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 인기 걸 그룹 멤버가 수능점수 400점 만점에 68점을 받고 서울 소재의 한 명문대에 입학하려 했다. 하지만 해당 학교 학생들은 ‘OMR 카드 쓰는 법도 모르는 가수’라며 강하게 반발해 결국 무산됐다.’ 90년대 대학가에서 떠돌던 웃지 못할 루머다. 그렇지만 이는 루머일 뿐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돌 스타들에게 ‘명문대’ 진학 미션은 ‘임파서블(impossible)’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과 스타 모두 윈윈(win-win)하는 필승의 카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트렌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울 소재의 명문대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 소재의 대학, 그리고 유명 학과가 아닌 신설학과로 진학하는 아이돌 스타들이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 진학 사실을 숨긴 채 몰래 대학생이 된 아이돌 스타들도 많다.
@ 프로필 기재용 입학 안해
2000년대 들어 가장 달라진 연예인의 대학 진학 트렌드는 ‘대학 진학 포기’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예계의 중심 인맥 가운데 하나가 몇몇 명문대의 특정 학과였다. 연예인의 경우 대학 진학에 다양한 특혜가 제공돼 인기만 갖추면 명문대 입학이 어렵지 않았던 터라 인기 연예인들이 앞 다퉈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학 진학 포기’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가능케 한 이가 바로 보아다. 로우틴(low-teen) 가수로 데뷔해 1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보아를 두고 명문대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였지만 그는 굳이 대학을 다닐 필요가 없다며 입학을 포기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스타 가운데에도 2NE1의 공민지, 소녀시대의 태연, 빅뱅의 승리와 대성, 그리고 아이유 등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소녀시대의 태연은 라디오 <친한 친구>를 통해 “공부는 하고 싶지만 지금 활동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가 없다”며 프로필에 대학교 이름을 기재하기 위한 진학은 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수업에 제대로 못 들어가는 ‘유령 학생’이 되느니 연예계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소신이다.
@ 같은 소속사 같은 대학 입학도
물론 여전히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는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돌 스타들이 더 많은 것. 사실 연예인의 경우 어느 정도의 인기만 갖추면 어렵지 않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서울 소재의 명문 대학은 물론이고 방송 연예와 무관한 학과에 입학하는 것도 손쉽다.
그럼에도 지방 소재의 대학에 진학하는 연예인이 급증하고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 소재의 대학에 입학한 뒤 지방 소재의 대학으로 편입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 연예인들이 대거 몰리고 있는 충남 홍성 소재의 청운대학교에는 SS501 출신 연기자 김현중을 비롯해 샤이니의 종현 온유 등이 재학 중이다. 같은 학교 대학원에는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슈퍼주니어의 예성 신동 이특 희철 등이 다니고 있다. 또한 비스트 멤버 이기광, 윤두준, 장현승, 용준형 등은 동신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2PM의 멤버 우영 준호 찬성 등은 호원대학교, 2AM의 임슬옹 정진운 등은 대진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스타들이 대거 청운대에 입학했는가 하면 비스트는 동신대, 2PM은 호원대 등 같은 연예기획사 소속 연예인이 같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요즘 새로운 트렌드다.
아이돌 스타들의 경우 사실상 정상적인 대학 생활이 힘들다. 그럼에도 대학에 진학하는 까닭은 단연 대학 졸업장 때문. 미래가 불투명한 연예인 입장에선 대학 졸업장이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일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대학마다 연예 관련 학과가 연이어 신설되면서 연예인이 대학 강단에 설 기회가 많아진 것도 연예인들 입장에선 매우 달콤한 유혹이다.
지방 소재 대학들은 이런 연예인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청운대 실용음악학과 조태선 학과장은 “일단 교수가 되려면 4년제 대학을 나와야 되는 것은 물론 대학원까지 나오는 것이 대세”라며 “연예인 학생들이 바쁜 방송 활동 때문에 수업 결석이 잦아 정상적인 학사 관리가 어려운데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있다” 말했다. 이어 “다른 학교 실용음악과와 달리 대중음악계에서 종사했던 경험이 있는 교수들이 대거 포진해 연예인 학생들의 상황을 잘 이해주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태선 학과장부터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가요계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동신대는 연예인 학생들이 서울에서도 강의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동신대 최영경 실용음악과 학과장은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비스트 멤버들과 온라인을 통해 학습에 필요한 자료들을 주고받고 있으며 온라인을 통해 녹음 실습 파일을 전송한 뒤 본인 목소리인지만 확인되면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췄다”라며 또한 서울에 거주하는 교수진이 그들을 개인 강의하도록 해 학습에 큰 불편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장학금까지 지원
요즘 또 하나의 트렌드는 신설학과에 연예인들이 입학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2005년 신설된 명지대학교 영화뮤지컬학부에 동방신기의 유노윤호, JYJ의 시아준수(당시 동방신기)와 함께 슈퍼주니어의 동해가 입학했다. 그 뒤로 원더걸스의 유빈과 슈퍼주니어의 성민이 07학번으로 입학하면서 명지대 영화뮤지컬학과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카라의 구하라 역시 올해 신설된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영상연기학과에 입학했다. 과 수석으로 입학한 구하라의 학교 생활이 담긴 사진은 온라인에 떠돌며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대학 측에선 연예 관련 신설학과를 만들며 연예인 신입생을 유치하면 신설학과 홍보에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구하라가 과 수석으로 입학한 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학과 역시 상당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성신여대 홍보팀은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홍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런 연예인 대학생 유치로 인한 홍보 효과는 신설학과뿐 아니라 지방 소재 대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과 수도권 소재 대학교에 비해 지방 소재 대학교는 학생 모집 등을 위해 홍보가 더욱 절실한 것. 결국 요즘 아이돌 스타들의 대학 진학 트렌드는 이처럼 연예인 대학생 유치를 간절히 원하는 대학교 위주로 대학 진학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를 위해 대학 측에선 학사 관리에서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학금 등의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2004년 연극영화과를 신설한 건국대학교는 일찍이 연예인 특별 장학금 제도를 도입했다. ‘연예인 특별 전형’을 통해 입학한 연예인들은 기본적으로 4년간 장학금을 받게 된다. 현재 건국대에는 동방신기의 최강창민과 포미닛의 현아 등 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재학 중이다. 건국대 홍보팀은 “우리 대학은 공인된 상을 받은 연예인만을 입학시킨다”며 “동국대 중앙대 등 다른 학교에 비해 연예·문화계 전공 후발 주자였던 건국대는 특별장학금 제도 덕분에 평판과 지명도 측면에서 많은 기대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신대에 재학 중인 비스트 네 명의 멤버 또한 ‘4년 특별 장학금’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동신대 실용음악학과 최영경 학과장은 “우리 대학 특별전형에 합격한 후 비스트가 청소년 문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판단하여 4년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설명했다.
