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 영화계 위축 속 OTT 공격적 행보…강윤성 김태윤 연상호 등 유명 감독들 동참
‘왕의 남자’와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이 드라마 연출에 처음 도전한다. ‘범죄도시’와 ‘롱 리브 더 킹’의 강윤성 감독 역시 넷플릭스의 대표작 ‘킹덤’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인 ‘킹덤:세자전’ 연출을 맡고 드라마에 진출한다. ‘재심’과 ‘미스터 주:사라진VIP’의 김태윤 감독, ‘8월의 크리스마스’와 ‘천문: 하늘에 묻는다’의 허진호 감독은 물론 일찌감치 드라마 작가로도 영역을 넓힌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도 같은 길을 택했다.
영화감독들이 잇따라 드라마 연출에 나서는 이유는 급변하는 콘텐츠 플랫폼 시장의 변화와 맞물린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필두로 웨이브, 티빙 등 국내 플랫폼까지 물량 공세로 공격적인 콘텐츠 제작에 돌입, 실력 있는 영화감독들을 흡수하고 있다.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장기화 여파로 급감한 극장 관객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화계가 전체적으로 위축된 환경도 이들의 드라마 진출을 이끈다.
#영화감독들이 택한 드라마는?
이준익 감독은 묵직한 시대극으로 저력을 과시하는 한국 영화 대표 연출자로 꼽힌다. 영화연출 외에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지 않았던 그가 최근 드라마 ‘욘더’ 연출 소식을 알리자 영화계는 물론 방송가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감독은 올해 3월 설경구‧변요한 주연의 영화 ‘자산어보’를 내놓은 이후 곧장 드라마 연출 준비에 돌입했다. 몇몇 톱스타에 출연을 제안한 끝에 배우 신하균이 합류했다.
‘욘더’는 김장환 작가의 소설 ‘굿바이, 욘더’가 원작이다. 현실과 사이버 세계가 한데 섞인 미래의 서울이 배경이다. 이준익 감독은 오랫동안 영화 작업을 함께 해온 제작자, 프로듀서, 작가와 협업하면서 첫 드라마에 공을 들이고 있다.
휴머니즘 짙은 영화를 주로 만든 김태윤 감독의 스타일은 첫 드라마로 이어진다. 그가 연출하는 ‘내일’은 취준생 주인공이 우연한 사고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 중인 저승사자들을 만나 벌이는 이야기다. 죽음의 상징이던 저승사자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도와 삶을 이어가게 한다는 설정. 가해자를 응징하고 피해자는 돕는 활약을 다룬다.
영화에서 높은 수위를 넘나들면서 뚜렷한 색깔을 구축한 감독들도 나란히 드라마를 내놓는다. 특히 강윤성 감독은 ‘범죄도시’를 통해 잔혹하면서도 통쾌한 범죄극의 성공을 이끈 실력자다. 전 세계에 ‘K좀비’ 열풍을 확산시킨 ‘킹덤’ 시리즈와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연상호 감독은 일찌감치 작가, 제작자로도 활동해왔다.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열이 이번에는 드라마 ‘지옥’으로 향했다. 유아인, 박정민 주연의 ‘지옥’은 한 종교단체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의 대립을 그린다. 공개 전부터 성과도 내고 있다. 한국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9월 9일 개막하는 제4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프라임타임 부문에 초청됐다. TV와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자들의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드라마 베테랑’ 배우들 합류
영화감독들의 첫 드라마 연출에는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베테랑 배우들이 함께한다. 상영시간 2시간 내외의 영화와는 엄연히 다른 작업인 만큼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의 협업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준익 감독의 선택은 신하균이다. 최근 JTBC 드라마 ‘괴물’의 주연으로 활약하면서 진가를 또 한 번 입증한 신하균은 이 작품으로 제5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윤성 감독의 파트너 주지훈 역시 SBS ‘하이에나’를 비롯해 방송을 앞둔 tvN 드라마 ‘지리산’ 등 화제의 드라마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배우 김희선은 김태윤 감독과 만난다. ‘내일’에서 저승사자가 현실의 사람들과 벌이는 따뜻한 이야기를 이끌어갈 김희선은 최근 SBS ‘앨리스’와 tvN ‘나인룸’, JTBC ‘품위있는 그녀’ 등 드라마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첫 드라마를 마친 유아인 역시 “많은 분이 공감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지옥’이라는 제목이나 콘셉트, 스토리에 전 세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기대를 표했다.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로 대거 이동하는 배경을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꼽는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의 여파로 영화시장이 전체적으로 위축된 데다 아무리 흥행감독이라고 해도 투자가 여의치 않게 때문이다. 그 틈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OTT의 파격적인 투자가 영화감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인 셈.
물론 OTT의 공격적인 행보에 맞서 작품 경쟁력을 높이려는 지상파, 종합편성채널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MBC가 김태윤 감독을 기용해 ‘내일’을 제작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JTBC 역시 전도연 류준열 박병은 등이 출연하는 허진호 감독의 첫 드라마 ‘인간실격’을 9월 4일 공개한다.
이해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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