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시민구단 강원FC와 대전FC의 경기.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
현재 프로축구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된 선수 5명은 모두 시·도민구단 소속. 때문에 열악한 재정에 허덕이는 시·도민구단 소속 선수들이 승부조작 브로커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검은 손의 먹잇감이 돼버린 시·도민구단의 현 실태를 들여다봤다.
“재정 상황이 좋은 기업 구단 선수들의 경우 브로커들이 열 번 찍어도 넘어갈까 말까죠. 연봉도 높고 처우도 좋은데 굳이 불법 베팅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반면 시·도민구단 선수들은 몇 번만 찍어도 넘어갈 수 있어요.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를 하다 보니 브로커들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K리그 한 지방 구단 관계자의 전언이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프로축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지적한 것. 대기업이 운영하는 명문구단에 비해 시·도민구단의 살림살이는 빠듯하다. 대부분의 시·도민구단이 1년에 약 80억 원의 예산으로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광고 수입이 70~80%를 차지한다. 물품 판매나 관중 수입은 총 수입의 10% 내외. 나머지 약 10억 원은 선수들의 이적료로 채우는 실정이다. 때문에 시·도민구단은 선수 양성소로 불린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발탁, 실력을 키운 뒤 기업 구단에 팔아 생존하고 있기 때문. 결국 시·도민구단과 기업구단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선수 트레이드는 매년 예산이 10% 이상씩 줄고 있는 시·도민구단의 최후의 카드인 셈이다.
시·도민구단의 열악한 재정 상황은 숙소와 훈련 시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총 6개의 시·도민구단 중 강원 FC와 경남 FC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단이 전용훈련장과 클럽하우스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대전 시티즌은 계룡건설 직업훈련소를 숙소로 쓰고 있다. 외진 곳에 위치한데다 시설도 낙후돼있어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정도다. 그 전까지 경기장 인근 원룸에서 지내던 선수들로선 이마저도 다행이라고. 광주 FC 선수들은 경기장 근처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2인 1실 원칙이다. 대구 FC는 그나마 낫다. 홈구장 근처 아파트를 빌려 4명씩 지낸다. 인천유나이티드는 1년차 선수들의 경우 빌라에서, 다른 선수들은 집에서 출퇴근한다. 때문에 집이 먼 선수들로선 훈련장까지 직접 가야만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한다.
훈련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대부분 구단이 전용 훈련장이 없어 3~4 곳의 구장을 전전하며 연습을 한다. 월 또는 주 단위로 대여 계획을 짜놓았지만 갑작스레 변경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도 주관 행사가 있을 경우에 그렇다. 멀게는 40분 이상 이동해 훈련을 하고, 인근 구장 대여가 완료됐을 경우엔 불가피하게 훈련을 못할 때도 있다. 그나마 1군 선수들은 천연잔디구장 훈련이 보장되지만, 2군 선수들은 인조 잔디구장에서 공을 차야만 한다.
시설뿐 아니다. 연봉을 살펴보면 기업구단과 시·도민구단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최저연봉은 1200만 원으로 동일하다. K리그 드래프트에서 2, 3순위에도 들지 못한 선수들은 번외지명으로 프로무대를 밟게 되는데 이들의 연봉은 1200만 원으로 통일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드래프트 1순위 선수의 경우 통상 5000만 원을 받는다.
기업 구단의 경우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에게 최하 5억 원에서 최고 10억 원 이상의 연봉을 준다. 수당을 포함하면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는 많게는 30억 원까지도 투자한다. 반면, 아무리 대표팀 경력이 있는 주전급 선수라도 시·도민구단 소속일 경우 그 연봉은 기업구단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경남 FC 관계자는 “수당을 빼고 나면 최고 연봉이 3억 원을 넘지 못한다. 신인을 제외한 주전급 선수들은 7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비주전급 선수의 경우 경기 출전 횟수에 따라 3000만~4000만 원 이하로 떨어진다. 이마저도 작년에 경남이 좋은 성적을 내서 연봉이 인상된 덕분이다”고 귀띔했다.
타 구단 관계자들은 경남 FC 연봉 사정이 그나마 가장 나은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원 FC 관계자는 “대표팀 경력이 있는 주전 선수는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우리 구단의 경우 최고 연봉이 1억 원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평균 연봉은 5000만 원이다. 경기에 종종 출전하는 비주전 선수는 4000만~5000만 원, 경기에 거의 못나가는 선수는 3000만 원 미만을 받는다”고 전했다. 대전 시티즌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외국인 선수를 비롯, 주전급 선수의 최고 연봉은 2억 원 남짓. 1억 원 넘는 연봉을 받는 선수도 손에 꼽는다. 1군 선수들 대부분이 5000만 원~1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단다.
