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축구계의 승부조작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 26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대회의실에서 김정남 프로축구연맹 부회장이 16개 구단장들과 함께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5월 24일 창원지검 특수부에 지방 시민구단에서 활약한 현역 프로축구 선수 2명이 사행성 토토 관련 브로커로부터 ‘검은 돈’을 수수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고, 여기에 직접 가담했던 브로커 2명이 곧바로 구속되면서 숨겨진 실체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브로커 중 한 명은 작년까지 K리그 지방 시민구단에서 뛰었던 것으로 알려져 그 충격과 파장은 더욱 커졌다. 상당수 축구인들은 “어차피 터질 일이었다면 제대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면서도 어디까지 수사가 확대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축구 담당 기자들은 작년 여름부터 줄곧 “K리그에 사행성 불법 베팅과 승부조작이 만연해 있다”는 루머들을 접해왔다.
2008년 실업축구 내셔널리그와 아마추어 격인 K3리그에 선수들끼리 짜고 치는 축구 판을 벌이는 승부조작의 실태가 검찰 조사 결과, 실제로 드러난 탓에 기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실제로 풍문들로 시작된 이 같은 사실들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의 측근에게 접촉했지만, 백이면 백 똑같은 답만 할 뿐이었다.
“아, 그런 얘기(K리그에 승부조작 등이 만연돼 있다는 내용)는 나도 여러 차례 들었지만 우리 애(선수)들은 아니라는데.”
하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수록 불미스러운 소문이 잠잠해지기는커녕, 눈덩이처럼 크게 부풀었다. 내용은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조직폭력배와 연루설, 사채업자들의 개입 등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여러 지역별 조폭과 자금을 대는 사채업자들이 스포츠 관련 불법 베팅을 놓고 이권 다툼을 벌인다는 흉흉한 소문들도 계속 나왔다. 승부조작과 베팅에 참여했던 특정 선수들이 조폭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신나게(?) 얻어터진 뒤 간신히 숙소로 복귀했다는 등 악성 소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충격을 더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다시 찾아온 2011시즌. 유감스럽게도 리그 개막과 동시에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기에는 스타플레이어들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이미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유일한 합법 단체인 스포츠토토와 연계해 관련 교육을 2차례나 시행한 이후였다. 소문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치켜세웠던 작년 말과 올 시즌 개막 직전에 연맹은 각 구단들을 순회하며 불법 베팅의 실태와 현실을 교육하며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에 가담할 경우에는 벌금 5000만 원과 영구제명 등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각서까지 연맹 등록 선수들 전원과 각 구단 직원들로부터 받아냈다. 나름의 자정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각서’는 말 그대로 ‘각서’일 뿐. 일부 양심이 없는 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이미 각 구단들도 승부조작 등 루머에 휩싸였던 선수들을 발견해 방출과 벌금 및 출전정지 등 자체 처분을 내렸으나 너무 많이 확대된 상태였다.
올해 관련 내용들에 대해 크게 불이 붙은 계기는 최근 터졌던 전 인천 골키퍼 고 윤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신의 차량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일산화탄소에 질식해 숨졌다는 사인은 나왔지만 사망하기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고 윤기원의 아버지 윤희탁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들의 사인은 (자살로) 판명됐지만 멀쩡했던 아들을 죽음까지 몰고 간 실체는 꼭 알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이를 놓고 축구계에는 흉흉하게 몰아치고 있는 승부조작과 윤기원의 죽음이 연관돼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윤 씨에게 관할 경찰서는 “다른 방향으로 수사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다른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윤기원의 컴퓨터 인터넷 접속 기록과 휴대폰 및 메시지 내역, 통장 계좌 등을 놓고 복원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인 가운데 1차 수사 결과는 6월 초 발표될 예정이다.
창원지검은 일단 이번에 붙잡힌 브로커 2명과 프로선수 2명에 대한 수사만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군 팀 상주 상무의 전 국가대표팀 공격수 김동현도 소환돼 수사를 받으며 K리그 전체 구단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창원지검 수사 브리핑에서 나왔던 내용이 흥미롭다.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김동현은 승부조작에 직접 관여하는 게 아닌, 사행성 불법 베팅 브로커와 선수들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동현은 상주에서 뿐 아니라 선후배 등 인간관계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있어 관련성을 살피기 위해 소환했던 것”이라고 발표했다. 선수들을 포섭해 돈을 전달하는 등 브로커를 돕는 또 다른 형태의 브로커였던 셈이다.
