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의 특유의 단문 화법은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해 큰 영향력을 보여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반면 박 전 대표의 화법에 대해 한계와 단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유력 대권주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 한마디의 위력은 때로 본인에게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이치. 과연 박 전 대표 특유의 ‘화법’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떤 ‘타이밍’에 박 전 대표의 입을 통해 나오는 걸까. 박 전 대표의 ‘메시지 정치’에 담긴 정치적 함수관계를 들여다보았다.
◇단답형, 적절한 타이밍 ‘어록’
박근혜 전 대표의 화법은 그간 종종 화제를 모았다. 한동안 침묵을 이어오던 박 전 대표는 얼마 전에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었던 문제인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해 오랜만에 입을 열어 파장을 몰고 온 바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월 16일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해 “(대통령이 약속한 것인데) 원점에서 다시 검토를 하겠다고 그러신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에 따른 책임도 대통령께서 당연히 지시지 않겠습니까”라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박 전 대표 발언에 대한 친이-친박계의 공방전이 뒤따랐다.
정치권에서 박 전 대표만큼 ‘말 한마디’로 인해 큰 여파를 낳는 인물은 드물다. 그동안 박 전 대표가 만든 ‘어록’만 해도 상당수에 이를 정도. 대표적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의 “대전은요?” 외에도, 2007년 1월 개헌을 주장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던진 “참 나쁜 대통령”, 18대 국회의원 공천에서 떨어진 친박계 의원들에게 했던 “살아 돌아오라” 등 박 전 대표의 어록은 화려하다. 지난 2007년 11월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해서 유행이 됐는데, 저는 참 좋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잘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박 전 대표 특유의 간결한 화법에 대해 화술전문가들은 “말의 군더더기가 없어 본인이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를 분명히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평한다. 한 화술전문가는 “유행어가 될 수 있는 기본 조건 중 하나는 길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그맨들의 유행어를 보면 모두가 열자가 넘지 않는 짧은 문장이다. 박 전 대표의 말이 자주 유행되는 것도 ‘짧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정치전문가들은 ‘적절한 타이밍’을 덧붙인다. 박 전 대표는 정치 현안에 대해 초반에 나서서 언급하는 경우보다 모두가 박 전 대표의 입장 표명을 기다리는 시점에서야 ‘답’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박 전 대표의 입장 표명을 전하는 뉴스에는 항상 ‘작심한 듯’이라는 형용사가 따라붙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짧고 간결한 문장과 ‘때’를 아는 박 전 대표의 정치 감각이 화법을 유행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말은 때로 오해 산다
반면 박 전 대표 특유 화법의 단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박 전 대표 화법의 장점은 ‘간결’하다는 것이지만, 이는 때로 ‘불친철한’ 화법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 한 화술전문가는 “박 전 대표의 말은 짧아서 귀에는 잘 들어오지만 부연설명이 부족해 이해하기 어렵고 듣는 이를 답답하게 만들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박 전 대표의 발언 뒤에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친박계 의원들의 부연설명이 뒤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입장 표명 이후에도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반대하는 것이냐, 찬성하는 것이냐’는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고, 친박계 의원들은 “원론적 얘기일 뿐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나 비판이 아니다”라며 박 전 대표의 ‘입장’을 추가 설명해야 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화법에 대해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박 전 대표의 말에는 알맹이가 없고 너무 뜸을 들인다”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단순한 논리 전개를 지적하며 유력 대권주자로서 무책임해 보인다는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다.
박 전 대표가 가지고 있는 ‘위치’ 때문에 그의 발언이 더 파장을 낳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 점은 반대로 박 전 대표에게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친박계 이정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침묵행보’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 대해 지난 2월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두둔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자신이 조용하게 있는 것이 대통령께 부담을 드리지 않고 또한 국정 운영을 최대한 돕는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박 전 대표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과 대선 경선을 치른 사람이고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대선 예비주자 입장이기 때문에 특히 그런 것 같다”며 침묵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 의원은 더불어 “대선 관련 정치인 지지율 1위가 벼슬이나 당직은 아니다. 지지율 1위니깐 대선 조기과열이 되든 말든 현안에, 현장에 나서라는 것은 납득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차기 대권주자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유력한 잠룡 신분이라는 점이 박 전 대표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하는 측면이 크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표의 말이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시지’ 누가 만들까
짧지만 강력하게 각인되는 박 전 대표의 ‘메시지’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질까. 측근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의 말은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동안의 생각과 고민 끝에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메시지를 내놓는 ‘타이밍’에도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들어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친박계 전직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신중함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말 한마디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에 어느 정치인보다 오래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입을 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어린 시절부터 퍼스트레이디 경험을 한 이력이 자연스레 신중함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친박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박 전 대표의 ‘메시지’는 박 전 대표 본인의 고심 외에도 여러 명의 자문단과 특보단의 회의를 거쳐 다듬어질 때가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내놓을 때엔 며칠 이상 이들이 고민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멘트를 생산해낸다는 후문. 정가에서 박 전 대표의 비선 조직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 보좌관 A 씨 역시 이와 같은 ‘메시지’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A 씨는 박 전 대표가 정치적 현안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이 필요할 때마다 종종 박 전 대표를 도와 메시지를 만들었을 만큼 정치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메시지’는 단지 메시지의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박 전 대표의 화술과 화법에 의해 전달력이 커진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표의 화술에는 정치인 특유의 폭발력 있는 호소력은 적지만, 대신 감정을 자제하는 듯한 뉘앙스가 오히려 냉철함을 돋보이게 한다는 평가다. 한 화술전문가는 “여성인 탓에 말에 힘은 떨어지지만 그 대신 ‘조용한 카리스마’가 말투에 담겨 있다. 간결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이러한 화술이 효과적으로 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특유의 ‘메시지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차기 대선이 다가올수록 치열해질 검증 국면에서 말을 극도로 아끼는 박 전 대표의 화법으론 대중을 설득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인 것. 이에 대해 한 친박계 관계자는 “본격적인 대선 경쟁이 시작되면 박 전 대표도 하고 싶지만 못했던 말들을 내놓지 않겠느냐. 이미 지난 대선을 거치며 보여준 것처럼 때가 되면 대중들의 요구에 맞춰 현안에 대한 충분한 입장 표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