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희 신세계 회장 | ||
특히 경영참여에 나선 재벌가 여성들은 경영인맥의 판도뿐 아니라 향후 재벌 판도까지 바꾸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재계의 관심이 재벌가 여성들에게 모아지는 또다른 이유다.
사실 1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재계에서 여성파워는 그리 거세지 않았다.
당시 재계에서 여성 경영인을 꼽으라면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등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부인), 대한전선그룹 양귀애 고문(대한전선 고 설원량 회장 부인), 대신증권 이어룡 회장(대신그룹 고 양회문 회장 부인), 울트라건설의 박경자 회장(울트라건설 고 강석환 회장 부인) 등 미망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여성 경영인 수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여성 경영인들이 늘면서 부호 순위에서도 여성들의 이름이 폭발적으로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경제매거진 에퀴터블이 조사한 2004년 한국의 부호 순위를 보면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홍라희 호암미술관 관장, 김영식씨(LG그룹 구본무 회장 부인), 이화경 미디어플렉스 사장(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부인), 조희원씨(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 장녀),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어머니) 등 다수의 여성들이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을 정도이다. 여성의 경영참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재벌가는 삼성가와 롯데가가 대표적이다.
▲ 이부진(왼쪽), 정유경 | ||
삼성가 여인들의 경영참여는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2세부터 본격화되었다. 장녀 이인희씨가 한솔그룹을, 다섯째 딸인 이명희씨가 신세계그룹을 이끌고 있다.
세대가 지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딸들도 하나둘씩 기업경영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12일 삼성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총 4백55명의 승진을 단행하면서 이 회장의 장녀 부진씨가 상무로, 제일모직 부장이던 서현씨가 상무보로 경영진에 합류했다.
삼성가의 특성상 일단 기업경영에 합류하면 장차 독립경영으로까지 이어져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희 회장 2세들의 경영행보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삼성가 여인들은 한국 여성부호 순위에서 이명희 회장과 홍라희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상무보,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인 이윤형씨 등이 1~5위까지 휩쓸고 있다는 점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딸 중에는 큰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한솔그룹의 실제 오너이지만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 아들에게 재산분배를 실질적으로 끝내 부호 순위에는 들지 못하고 있다.
삼성가 여인들 중 이명희 회장의 경우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많지만 경영에서 성공을 거둬 여성계 최고 부호 자리에 올랐다. 2000년까지만해도 2만원대에 불과하던 신세계 주가는 2005년 2월 현재 30만원대에 육박, 재산이 15배나 늘었다.
1943년생인 이 회장은 이화여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79년 신세계백화점 이사로 경영에 참여한 뒤 지난 96년까지 무려 18년간 상무 타이틀을 달고 경영에 참여해왔다. 그러다 지난 97년 부사장으로 직급을 올린 이 회장은 98년 11월부터 회장 타이틀을 달고 있다. 신세계는 그 무렵부터 이마트의 성공으로 폭발적인 매출 신장세를 보였다.
이 회장은 올해를 지난 79년 롯데백화점의 등장으로 2위로 밀렸던 신세계가 서울 충무로 본점 옆에 롯데백화점 본점 규모에 맞먹는 신관을 열어 롯데에 빼앗긴 유통업계 1위를 되찾는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명희 회장의 외동딸인 정유경씨는 현재 조선호텔 이사(프로젝트 담당)로 재직중이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과를 나온 유경씨는 평범한 샐러리맨과 결혼했지만 호텔 경영에 본격 나서 향후 사촌인 부진씨(이건희 회장의 장녀)와 선의의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명희 회장의 성공은 조카인 이부진 상무 등을 자극하고 있는 듯하다. 이건희 회장의 큰딸인 이부진씨는 결혼 뒤 경영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연세대 아동학과를 나와 지난 95년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지난 98년 삼성계열사에 근무하던 샐러리맨 임우재 삼성전기 상무보와 결혼했다. 이후 2001년 8월 호텔신라 기획부 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나서고 있다.
부진씨는 지난 2004년 1월 경영전략담당 상무보로 임원 승진을 한 뒤 올 1월 상무로 승진했다. 직급만 놓고 보면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같은 급에 오른 것. 부진씨의 입사를 계기로 호텔신라는 전면적인 경영진 개편이 뒤따르는 등 그가 ‘실세’ 경영인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삼성은 “(부진씨가) 입사 후 해외 선진호텔과 레스토랑을 벤치마킹해 호텔의 변화와 개혁을 위한 노력을 주도하는 등 호텔 전문 경영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국제적인 감각과 자질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부진씨가 호텔 경영개혁의 차세대 주도세력임을 강조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부진씨가 상무보 승진 1년만에 상무로 승진한 것에 대해 삼성은 “새벽에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며 굉장한 열의를 보이고 있다. 단순히 회장 딸이라서 승진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부진씨의 동생인 서현씨도 경영에 적극적이다. 올해 상무보로 승진한 서현씨는 2002년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전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현대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등 패션업무를 맡기 위해 나름대로 착실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제일모직에 입사한 뒤에도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제일모직의 여성복 라인 개편과 유명 디자이너 영입 등 대기업 여성복 사업부의 핸디캡으로 지적받고 있는 ‘시장 반응에 느리다’, ‘보수적이고 진부하다’는 선입관을 깨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현씨의 남편은 김재열 제일모직 상무. 부부가 나란히 한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
이 회장의 막내딸인 윤형씨는 큰 언니인 부진씨처럼 대원외고를 나와 이화여대를 다니고 있다. 삼성측은 “윤형씨는 지난해 이대 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유학을 준비중이어서 경영참여 시기를 말하긴 이르다”고 밝혔다.
▲ 장선윤 롯데백 이사대우 | ||
지난 2월4일 임원 86명이 승진하는 창사 이대 최대폭의 임원인사를 단행한 롯데그룹에서도 승진자 중 유일한 여성 임원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롯데백화점 장선윤 이사대우.
장 이사대우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외동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큰딸이다.
신영자 부사장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이 있다. 하지만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자녀는 두 딸이다. 장 이사대우는 그동안 롯데백화점의 해외 명품 사업은 1, 2팀으로 나뉘어 있었고 장씨는 브랜드 유치를 담당하는 1팀장으로 근무해왔다.
장 이사대우는 97년 6월 롯데쇼핑에 입사해 2년여간 롯데쇼핑 해외상품팀에서 근무해오다 지난 2000년 유학길에 올라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2002년 6월 롯데쇼핑에 재입사했다.
신 부사장의 둘째딸인 장정안씨는 지난해 5월 결혼하기 전 롯데백화점 잡화팀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결혼 뒤 일단 외부활동은 접은 상태다.
재미있는 점은 롯데가 오는 3월 문을 여는 롯데백화점 본점 옆 롯데애비뉴엘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는 신세계 본점 신관이 문을 여는 오는 8월 이전에 롯데 명품점을 열어 강북 상권의 확실한 기선을 잡는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때문에 명품사업 팀장을 맡고 있는 장 이사대우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애비뉴엘의 성공 여하에 따라 명품점 매출로 강남 착근에 성공한 신세계 강남점의 돌풍을 꺾을 수도 있고, 성장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던 롯데백화점의 매출도 한번 더 상승세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