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택 지하에 설치된 핵 방공호 내부. |
일부 도쿄 시민들이 서쪽 오사카나 남쪽 나고야 등으로 지인이나 친척 등을 찾아 피난하고 있다. 지방에 연고가 없는 사람은 1주일 예약 등 비교적 장기간으로 호텔을 끊어 놓고 피신하기도 한다. <마이니치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미 신칸센 기차표가 만석이라고 한다. 특히 성장기 아이가 있는 집의 경우 소량의 방사능 물질로도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디든 도쿄를 벗어나겠다는 이들이 많지만, 장시간 지방으로 가서 살 수 있는 여력이 없을 경우 이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인터넷에서는 일왕의 대피설을 놓고 추측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 측이 일왕에게 교토 쪽으로 피난하라고 조언을 했는데, 일왕이 단호히 거부하고 도쿄에 남아 있다는 설과 일왕 왕비 왕세자 등 왕실 일가가 모두 이미 지난 14일 교토의 고쇼로 옮겼다는 설이 엇갈리고 있는 것. 고쇼는 일왕이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이전한 1868년 이전까지 일본 왕가의 거주지였다. 국왕이나 정부 고위직 등이 도쿄를 빠져나갈 경우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나 마찬가지라 ‘자신도 도망가겠다’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실상 일본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방사선 대책은 핵 방공호 시설이다. 핵 방공호 시설은 핵폭풍이나 고열에 견디고 방사능을 차단하는 구조로 된 피난처를 말한다. 실제 지난 2006년 북한의 핵실험과 2007년 니가타의 매그니튜드 6.8의 강력한 지진 이후, 자택 지하에 핵 방공호 시설을 짓는 업체에 하루에 3~4건씩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한 업체는 매년 10건씩 시공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보통 1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이로 짓는데 지하 4m 깊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단 자택 지반의 상태에 따라 깊이가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내부에는 공기 청정기 등을 설치한다. 일설에 의하면, 핵 방공호는 히로시마급 핵폭탄이 투하돼도 660m 정도만 떨어져 있으면 안전하다고 한다. 한 업자는 핵 방공호를 지으려 상담하러 왔다가 1500만 엔(약 2억 원) 정도의 만만치 않은 비용에 발걸음을 돌리거나, 상세 설계 내용을 듣고 “우리 가족만 살아남아 밖으로 나왔을 때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냐. 필요가 없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가는 손님도 많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일본 부자들은 일본 열도를 빠져 나오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활을 할까. 일본의 한 인터넷 언론은 이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아갈 확률이 크다고 전망한다. 일본 경제 호황기 때 ‘PT’라는 미래 투자 방법이 유행을 했기 때문에 일본 부자들 중 일부는 이미 해외 여러 곳에 생활 거점을 마련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PT는 ‘Permanent Traveler’(영원한 여행자)의 약자. 한마디로 죽을 때까지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투자 및 생활방식이다. 즉 해외에 투자 거점이나 자택 등을 마련해놓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행자’로 일생을 보내는 방식이다. 특별히 국적을 바꿀 필요도 없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고국 일본에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부자들이 선호하는 투자 방법이었다. 원래는 미국이나 유럽의 부유층이 자국에서 고액의 세금을 내기 싫어서 선택한 생활방식이었다고 한다.
투자 전문가들은 PT를 하려면 적어도 총 자산 운용 규모가 5억 엔(한화 약 70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전체 일본 세대 중 6만 세대가 이러한 조건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책 <세금을 내지 않는 영원한 여행자, 궁극의 해결법 PT>를 쓴 기무라 쇼지 부동산컨설팅 전문가는 “일본의 경우는 지진 등 자연 재해 리스크가 워낙 커서 자산이나 사업 거점을 일본이 아닌 해외에 마련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부유층에서는 오래 전부터 퍼져있었다”고 한다. 또 속박되기를 싫어하는 젊은 부유층들도 이런 투자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힘들 때 국외로 나가 있다가 상황을 봐서 다시 언제든 고국으로 귀국하는 것도 가능한 셈이다.
PT의 개념은 일본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직전인 1980년대 최고 호황기 때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여행 거점을 두기에 가장 알맞은 나라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우선 그 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나라로는 홍콩, 싱가포르, 중국, 베트남 등이있다. 두 번째로 실제 주소로 쓸 집을 둔 나라다. 사실상 일본 본토 대신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예를 들어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나라 바누아투는 자연환경도 좋고 민주주의도 발달돼 행복 지수도 높고 직접세가 하나도 없어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세 번째 조건은 은행이나 증권 계좌를 두고 자산 운용을 할 수 있는 나라다. 은행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으로 홍콩 싱가포르 등이 있다. 네 번째는 여가를 즐기면서 자신의 취미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나라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은 국적용이나 금융 비즈니스용으로 ‘활용’하고 거주나 여가생활은 개발도상국 등에서 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의외로 미국은 인기가 없다.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게 되면 미국을 떠나 있더라도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인들의 인종차별 등을 염려해 꺼리는 이도 있다.
미국 본토와 달리 하와이는 일본 부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일본인 이민자가 많아 문화에 적응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와이 인구 130만 명 중 23%가 일본계 이민자다. 이미 하와이에 부동산 투자를 한 일본인들이 많다. 이상적인 리조트이기도 하지만 투자나 거주 목적으로도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PT조건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캐나다도 선호되어 온 나라다. 캐나다는 35만 달러(약 4억 원)를 투자하면 투자가로 장기 체재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