소환돼 조사를 받은 김동현 외에 검찰에 체포돼 구속된 프로선수 2명 중 한 명의 특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각각 1억 2000만 원과 1억 원 가량의 거액을 브로커로부터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2명의 포지션은 각각 골키퍼와 미드필더다. 올해 처음 K리그에 참가한 시민구단의 골키퍼 S는 컵 대회 4경기에서 11실점을 했다. 결과도 물론 좋지 않았다. 또 다른 시민구단의 미드필더 P는 프로 4년차라는 경력에 비해 출전 횟수는 대단히 초라하다. 이를 토대로 축구계에는 검찰 조사 결과와는 무관하게 각기 다른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출전할 가능성이 충분한 S는 직접 승부조작에 가담했고, 경기 자체에 출전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던 P는 승부조작에 직접 가담할 수 없는 대신, 검은 돈을 전달해주는 임무를 담당했다는 내용이다. 김동현이 선수 포섭과 돈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과 닮은꼴이다.
실제로 해당 구단들의 자체 조사 결과 S와 P는 팀 동료들과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각각 2명씩 접촉했는데 S가 속한 구단에서는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으나 아직 명확한 결론을 짓지 못했고, P가 속한 구단은 룸메이트와 또 다른 선수와 개별 미팅을 통해 “P로부터 ‘돈을 줄 테니, 어떻게 어떻게 뛰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딱 잘라 거절했고, 오히려 ‘프로선수답게 그라운드에서 뛸 때는 항상 최선을 다할 테니 다시는 무리한 부탁을 하지 말라’는 명확한 의사를 전달했다고”는 얘기를 접했다고 한다.
구속된 브로커 중 한 명도 전직 프로선수 출신이었는데, 풍문에는 이 브로커가 몇몇 언론들에게 “돈을 주면, 충격적인 승부조작 자료를 전달하겠다”는 제보를 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으면서 사태가 촉발됐다는 내용도 있다.
모 구단 고위 관계자는 “언론사에 제보를 미끼로 내걸었다가 본인이 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든 꼴”이라며 혀를 찼다.
고 윤기원의 사건이 일어난 직후 몇몇 스포츠 기자들은 영문 끝자리가 호주를 의미하는 ‘au’로 끝나는 이메일 주소에서 발송된 제보 관련 편지를 받았는데 이 편지 또한 “제보에 따른 대가를 받고 싶고, 가장 많이 돈을 주는 언론사에게만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에 어떠한 선수들이 연루됐는지, 어떤 형식으로 가담을 했는지 등등 흥미로운 내용들을 전달하겠다”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넣을 수 있는 찬스를 쉽게 날릴 수 있다는 이유로 스트라이커가, 쉽게 막을 수 있는 볼을 언제든 실점할 수 있다는 까닭에 골키퍼가 승부조작에 쉽게 연루된다고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검찰에 구속된 P의 경우처럼 여러 형태로 가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연봉 5000만 원 이하 선수들이 쉽게 검은 유혹에 빠진다고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 가담도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축구계에 오래전부터 나돌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국가대표팀을 오르내리는 스타급 선수들도 종종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태에 연루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깜짝 놀랄 만한 네임 밸류 높은 선수들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특수 팀으로 분류되는 지방의 한 구단에서 활약 중인 걸출한 스타들까지 대거 포함돼 있다.
에이전트와 구단 프런트 등 복수의 축구인들은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 참가자들도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연봉이 낮고, 출전 횟수가 적으면 목돈을 만져보기 위해 유혹에 빠지고 높은 연봉에 명성까지 높은 최고 레벨 선수들은 용돈 벌이와 심심풀이로 쉽게 가담하는 경우다. 즉, 생계형 참가자와 취미형 참가자로 구분되는 셈”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찌됐든지 모두가 피해자이기도 하다.
범법 행위를 저지른 몇몇 선수들로 인해 전 선수들이 손가락질과 지탄을 받게 됐다. 유혹 자체를 받아보지 않은 선수들조차 똑같이 매도되고 있다. “속았다”는 팬들의 분노는 당분간 그치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고 윤기원 사건 직후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K리그에 승부조작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했던 그들이기에 상처와 아픔은 더욱 깊어 보인다. 축구 관련 각종 게시판에는 서글픔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국가대표팀도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광래 감독은 항상 실력 못지않게 인성과 인간 됨됨이를 강조해왔다. 혹여 자신이 선발한 선수들 중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이가 없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표팀 관계자는 주변 지인들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정보를 나누고, 꾸준히 사태를 파악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