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경원 최고위원이 지난 14일에 열린 ‘국민지향 공천개혁특위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나경원 최고위원의 개혁공천 핵심은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지극히 간단한 명제다. 계파 보스나 당 지도부 몇 명이 앉아서 적당히 나눠먹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시스템 속에서 공정한 공천을 해내겠다는 뜻이다. 나 최고의 바람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엔 수많은 장애물이 널려 있다.
사실 지난 18대 공천 때엔 몇몇 핵심 실세들의 막판 ‘장난’이 극에 달했었다. 당시 공천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그때 공천은 날이 새면 탈락자가 새로 바뀌는 등 변화가 굉장히 심했다. 누구도 안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세들의 최측근들, 즉 ‘보호대상자’는 확실히 챙겼다.
온갖 서류에 검증장치가 많았지만 막판에는 결국 몇 사람의 결정으로 공천이 끝났다. 공천 마감 직전까지 권력 실세들의 전화와 오더가 수시로 전달됐다. 이 과정에서 공심위(공천심사위원회)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지’ 솔직히 회의감도 들었다”라고 말했다.
나 최고가 직접 겨냥하는 공천개혁의 핵심은 바로 이런 ‘사천’을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수개월 동안의 스터디를 통해 나온 공천개혁의 핵심을 공개했다. 완전한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만이 계파안배와 밀실공천 논란 등의 후유증을 막을 방패라는 것이다. 경선시 선거인단 규모는 ‘선거구 유권자의 3% 이상’으로 결정했다(지난 18대 총선 당시 국회의원 선거구 유권자 수가 평균 15만 5581명이었다는 점에서 국회의원 공천을 위한 경선이 실시되면 선거인단 규모는 평균 46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됨). 나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동원선거라는 경선의 부작용을 끊기 위해 선거인단 규모를 유권자의 3% 이상으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거인단 구성 방식과 비율에 대해선 최종 확정하지 못했다. 공천개혁특위는 당초 대선 후보 선출 방식에 준해 ‘대의원 20% 일반당원 30% 일반국민 30% 여론조사 20%’ 비율의 경선안을 내놓았으나, 의원 토론회 등을 거치며 ‘당원 50% 일반국민 50%’로 구성하자는 안이 나오면서 확정하지 못했다.
나 최고는 지난 14일 개최된 의원 토론회에 당초 4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57명이나 몰려와 공천개혁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확인했다. 그리고 참석했던 초·재선 의원들은 대부분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천개혁안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먼저 ‘낙하산 공천의 전초기지’로 비난받았던 공천심사위원회를 폐지하고 상향식 공천을 관리할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들의 적합도를 수치로 매기게 된다는 것을 놓고 객관성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많다. 나 최고가 내놓은 개혁안의 핵심은 현역의원의 경우 ▲교체여부(15%), ▲경쟁력(20%), ▲적합도(15%)를 따져 지역구 활동을 평하고 그외 의정과 중앙당 활동(5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공천 심사의 객관적 기준을 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치화된 지수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당내 권력자나 특정세력의 입김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교체여부나 적합도 등이 과학적 근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을 쥐고 있는 주류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차기 총선에 공천을 신청할 예정인 소장파 인사 A 씨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천관리위원 구성도 보다 개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최고의 개혁안에는 공천관리위 구성이 당 추천 50%에 공모인사 50%로 돼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현역 의원들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공천관리위원들이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가할 후보를 3배수 정도로 추리는 과정에서 정치신인들이 배제되고 현역 의원 위주로 후보군이 선정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A 씨는 이에 대해 “지난 총선 공천과정에서도 공심위원들은 유명무실했다. 위의 오더를 받은 몇몇이 공천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당 추천 관리위원들이 공천심사를 주도하며 신인들 몇 명을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어 국민경선을 해본들 대부분 인지도 높은 현역의원들이 뽑히게 될 것이다. 관리위원들 구성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후보 선출 지수화 작업이나 경선관리위원 구성은 나 최고가 밝힌 대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계속 보완작업을 해나갈 경우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 문제는 권력 실세들의 영향력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의 소장파 A 씨는 이에 대해 “나 최고 개혁안은 정치 초년생에게 별로 유리할 게 없는 평범한 안”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가 지적하는 공천개혁의 핵심은 국민경선 등과 같은 시스템보다 당 지도부의 현역 교체의지라는 것이다.
