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주도 경선 준비 과정 대선주자들과 파열음…국민의당과 합당 불발 시 책임론 나올 수도
국민의힘이 마주하는 혼란상 한가운데 '감독 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선 경선에 나선 선수들을 잘 관리해 최적의 대표 선수를 선발해야 할 당 대표가 선수들은 물론, 당내 인사들과 무차별적으로 격돌하면서 팀내 불협화음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 국민의당과의 살림 합치기도 비관적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코로나19 대규모 재확산으로 궁지에 몰린 정부여당의 실책 효과를 1야당이 누리기는커녕 허공에 날리고 있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도대체 왜 이러나?"라는 질타가 국민의힘으로 쏟아지고 있다.
#감독이 MVP 노리나
이준석 대표가 연일 당내 대선후보들과 충돌하면서 국민의힘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이 대표는 8월 9일부터 닷새 동안 휴가를 떠나면서도 특유의 입심을 맹렬하게 가동, 당내 불협화음을 잠재우기는커녕 더욱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러한 국민의힘 상황을 반영, 일제히 ‘콩가루 집안’이라는 제목을 달면서 국민의힘을 두들겼다.
당내 후보들 가운데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려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주로 티격태격해온 이 대표는 최근엔 윤 전 총장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들에, 당 지도부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선상에 두면서 갈등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경선 토론회 일방 개최 등 당 경선준비위원회(경준위)의 월권 문제를 지적하자 이 대표는 8월 10일 “원 후보께서 후보 겸 심판을 하시겠습니까”라며 “경준위에 대한 무리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지적했다. 자신과 경준위를 비판하는 일부 최고위원들을 향해서는 “최고위에서 의결될 때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모르는 이야기처럼 얘기해선 안 된다”라고 직격했다.
원희룡 전 지사는 8월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표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경준위는 월권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경준위는 바로 경선 일정과 방식 등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이 사안에 대한 우리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최고위원회다. 최고위는 후보 토론회를 포함해 경선 일정과 방식, 프로그램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 결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대표를 겨냥해서도 “당대표 임무는 경선 심판 보는 자리가 아니고 더군다나 경선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일 수 없다”고도 했다.
이어 원 전 지사는 MBC와 인터뷰에서 이 대표에 대해 “자기 자신의 스포트라이트에 너무 집착한다. 한마디도 안 지려고 모든 사람과 말싸움하는 식으로 해서는 상당히 심각한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장을 날렸다.
당 지도부인 김재원 최고위원도 8월 1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가 이 대표 주도로 경준위가 준비 중인 토론회와 관련 “후보 측도 반발하고 있고, 또 최고위원인 저도 반발하고 있는데, 권한이 아니라고 그만큼 이야기해도 막무가내로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경준위가 출범할 때 (이런 토론회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고, 그런 것 하겠다고 보고한 적도 없고, 하라고 용인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 내부가 극심한 혼란 양상으로 빠져들자 대선주자인 박진 의원 역시 8월 10일 SNS를 통해 “자꾸 분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 중심에 이 대표가 있어 더욱 걱정된다”고 꼬집었다. 중진인 김태흠 의원도 8월 11일 “지금 이 대표는 대선후보들의 군기반장 노릇을 자처하고 자신이 출연자인 양 본인 존재감을 높이는 데 혈안이다. 심지어 당대표가 나서서 대선 후보들을 직접 공격해 흠집을 내고, 어떻게 단점을 부각시킬지 방법 모색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진들의 경고가 터져 나온 8월 11일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총장 갈등에 또 다른 폭탄이 터졌다. 이 대표가 유튜브 채널 ‘매일신문 프레스18’에 나가 했던 발언이 뒤늦게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이 유튜브 방송에서 “(주변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이 되고 윤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면) 지구를 떠나야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영상이 퍼져나가면서 이 대표가 토론회나 압박면접, 검증단 등을 고리로 윤 전 총장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더 나아가 이 대표가 유승민계로 분류된 것과 연결 지어, 윤 전 총장 대신 유승민 전 의원을 밀어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또다시 확산했다. 이 대표는 앞서의 유튜브 채널에서 ‘윤석열이 (캠프에) 오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난 대통령 만들어야 될 사람이 있다. 유승민”이라고 언급했다.