다소 인지도가 낮은 지방대의 경우 연예인 홍보가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에 학교홍보 책자나 포스터 모델 활동을 통해 대학 홍보에 공을 세운 아이돌에게 ‘공로 장학금’ 형태로 장학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대진대 청운대 등이 연예인들에게 공로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정아 기자 cja87@ilyo.co.kr
때론 ‘특혜 의혹’ 도끼눈
대부분의 아이돌 스타들의 대학 입시는 특례입학전형을 통해 이뤄진다. 이 때문에 힘든 경쟁률을 뚫고 대입에 성공한 일반 대학생들에게 아이돌 스타의 대학 진학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수면 위로 오르곤 했다. 특히 연예 관련 학과가 없어 연예인 대학생이 흔치 않았던 대학에서의 아이돌 스타에 대한 관심은 더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성신여대는 올해 융합예술대학을 신설했다. 작년 말 구하라가 11학번으로 2차 수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캠퍼스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유명 아이돌 멤버가 학교에 입학한다는 소식이 반갑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신설학과 홍보용’으로 입학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것. 한 성신여대 학생은 “처음 구하라가 수시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하라 정도 되는 한류 아이돌 스타가 신설학과에 들어오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며 “신설학과 홍보를 위해 특별히 수석 입학시킨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학생들 사이에서 제기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성신여대 학생은 “구하라가 우리 대학 수시 수석으로 입학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1등으로 들어온 것인지 모르겠다”며 “요즘에는 수업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편 성신여대는 연예 관련 학과인 융합예술대학을 신설하기 위해 여러 학과들이 통폐합되면서 진통이 많았다. 이에 대해 성신여대 부총학생회장은 “연예 관련 학과가 학교 지명도 측면에서도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에 대학 측에서 이런 점을 고려했던 것 같다”며 “처음 학과 통폐합으로 학생들 반발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슈퍼주니어, 샤이니, 동방신기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의 멤버가 다니는 청운대 학생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청운대 총학생회장은 “학교 다니면서는 거의 보지 못했고 축제나 OT 때 공연으로 많이 보는 편”이라며 “방송ㆍ연예 분야 학과에서는 홍보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은데 학교 전체 홍보 쪽으로 생각했을 때는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연예인들의 대학 입학을 두고 항간에선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포털사이트 프로필의 학력에 대학교 이름을 넣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많다. 프로필을 위한, 이름만 대학생이라는 지적. 그런데 최근에는 대학에 진학하고도 이를 프로필에 올리지 않는 아이돌 스타들이 많다. 이로 인해 김현중의 대학 진학 소식도 뒤늦게 알려졌는데 여전히 대학 진학이 프로필에 기재되지 않거나 잘못 기재된 경우가 많다.
우선 일부 아이돌 멤버들은 편입 등으로 대학교를 옮겼지만 이런 사실이 프로필에 반영되지 않았다. 백제예술대에 입학했던 슈퍼주니어의 신동은 청운대학교로 학사 편입, 현재는 청운대학원 방송음악학 석사과정에 있다. 이후 슈퍼주니어의 리더 이특 또한 인하대에 다니다가 신동과 같은 청운대에 편입하면서 청운대학원에 진학했다. 동방신기 최강창민의 일부 포털 사이트 프로필 학력이 경희대 포스트모던학과로 기재돼 있지만 최근 건국대로 학사 편입하여 지금은 포미닛 현아, 배우 김정은과 동문이 되었다.
프로필과 달리 이미 대학원에 진학한 아이돌 스타들도 있다. 바로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슈퍼주니어의 희철이다.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는 명지대 영화뮤지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청운대학원에 진학하여 방송음악학을 전공하고 있다. 희철 또한 상지영서대 관광영어통역과를 졸업하여 현재 유노윤호와 같은 청운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해 대입에 성공하여 새내기가 됐지만 아직 프로필에 반영되지 않은 이들도 있다. 청운대학교 공연기획경영학과 새내기인 김현중을 비롯해 유키스의 수현, 기섭 또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실용음악학과에 11학번으로 올해 새로 입학했다. 심지어 샤이니의 온유와 종현은 청운대 실용음악과에 10학번으로 입학했지만 포털사이트 프로필에는 아직도 게재돼 있지 않다.
이처럼 포털사이트 프로필의 잘못된 학력란에 대해 SM 엔터테인먼트 홍보팀 관계자는 “수정을 안 한 특별한 이유가 없고 미처 업데이트를 못했던 것 같다”며 “잘못된 부분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고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