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전제인 ‘국회법 개정’ 통과 힘든 데다 ‘국회 독식’ 잠재우는 효과 기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7월 23일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연쇄 회동을 거친 끝에 21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을 11 대 7로 하기로 발표했다.
민주당이 전반기에 운영위·법사위·기재위·과방위·외통위·국방위·행안위·산자위·복지위·정보위·여가위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국민의힘이 정무위·교육위·문체위·농림축산위·환노위·국토교통위·예결특위 등 7개 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이로써 21대 국회 원 구성 이후 1년 2개월 만에 상임위원장 배분이 정상화됐다.
핵심 쟁점이었던 법사위원장의 경우 21대 국회 후반기에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 임기 이후 차기 정부에서는 국민의힘이 맡는 셈이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민주당 지도부와 당내 대선주자들은 당원들의 항의 문자 메시지로 곤욕을 치렀다.
이에 윤호중 원내대표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법사위를 야당에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라,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 외 법안 심사를 못 하게 국한하고 심사기한을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하며, 기한을 넘기면 본회의에 바로 법안을 부의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윤 원내대표는 7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합의문안에 없지만, 심사기한 60일 경과 후 본회의 부의 여부를 소관 상임위가 지체 없이 결정한다는 것과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때 각 부처 장관이 아닌 차관 출석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8월 국회에서 법사위 기능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 식물국회·동물국회라는 구태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여권에선 반대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법사위 양보 시점이 차기 정부 출범에 맞춰진 만큼 민주당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렸다.
이재명 후보는 “그냥 과반이면 몰라도 압도적 과반 의석을 고려하면 법사위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며 “당에 법사위 양보 재고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다른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에 법사위 양보 재고 및 권한 축소를 요청하는 공동 입장 천명을 제안했다.
강성 친문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추미애 후보는 이재명 후보 제안에는 거리를 두면서도 7월 29일 “(법사위 양보는) 국민들이 볼 때 합의가 아니고 야합”이라며 “야합을 해놓고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개혁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합의 철회를 주장했다.
지도부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혀온 정세균 후보 역시 “법사위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야권에 넘긴다는 것은 아주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낙연 후보는 7월 27일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불만이 있더라도 약속은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지도부를 거드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법사위의 특권을 8월 25일까지 축소하는 것이 전제돼 있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법사위원장을 넘기는 것도 무효”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논란에도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후반기에도 법사위원장직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법사위원장을 양보하는데 오는 8월 25일까지 상임위원장 선출 전 법사위 권한을 축소하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도 법사위원장직을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권한 축소에는 반대하고 있다. 체계·자구 심사권 등이 있어야 거대 여당의 입법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오는 8월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민주당 내에서도 의원들 사이에서 현재 국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향후 체계·자구 심사 기준의 해석을 두고 논쟁이 벌어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심사기한을 60일로 단축해도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범여권 강경파 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처음회’는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오는 8월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호중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 양보 합의를 했지만, 당 내부에서는 법사위원장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많다. 첫 번째 관문이 8월 국회 국회법 개정안 통과인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 합의는 자동 파기되는 것 아니냐”라고 전했다.
송영길 대표 역시 7월 28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법사위 개혁 입법을 전제로 넘기는 것이기 때문에, 8월 25일 상임위원장 선출 전에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법사위를 넘길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합의가 무산돼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치적 이점을 가져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모든 상임위원장을 가져가면서 ‘국회 독식’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차기 대선 국면에서 비판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하지만 합의 이행 과정에서 국회법 개정안 통과 무산으로 합의가 깨지면 책임공방이 국민의힘에 넘어갈 수도 있다. 더 나아가 8월 7개 상임위원장을 국민의힘에 우선 넘기는데 성공하면 ‘국회 독식’ 프레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윤호중 원내대표가 계산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름 묘수라고 본다. 현 상황으로 보면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그럼 법사위원장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민주당은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임위원장을 넘겼다는 독식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김기현 원내대표가 합의안을 받지 말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의 ‘의회 독주’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빌미만 제공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차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상대 정당을 향한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170석이 넘는 의석과 법사위원장을 포함해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하고도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고 공격할 포인트가 있었다”며 “그런데 김 원내대표가 이번에 합의를 하면서 그러한 독식 프레임이 희석될 수 있다. 더욱이 법사위원장까지 가져오지 못하면 더 치명적이다. 김 원내대표가 합의를 해주지 말았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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