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토지가 황폐해져 먹고 살길이 없어진 조선의 백성들을 위해 병설된 난민구제기관 호조에서 만든 간척지 호조벌.
많은 백성의 노고가 깃든 이 땅은 지금도 많은 생명이 뛰놀고 있다. 이곳 호조벌에서 오늘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300년의 오랜 역사와 자연을 품은 간척지 호조벌에서 친환경농법으로 논을 살려내 저어새, 뜸부기, 제비 등 수많은 야생동물을 돌아오게 한 숨은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1721년 축조된 호조방죽으로 인해 형성된 호조벌.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만들어진 땅이었으나 형성 초기에는 땅에 남은 소금기 때문에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이에 백성들은 직접 대야를 들고 고인 빗물을 퍼 날라 호조벌을 어엿한 농경지로 만들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하고자 했던 선조들.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호조벌에서는 매년 '단오풍년기원제'가 열리고 있다.
현대의 시민들은 전통적인 행사 형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선조들의 극복 의지를 따르려고 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을 위해 품을 내어준 소중한 바다와 땅을 위해 자연과 생태를 지키려는 노력을 깨우치려고 한다.
옥귀도에 위치한 황새바위. 매년 이곳을 찾는 새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천연기념물 제205-1호로 지정된 멸종위기종1급 저어새다.
그들은 매번 이 황새바위를 찾아와 포란을 한다. 올해도 여덟 쌍의 저어새 부부가 산란을 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자연 그대로의 내만 갯골과 호조벌 논을 주기적으로 찾는 저어새. 이들은 이제 비단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로서의 의미를 넘어 반가운 이웃이 되었다.
저어새 외에도 우리곁을 떠나갔던 뜸부기, 제비, 드렁허리 등이 돌아와 호조벌을 수놓는다.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에 있다.
경기도 시흥시 호조벌의 어느 논밭. 벼 심기가 한참인 이때 노인의 호통소리가 들린다. 그 주인공은 바로 노영균 농부(91). 벼 한 포기라도 흐트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그는 평생을 호조벌에서 농사일에 몸바친 인물이다.
어릴 적 노인들은 "내가 논에 오면 발소리에 벼가 큰다"고 말했다고 한다. 농부가 자주 밭을 찾아와 관심을 기울여야 벼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뜻이다. 그는 내리는 사랑만큼 무럭무럭 커가는 벼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의 농사를 돕는 동업자 파트너는 바로 우렁이다. 벼에게 갈 영양소를 차지하는 잡초를 먹어 치우는 고마운 생물이다. 호조벌의 농부들이 우렁이를 활용한 친환경 농법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300년을 이어온 호조벌을 지키고 다시 300년의 미래에도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해 나가야 함을 스스로 체득하여 배워 온 것이 아닐까?
오이도 어시장에서 판매하는 수산물의 대부분은 오이도 포구에서 직접 잡은 것들이다. 오이도 어시장의 대표 수산물은 단연 동죽이다.
동죽을 잡는 어민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염명자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대야에 어린 자식을 싣고 소달구지를 탄 채 갯벌로 나와 종일 동죽을 캐야 했던 지난날. 그래도 그녀에게 갯벌은 고마운 곳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자식들까지 훌륭히 먹여 살려준 갯벌. 생업을 위해 동죽을 캐는 어민들부터 갯벌 속 바지락을 채취하며 생명의 터전인 갯벌을 체험하고자 하는 이들까지. 오늘도 갯벌은 사람과 생명을 위해 자리하고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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