윤석열 전 총장 캠프도 이준석 대표를 겨냥했다. 윤 전 총장 캠프 신지호 정무실장은 8월 11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준석 대표의 경선 토론회 방침에 난색을 보이면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탄핵도 되고 그런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준석 대표는 자신을 탄핵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인 듯 8월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드디어 탄핵 얘기까지 꺼내는 걸 보니 계속된 보이콧 종용과 패싱 논란, 공격의 목적이 뭐였는지 명확해진다”고 발끈했다.
윤 전 총장 본인이 직접 진화에 나서면서 갈등은 일단 진화 모드에 들어간 모양새다. 윤 전 총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탄핵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았다”는 공식발언을 내놨고, 직접 이 대표에게 전화까지 걸어 “신 실장을 밖에서 들릴 정도로 많이 혼냈다. 대표님과 내가 같이 가야 하지 않겠느냐.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 내부에서는 잠시 휴전일 뿐 이 대표가 향후에도 전방위적 충돌국면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걱정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인 권영세 의원은 자신의 SNS에 “서로 갈등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영화 ‘미나리’에서 (조연인) 윤여정 선생님이 스스로 주연이 되려 오버했다면 미나리는 실패했을 것”이라며 이 대표에게 불필요한 말과 글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통합도 가물가물?
국민의힘은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 대통합을 이뤄야 하고, 이를 위해 국민의당을 반드시 품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서 사실상 합당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8월 11일 유튜브 방송에서 “안철수 대표가 곧 국민에게 합당과 관련된 입장을 말씀드릴 것 같다”고 전했다. 합당 협상을 주도해온 권 원내대표는 이날 방송에서 합당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하지 않음으로써 합당이 불발될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정치권 분석에 따르면 8월 10일 국민의힘이 대선 경선 일정을 확정하면서 안 대표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어졌다. 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제3지대 신당 창당 의사를 밝히면서 중도 세력과 손잡을 공간이 생겨, 안 대표는 독자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힘 후보가 선출된 뒤 제3지대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는 방식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같은 ‘토너먼트식 단일화’다.
이웃집과의 살림 합치기가 무산될 위기에 놓인 것과 관련해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대표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다. 사사건건 안 대표와 부딪히면서 야권 통합 실패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게 됐다는 것이다. 대선을 여러 번 치러본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의 하소연이다.
“안 대표를 야권통합 실패의 주범으로 만들어 놔야 하는데, 이 대표가 툭하면 안 대표와 충돌하면서 야권 조기 통합 실패 책임을 국민의힘도 일정 부분 안게 됐다. 정치는 명분인데 야권 통합 실패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어떻게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겠나. 이 대표가 정치협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난 당대표 경선에서 정치 현장을 많이 봐온 당원들은 이 대표가 아닌 나경원 전 의원을 지지한 이유가 다 있었다.”
#정부여당, 야당복 누리나
코로나19가 또다시 대확산세를 보이고,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백신 수급 불안까지 재연되면서 최근 시국은 완전히 ‘야당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짧고 굵게라던 거리두기 강화조치는 무제한의 길고 굵은 초강력 거리두기로 이어지는 중이고, 손님을 구경하기 힘든 자영업자들의 비명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해야 할 국민의힘은 전혀 대안세력으로서의 지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헛발질이 만들어낸 수혜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역시 이 대표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당 내부를 향해 겨눈 총구로 인해 정부여당을 향한 날선 공격이 당 내부에서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당 내부의 한목소리다.
심지어 이 대표는 휴가 기간 중 “내가 당대표가 돼보니 지금 대통령 선거를 하면 여당에 5%포인트(p)로 진다”고까지 말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가 여당 후보를 18%p 차이로 이긴 지 넉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제1야당 대표가 “5%p 차이로 지고 있다”는 말을 태연스레 꺼내놓은 것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초선의원들은 이 대표에 대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요즘 내부 분위기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라며 “남 얘기하듯 ‘우리가 지금 지고 있다’고 말해 정말 열심히 뛰고 있는 대선후보들의 뒷덜미를 낚아챈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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