올 시즌 신생팀 광주 FC는 타 시·도민구단에 비해 연봉이 적은 편이다. 26명의 선수 모두 신인선수로 구성돼있어 평균 연봉이 상대적으로 낮다. 구단 관계자는 “타 구단에 5000만~1억 원 연봉을 받는 선수가 10명 있다면, 우리는 3000만~5000만 원 받는 선수가 10명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린 2군을 운영하지 않고, 선수 모두 1.5군에 해당한다. 주전 선수는 4200만~4600만 원, 신인 번외지명 선수들은 1200만~1800만 원 연봉을 받는다”고 말했다.
K리그 선수들은 그나마 낫다. K리그에서 오랜 기간 주전 선수로 활약하다 K3(챌린저스리그)에서 경기를 뛰던 한 선수는 불법 베팅 브로커들의 타깃이 된 K3 현실에 대해 입을 열었다. “K3는 축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선수들이 뛸만 한 곳이 아니다. 연봉은 아예 없고, 경기 수당으로 10만~20만 원을 받는다. 승리 수당도 10만 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종관 선수처럼 K리그에서 생활하다 K3로 내려온 선수들은 그 생활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면 브로커들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쉽지 않겠나.”
K2(내셔널리그)의 사정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란다. 기업구단에 속한 2군 선수들은 평균 5000만 원 수준의 연봉을 보장받기 때문. K2리그 관계자는 “기업구단 2군 선수들의 연봉과 시·도민구단 1군 선수들의 연봉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내셔널리그 선수들은 승리수당으로 50만~100만 원을 받는다. 구단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시·도민구단 대부분이 이와 동일한 수당을 받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비주전과 2군 선수들이 금전적인 유혹을 받는 것도 이러한 환경이 큰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다.
시·도민구단이 구단 운영에 애를 먹는 점도 맥락을 같이 한다. 시즌이 끝날 무렵, 구단 운영진들의 발길이 바빠진다. 20억 원 이상을 후원하는 메인 스폰서 기업의 계속된 지원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 1억 원이라도 후원해줄 수 있는 서브 스폰서 기업을 찾느라 동분서주한다. 시·도의 지원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시에서 10억 원을 지원받고 있는 대전시를 제외하곤, 대부분 구단이 지역 기업의 후원을 통해 구단을 꾸려나가고 있다. 시·도가 소유하는 경기장을 대여료 없이 사용하는 게 전부다. 일부 시는 구단이 선불로 지불한 대여료를 다음 예산에 반영하는 식으로 경기장을 운영하고 있다.
열악한 재정에 허덕이는 시·도민구단 소속 선수들이 불법 베팅 브로커들 유혹의 표적이라 일컬어지는 가운데, 한편 축구계 안팎에서는 구단의 재정상태보단 선수 개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K리그 한 구단 관계자는 “일반 회사원을 예로 들어보자. 본인 연봉이 적다고 해서 회사 돈을 횡령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연봉에 대한 불만으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은 극히 일부다. 결국 양심을 저버린 선수 개인 도덕성의 문제다”고 전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한두 명이 경기결과 못 바꿔
모든 경기엔 승부조작의 가능성이 있다. 야구와 농구의 경우는 어떨까.
일단 전문가들 대부분이 야구는 사실상 승부조작이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프로축구는 비교적 적은 점수 차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다. 골키퍼의 실수는 곧 패배로 직결되는데다가 단 1골이 승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반면 야구는 한 선수의 실수가 승부 자체를 뒤바꿀 만큼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9명 선수 전부를 매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면서 “타자 1명이 4타수 무안타에 그친다 해도 다음 타자가 활약을 하면 경기 흐름이 달라진다. 투수를 매수한다 해도 코칭스태프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 교체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농구는 어떨까. 지난 2006년 은퇴한 선수 한 명이 구매가 금지된 스포츠토토를 구입한 사실이 발각된 일이 있었다. 벌금형에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풀려난 바 있다. 한 농구 선수는 “결정적인 순간에 심판이 결정을 잘못 내릴 경우 승패가 뒤집어질 수 있다. 또 감독이 작정하고 선수 교체를 시도할 경우 승부는 장담 못한다”면서 “물론 프로농구에 승부조작 브로커가 연루됐단 소문은 아직 듣지 못했다. 프로농구 감독·심판을 맡고 있는 정도라면 연봉이 높기 때문에 굳이 불법 베팅을 시도할 일은 없지 않을까”란 의견을 덧붙였다.
스포츠토토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59%에 달한다. 반면 야구와 농구는 각각 20% 미만에 머물고 있다. 스포츠토토 관계자는 “축구에 베팅이 많이 몰리는 이유는 결과 예측은 어려운 반면 조작은 쉽기 때문”이라며 “야구, 농구는 득점이 많이 나오는데다가 축구처럼 1.5군이나 2군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가 없다. 있다 해도 스포츠토토에서 해당 경기 베팅을 시행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 사설 토토의 예측 불가능한 베팅 형태에 대해서는 경계를 부탁했다. “불법 사설 토토는 경기 시작 이후에도 실시간 베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동점골을 넣을 것이냐’는 등의 다양한 형태의 베팅을 시도하고 있다. 불법 사설 토토 영역이 확장된다면 야구, 농구에도 브로커들이 개입해 승부를 조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