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풍의 건물로 가득한 프로방스마을. |
사실 ‘모던’(Modern)이라는 단어만큼 광의로 쓰이는 것도 드물 것이다. 본래 ‘현대(근대)적인’ 정도로 해석되지만, 도시적 감각과 심플한 매력을 풍기는 대개의 것들에 쉽게 ‘모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파주의 어떤 곳들이 대체 ‘모던’하다는 것일까. 여행지로서 모던시티라는 주제를 완성시키는 곳들은 4개가 있다. 길 찾기도 쉽다. 자유로를 따라 그 꽃들이 피어 있다.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북시티, 헤이리, 프로방스마을, 임진각 평화누리가 바로 그곳들이다.
가장 먼저 반기는 북시티는 우리나라 출판인들의 꿈이 집약된 도시다. 생산부터 유통을 거쳐 소비까지, 책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산업도시가 북시티다. 인쇄공장에서부터 디자인하우스, 서점, 출판문화정보센터 등이 이 도시 안에 있다.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일대 48만 평에 조성된 이 도시는 1989년 첫 삽을 뜬 후 지속적으로 도시를 완성시켜나가는 중이다. 물론 현재 수많은 출판사들과 인쇄사업자들이 이 공간에 입주해 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산업도시라는 점 때문에 굉장히 삭막하고 메마른 느낌을 줄 것 같지만, 놀랍게도 북시티는 대한민국 그 어느 도시보다 깔끔하며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전시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는 출판사 110개와 인쇄사 21개, 출판유통회사 2개, 지류유통과 제본을 주업으로 하는 회사 등 총 150여 개 출판 관련 산업체가 들어와 있는데, 하나같이 이들의 보금자리가 뛰어난 미적 감각을 뽐내는 건물들이다. 우리나라 건축계의 스타 민현식, 승효상 씨가 건축코디네이터로 활약했다. 이들은 영국 건축가 북런던대 플로리안 베이글 교수와 김종규, 김영준 씨 등 젊은 국내 건축가들을 끌어들여 북시티 전체의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각 공간의 주제에 맞게 국내 건축가 30명과 외국 건축가 10명이 자신의 작품들을 채워 넣었다. 몬드리안의 면분할을 연상케 하는 건물을 비롯해 다양한 개성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수두룩하다.
북시티에는 문화공간도 다양하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서점, 북카페, 활판공방, 갤러리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서점의 경우에는 50%까지 할인해서 판매하는 곳들도 있으니 미리 정보를 챙기고 책쇼핑에 나서보는 것도 좋다.
북시티에서 조금 올라가면 성동IC가 나온다. 이곳으로 빠져나가면 헤이리와 마주친다. 문화예술인마을로 널리 알려진 곳이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헤이리라는 지명은 파주에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래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 그다지 특별한 의미가 없는 후렴구다. 하지만 듣기에 어감이 좋아 마을 이름으로 선정됐다.
▲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드넓은 잔디밭 위에는 각종 설치 미술품들이 있고, 자그마한 연못 한가운데엔 모던한 찻집에 있다. |
또 하나 헤이리의 건축적 특징은 높은 건물이 없다는 것이다. 3층 이상 올리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화려한 페인트칠도 지양한다. 서로의 공간을 구획하는 담도 쌓지 않는다. 그래서 시야에 막힘이 없고, 유치하지 않으며, 더불어 사는 느낌이 난다.
우리꽃연구가 마숙현 씨의 주택인 ‘식물감각’, 그 맞은편의 좁고 뒤틀린 모양의 ‘이끼집’, 야경이 화려한 ‘북하우스’, 유리화원이 있는 ‘고막원’ 등 볼 만한 건축물들이 많은 헤이리에서는 매일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 이곳은 하나의 커다란 갤러리와 같다. 스스로의 작품을 내걸거나 한데 모여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기획전을 연다. ‘93뮤지엄’, ‘한향림갤러리’, ‘공갤러리’, ‘쌈지아트콜렉션’, ‘터치아프리카’, ‘세계민속악기박물관’ 등 헤이리의 전시는 종류도 다양하고 그 기획도 건물들만큼이나 신선하다.
헤이리 근처에는 ‘프로방스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동부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의 이미지를 차용해 조성한 곳이 바로 파주 프로방스마을이다. 프로방스라고 하면 전원을 연상시키는데, 그것이 ‘모던함’과 연결되는 이유는 파주에 있는 프로방스마을이 결코 전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파주 프로방스마을은 철저하게 기획된 상업시설이다. 프로방스라는 이름 속에 깃든 낭만과 그 고장의 건축풍, 색감 등을 들여왔지만 시골의 풍경과 정서는 가져오지 않았다. 어쨌든 파주의 프로방스마을은 우리들이 보아왔던 주변 마을과 비교한다면 무척 낯설고, 푸른색 계열을 흔히 사용하는 그 색감이 모더니즘적인 칼라와 연결된다.
프로방스마을에는 레스토랑과 허브온실, 베이커리 등이 들어서 있다. 지중해식 메뉴를 내놓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허브온실에 들러서 봄을 사고, 나갈 때는 베이커리에서 바게트를 바리바리 싸 가는 그런 곳이다.
리빙숍도 있는데, 예쁜 소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 정도여서 특히 많은 여성들이 이곳에서 걸음걸이가 느려진다. 데이트코스로는 이만한 곳도 없다는 생각이다.
자유로는 임진각으로 뻗는다. 맨 마지막 들러볼 곳이 이곳에 있다. 임진각 관광지 내에 있는 평화누리공원이다. 임진각은 북쪽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을 위로하기 위해 1972년에 세운 정자다. 이 일대에 철도, 탱크, 비행기, 군장비 등을 전시하며 안보관광지로 거듭났다.
평화누리공원은 그런 임진각에 조성된 나들이동산이다. 약 2만 평의 잔디언덕에 수상카페와 생명촛불 파빌리온, 통일기원돌무지를 비롯해 바람개비 등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짙은 갈색으로 군더더기 없는 형태의 수상카페와 반은 땅에 묻히고 반은 드러낸 생명촛불 파빌리온 건물은 모더니즘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생명촛불 피빌리온은 유리문이 너무 무거워 열기가 힘든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지구상의 어린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리길 소원하는 전기 촛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이곳에는 멕시코 출신 세계적인 예술가 세바스찬이 제작한 ‘라 팔로마’와 대나무로 만든 거대한 사람 모양의 구조물 ‘평화부르기’,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모티브로 하는 ‘솟대’ 등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두루 감상하며 나들이를 즐기면 좋을 공원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자유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차례대로 파주출판도시, 헤이리(프로방스마을), 임직각이 나온다.
▲먹거리: 헤이리 1번 게이트로 들어가다보면 ‘라헴’(031-946-3478)이라는 퓨전한정식집이 있다. 코스요리가 1만 원부터 시작한다. 헤이리에는 이 외에도 4번 게이트 근처에 파스타를 잘 하는 ‘파머스테이블’(031-948-6225)을 비롯해 8번 게이트 쪽에 푸짐한 돈까스가 일품인 ‘크레타’(031-948-6001) 등 맛집이 많다. 프로방스마을 쪽에는 먹거리촌이 형성돼 있다. 장단콩으로 만든 두부를 내놓는 두부전문요리집, 해발 1400~1500m에서만 나는 ‘산마늘’(일명 불로초)을 비롯해 곰취, 참나물, 단풍취, 두릅 등 30여 가지의 산나물을 오대산에서 직접 채취해 재료로 사용하는 산채전문점 등 들러볼 만한 맛집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문의: 파주시 문화체육과(http://tour.paju.go.kr) 031)940-4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