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LG와의 시범경기 첫 타석에서 좌전 적시타를 터트리며 성공 복귀를 알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범호와 친형제 이상의 우정을 나누고 있는 방송인 배칠수 씨가 지난해 이범호를 응원하러 일본에 갔을 때의 얘기다.
“범호가 일본에서 1군보다는 2군에서 보낸 시간들이 많았어요. 한번은 38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낮 12시 30분에 열리는 2군 경기를 보러 야구장에 갔는데 관중석에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무더위 속에서 야구하는 범호를 보니까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이범호 파이팅! 범호야, 바가지, 바가지’라고 큰소리로 외쳤죠. 한국에선 줄곧 1군 주전으로만 뛰다가 일본에서 생전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았잖아요. 그래도 묵묵히 버텨내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소프트뱅크 진출시 2년 계약을 맺었던 이범호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귀국할 때만 해도 남은 1년 동안 일본에서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일본에서 벤치 신세로 머물 때엔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서 주전으로 뛰고 싶다는 유혹도 있었지만 소프트뱅크에 ‘이범호’란 이름을 각인시켜놓고 가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그러다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앞두고 소프트뱅크가 더 이상 자신을 안고 갈 의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범호로선 ‘당연히’ 친정팀 한화와 복귀 협상을 벌였고 아홉 차례나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결렬됐다. 그때 손을 내민 팀이 KIA 타이거즈였다. 이범호는 당시 심적 고통이 극심했다고 말한다.
“행복한 마음으로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데 제 상황이 뒤죽박죽이 되니까 아주 괴롭더라고요. 2011년을 야심차게 시작하려던 계획들이 모두 틀어져버렸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복귀팀은 당연히 친정팀인 한화였어요. 그런데 협상이 안 됐어요. 잠시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한화가 아닌 다른 팀으로 갈 경우 ‘적응’이란 숙제가 생기잖아요. 일본에서도 ‘적응’하려다 한 시즌을 그냥 보냈는데 또 다시 그 숙제를 제대로 못해내면 이범호 야구도 별 볼일 없게 되는 거예요. 그때 KIA에서 러브콜을 보내왔어요. 하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팀이란 문제도 있었지만 KIA행을 주저했던 건 (김)상현이 때문이었죠. 제가 가면 3루를 보던 상현이가 자리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잖아요. 그런데 상현이가 애써 감정을 감추고 절 환영해주더라고요.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절 위해서 많은 걸 양보해줬어요. 상현이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범호는 처음에 KIA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어색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다행히 주황색과 빨간색이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아 며칠 지나선 타이거즈 로고가 박힌 유니폼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고 털어 놓는다.
“밖에서 본 KIA는 무서운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어려서부터 해태의 빨간 유니폼이 대단해 보였거든요. 더욱이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는 팀이라 적응하기가 쉽진 않을 것이란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막상 와 보니까 여기나 한화나 비슷비슷하더라고요. 위계질서가 있긴 해도 이전의 그런 이미지 대신 새 식구를 챙겨주고 감싸주는 따뜻함이 인상적이었어요. 일본 전지훈련 동안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맹훈련을 했는데 연습량이 너무 많아서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KIA가 왜 강팀인지, 어떻게 해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죠. 이젠 KIA가 제 팀이고, 제 현실이에요. 뒤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대선배 이종범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팀 합류 후 이종범 선배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그 선배님도 일본에서 야구하다가 한국으로 복귀하셨기 때문에 제 심리 상태를 잘 아시더라고요.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시잖아요. 그런 분과 한 팀에서 뛴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죠.”
일본을 놓고 오기가 힘들었다고 말한다. 2년 전 현해탄을 건널 때만 해도 일본은 자신한테 무한한 기회의 땅이었고 그럴 가능성을 몸소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1군과 2군을 오르내리며 점차 페이스를 잃었고, 주전보다는 지명타자로, 대타로, 벤치신세로 머물며 ‘꽃범호’가 점차 시들어갔다.
“일본에서 비록 한 시즌만 보냈지만 그 1년 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었어요. 한화 입단 후 항상 주전으로 뛰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용병’이란 타이틀을 달고 경쟁의 회오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리는 이범호가 존재했죠. 매일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어요. 팬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알 수 있었어요. 감독의 신뢰를 받고 동료들의 무한 지지 속에서 어울려 야구하는 환경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절감했습니다. 일본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전, 제가 잘나서 야구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감독, 동료, 팬, 프런트 등 모든 요소들이 공존했기 때문에 이범호도 존재하는 거더라고요. 이렇게 큰 느낌표를 준 일본 생활을 실패작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어요. 야구팬들은 제가 아무 소득 없이 빈 손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함, 소중함을 배우고 왔어요. 아주 값진 경험인 거죠.”
이범호에게 롯데의 막강 클린업 트리오(조성환-이대호-홍성흔)와 KIA의 새로운 클린업 트리오(이범호-최희섭-김상현)의 파워를 비교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이범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롯데의 클린업 트리오는 오랜 시간 호흡을 함께한 선수들로 구성됐지만 KIA는 올 시즌 처음으로 만들어진 클린업 트리오라 파워면에선 롯데가 앞설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초반보다는 중반 넘어서부턴 KIA의 클린업 트리오가 만만치 않은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8개팀 중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가 될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범호는 그동안 지적받았던 커진 스윙폼을 좁혀가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한다. 투수들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고 컨트롤이 좋아지는 상황에서 스윙폼을 좁혀가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자신은 홈런보다는 안타를 통해 타점을 내는 역할이라 스윙을 크게 하기보다는 간결하게 가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이범호는 올해 아이 아빠가 된다. 아내가 임신 중인데, 아마도 딸이 태어날 확률이 높다면서 “한 가지 소원이 내 딸이 아빠 얼굴만 안 닮았으면 하는 것”이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아들이 태어나면 야구 선수로 키우고 싶었어요. 저보다 더 나은 야구 선수가 되었으면 해서요. 하지만 딸이라고 해도 서운하진 않아요. 아내 닮은 딸이 태어나면 정말 예쁠 것 같아요. 올해는 새로운 것과 인연이 많아요. 결혼도, 소속팀도, 또 아빠가 되는 것도 다 새로움의 연속이죠. 이 새로움들이 모두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범호는 인터뷰 말미에 일본의 지진 피해를 거론하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특히 쓰나미가 덮친 센다이는 라쿠텐과의 원정 경기차 자주 방문했던 곳이라 뉴스를 통해 접한 그곳의 참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제일 먼저 (김)태균이가 걱정돼서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 문자를 보냈더니 나중에서야 ‘괜찮다’는 답장이 왔어요. 지진을 경험한 임창용 선배는 아주 크게 놀라셨더라고요. 모두 무사하셔서 다행이긴 한데, 일본의 대참사가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가 없어 너무 안타깝네요.”
마지막으로 이범호에게 ‘범호’란 이름이 호랑이와 관련있는 의미냐고 물었다.
“아니요. 돗대 범(帆)에 넓을 호(鎬)예요. 그래도 그냥 범호를 호랑이와 연결해주세요. 이젠 타이거즈 선수니까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