A 씨는 이에 대해 “권력 실세들이 사심을 버리고 현역 교체의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역대 총선을 광역단체별로 보면 교체비율을 산출해낼 수 있다. 국민의 개혁 눈높이에 맞추려면 역대 선거에서 뽑은 현역 교체율 목표를 일단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 뒤 입법 활동, 도덕성 검증, 법률 위반 사례, 지역 여론조사 등을 지수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실세들이 중간에 끼어들어 사천을 하는 장난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진들과 기득권을 공유하고 있는 실세들이 제 뼈를 깎는 고통의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오히려 나 최고의 공천개혁을 자신들의 공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활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도 할 수 있다. 나 최고는 강재섭 전 대표의 우산 아래 있었지만 그가 지난 경선 때 친이계로 돌아서면서 나 최고도 자연스럽게 주류 쪽으로 흡수됐다. 그는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여성으로서 당당히 3위에 당선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또한 일각에서는 나 최고가 현 정권 주류와 두루 친분이 깊기 때문에 향후 공천개혁안 입안 과정에서 그들의 요구대로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먼저 19대 총선에도 출마할 욕심이 있는 이상득 의원과 나 최고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전략적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두 사람은 특히 지난해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나 최고는 이재오 특임장관과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분당 재·보궐 선거에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정운찬 전 총리를 밀자 이재오 장관과 나 최고위원이 힘을 합해 강재섭 전 대표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개혁공천을 통해 ‘제2의 오세훈 서울시장’(초선으로서 정치자금법을 만들어 일약 스타가 된 것에 착안)을 꿈꾸는 나 최고로선 주류 핵심인 이 장관의 도움이 절실한 게 사실이다. 이 장관으로서도 중립성향에다 개혁 이미지를 보여주는 나 최고를 잡을 경우 당권 획득에 결정적인 지원세력 하나를 얻을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나 최고의 공천개혁안은 이재오-이상득 라인의 기득권 유지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재오-이상득 라인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불공정 공천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19대 공천은 이전보다 훨씬 정밀하게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나 최고의 개혁공천을 통한다면 친이계 주류는 공천 직접 개입이라는 비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주류가 개혁을 추진한다는 명분도 얻는다는 점에서 일거양득 효과가 있다. 나 최고가 이 과정에서 끝까지 차차기 주자의 정치적 입지를 버리고 원칙을 관철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스럽다”라고 말했다.
친이계 주류의 이런 공천개혁에 대한 숨은 의도는 벌써부터 그 속내를 간파한 친박계의 저항을 부르고 있다. 나 최고의 공천개혁안에 대해 친이계 의원들은 대다수 찬성을 표하고 있지만, 지난 18대 총선 공천 당시 불벼락을 맞았던 친박계 의원들은 “있는 당헌 당규라도 잘 지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던 친박계 유기준 의원은 개혁 공천안에 대해 “개혁안을 내놓는다고 했지만 공천이 잘못됐을 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개악이 될 수 있다. 현행 당의 당헌 당규를 자세히 살펴보면 굉장히 잘 돼 있는데 이것만이라도 준수하면 된다”라고 지적했다. 공천개혁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친이계의 또 다른 정치적 의도를 여전히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당 일각에서는 전면적인 오픈 프라이머리가 실시될 경우 현역 교체의지 때문에 초·재선보다는 중진의원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 수도권에 주된 기반을 둔 친이계 초·재선보다 영남권에 주로 포진한 친박계가 오픈 프라이머리의 최대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나경원 최고위원의 공천개혁은 본인의 순수한 뜻과는 상관없이 이재오-이상득 라인의 당권 재창출 전초기지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벌써 ‘낙선 리스트’ 떠돈다
최근 한나라당 내부에서 영남권 민심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계령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차기 총선 공천에서 영남권 주자들이 대거 탈락하거나 공천을 받더라도 낙선자가 줄을 이을 것이라는 괴담과 해당 리스트가 흘러 다니고 있어 관련 의원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특히 민심이 악화된 부산·경남 지역 의원들이 괴담에 대해 가장 민감한 편이다. 경남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자리를 김두관 현 지사에 내준 뒤 이명박 대통령이 그 관리 차원에서 김태호 전 지사를 총리 후보로 밀었다가 실패한 후유증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부산도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비록 낙선했지만 무려 44.57%의 득표율을 기록, 허남식 시장(55.42%)과의 차이가 10%p가량에 불과했다.
이런 악화된 민심 때문에 부산·경남 현역 의원들은 총선을 앞두고 그야말로 비상이다. 부산에서는 7명 정도가 낙선 위기에 몰려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에서는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대거 낙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오히려 영남 상황이 더 비상이라는 것이다. 부산에서는 친이계 거물급 K 의원을 비롯해 J, A, K 의원 등 실세들과 친박계 H, P 의원 같은 인사들이 낙선 위기에 몰려 있다는 얘기가 당 주변에 파다하다. 그리고 지역구 관리를 잘 안 하는 의원들도 차기 총선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남도 일부 초선들을 중심으로, 대구·경북은 나이 많고 선수 많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렇게 영남권 민심이 갑자기 나빠지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의 ‘민심 관리’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과 같은 민감한 지역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민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밀양과 부산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나도 지역 민심에 큰 상처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년째 침체에 빠져 있는 대구·경북과 부산의 지역 경제도 민심을 악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