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포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야 수비도 지휘하고, 투수도 리드하고, 그런 가운데 패스트 볼(Passed Ball) 같은 결정적 실책이 없도록 몸을 던져 경기에 열중해야합니다. 그러다보면 체력이 많이 소모되겠지만 재정부의 엄정한 소명을 비춰볼 때 그 정도는 감내해야 합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열성팬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일 기자들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에서 재정부의 역할을 야구에 빗대어 쉽게 설명한 말이다. 강만수 전 장관이나 윤증현 전 장관은 숫자나 명언 등을 즐겨 사용했지만 박 장관은 보다 격의 없고, 소탈한 비유를 즐긴다. 이러한 박 장관의 어법과 태도는 과거 재정부 장관들에게서는 볼 수 없던 것이어서 재정부 안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장관은 8일 ‘포수론’을 설파하면서 “포수는 안방살림을 한다”며 “투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다른데, 원전이라면 지경부가 투수고 4대강이라면 국토부가 투수라고 할 수 있다”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공직사회 간 칸막이 문화에 대한 지적도 모범답안, ‘족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그는 “각 부처마다 자기 논리, 모범답안, 족보가 내려오지 않느냐, 본인은 모르고 있을 수 있는데 이게 모법답안이라며 몸에 배었을 수 있다”면서 “사심이나 악의에 의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있었던 윤증현 전 장관의 이임사와 박재완 장관의 취임사를 비교해보면 어법의 차이가 뚜렷해진다. 윤 전 장관은 이임사에서 상월선사의 ‘월락불이천’(月落不離天, 달이 진다고 하늘을 떠난다는 것은 아니다), 토마스 제퍼슨의 ‘원칙의 문제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길’, 스티브 잡스의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Stay hungry, stay foolish, 지식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 ‘침과대단’(枕戈待旦, 창을 베고 누운 채 아침을 맞는다) 등 고사성어와 명언을 수차례 인용했다. 또 경제업적을 언급하면서 “2010년에는 6.2% 성장, 2.9% 물가, 32만 개 일자리 창출로 교과서적 경기회복이라는 외신의 평가를 듣기도 했다”고 밝히는 등 숫자를 수차례 인용했다.
반면 같은 날 박 장관의 취임사에서는 숫자나 고사성어는 찾기 힘들었다. 페르시아 대군을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막아내던 스파르타 용사들을 영화화한 <300>의 내용을 들어 복지 포퓰리즘에 맞설 것을 당부했고, 장안에 화제가 된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예로 들며 더 낮은 자세, 더 열린 마음으로 국민에게 봉사할 것을 요구했다.
재정부 내에서도 윤 전 장관의 연설문이나 발언이 전형적인 관료형이라면 박 장관의 말은 보다 자유분방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박 장관은 참모진이 마련한 연설문이나 발언문을 대부분 고쳐서 다시 쓴다. 원고가 박 장관 손을 거치면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어 있다”면서 “교수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보다 쉬운 예를 드는 것을 좋아하고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장관은 취임식이 있었던 2일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바로 장관실로 돌아가지 않고, 재정부 건물 뒤편 언덕으로 자리를 옮겨 실·국장들에게서 첫 간담회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박 장관은 실·국장들에게 “이만하면 잘했나요, 아슬아슬했나요? 환율 이야기는 답을 잘한 건지 모르겠네요”라며 존댓말을 써가며 물었고 후한 평가가 내려지자 “휴~ 다행이네”라며 안도했다.
박 장관의 자유분방함은 온라인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박 장관은 임명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facebook.com/j1.bahk)에 취임사를 링크하는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취임 직후 첫 현장방문 장소였던 중소기업 제품 전용 백화점인 ‘행복한 세상’의 홈페이지를 링크하고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백화점에 들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또 6일에는 페이스북 친구가 250명을 넘어선 것에 대해 자축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박 장관의 파격은 ‘말’에 그치지 않는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할 당시 박 장관은 소형차인 ‘모닝’을 타고 다녀 유명세를 탔다.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이용했다. 그런 그가 경제팀 수장으로 사실상 부총리급인 재정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차량이 보다 업그레이드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박 장관은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고수했다. 단지 흰색에서 회색으로, 색깔만 바뀌었을 뿐이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