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능력주의에 대항해 ‘대변인 아카데미’를 열 계획이다. 대변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해주겠다는 셈이다. 장경태 의원은 “이준석 대표는 지금 잘하는 사람을 뽑겠다는 건데, 불평등을 드러내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며 “민주당은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할 수 있는 기회는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교육을 위한 기구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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