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와 플랫폼 경쟁력 제고 노림수 분석도…“혁신 아닌 가격으로 승부, 성공 보장 힘들어”
#“‘경쟁도’ 결과에 진출 여부 달렸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9월 ‘은행업 미래 경쟁도 평가’를 진행해 이를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쟁도 평가에서는 은행업의 환경·규제 등 현황과 규제 개선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핀테크·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에 따른 은행업 수익성을 전망하고, 디지털 시대 점포 운영 전략도 모색한다. 인뱅 출범 이후 서비스 제공 실태와 금융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인뱅 신규 진입 필요성도 따진다. 동시에 4대 금융지주의 인뱅 진출 요구도 검토하기로 했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국내 은행업 시장이 변화하는 금융 생태계 속에서 경쟁도가 낮다는 평가 결과가 나오면, 금융지주사들의 인뱅 설립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4대 금융지주는 지난 5월 은행연합회를 통해 금융위에 인뱅 설립 의향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제안서를 보냈다. 금융위 관계자는 “한국금융연구원에 은행업 경쟁력 제고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해 놓은 상태로 연내 평가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며 “어떤 요인을 검토할지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지주사는 현재 인뱅에 지분 투자를 한 상태다. 우리·하나은행은 각각 케이·토스뱅크 주요 주주고, KB국민은행은 카뱅에 투자했다. 투자를 넘어서 직접 인뱅을 설립하려는 배경에는 카뱅의 급성장이 있다. 카뱅은 상장 이후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9월 8일 기준 시가총액은 34조 2547억 원에 달한다. 신한지주(시총 19조 9149억 원), 우리금융지주(8조 815억 원), 하나금융지주(13조 2707억 원), KB금융(21조 7468억 원) 등 4대 금융지주의 몸값은 이에 못 미친다.
카뱅의 성장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대출 서비스를 강화하며 금융권 내 입지를 다지고 있다.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 규모는 6월 876억 원, 7월 1140억 원, 8월 2674억 원으로 급증했다. 고객도 크게 늘었고 젊은 연령대 위주에서 전 세대로 확대됐다. 올 2분기 기준 고객 수는 전년보다 127만 명 증가한 1671만 명으로, 중‧장년층 신규 유입이 많았다. 서비스를 본격화한 2017년 7월 이후 현재까지 누적된 연령별 고객 비율은 20~30대가 54%로 많지만, 올 상반기 신규 고객 중 40~50대 비중이 48%에 육박하고, 60대 이상도 10%였다.
금융지주 입장에서 카뱅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뱅 진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인뱅 진출은 카뱅과 케뱅에 고객을 빼앗기기보다는 기존 고객을 자사 인뱅에 묶어두려는 전략”이라고 전했다.
전략적으로 인뱅 진출 목소리를 내면서 규제 완화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산분리 원칙이 적용되는 금융권 특성상 시중은행은 다른 산업에 진출하기 어렵다. 이 한계를 깨기 위해 은행마다 이종산업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말 시작한 알뜰폰 사업을 올 4월 금융위 승인 아래 2년 연장했다. 신한은행은 연내 앱을 통한 음식 주문 서비스를 선보인다. 이들 사업은 은행법상 진출 가능한 부수업무가 아니지만, 금융위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근거로 규제를 풀어주는 샌드박스 특례를 적용해 허가해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알뜰폰부터 배달 앱까지 은행권에서 활발하게 이종산업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금산분리 규제를 보다 완화해 다양한 신사업에 진출하려는 목적”이라며 “금융지주가 인뱅 진출을 노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뱅과 달리 시중은행이 많은 규제를 받고 있지만, 인뱅에 진출함으로써 규제 완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플랫폼 경쟁력 제고 전략을 다양하게 펼칠 수 있다는 점도 인뱅에 진출하려는 이유다. 은행권이 보유한 앱은 모든 연령층의 고객들이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기능이 많고 무겁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인뱅은 특정 연령층을 타깃으로 색다른 사업 형태를 취할 수 있다. 금융지주는 인뱅은 없는 오프라인 영업점을 보유한 만큼, 인뱅을 지주 내 다양한 계열사의 영업점들과 연계해 시너지를 노릴 수도 있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MZ 세대에 맞춘 인뱅을 설립해 신용등급 확인이나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예적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60~70대를 타깃으로 자산관리 비중이 높은 인뱅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영업 채널과 카테고리로 신규 고객을 끌어올 수 있다”고 전했다.
금융지주가 중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인뱅으로 설정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마다 점포를 줄이는 동시에 온라인과 디지털뱅킹 쪽으로 인프라를 개선했지만, 카뱅의 성장세에 밀리는 형국이다. 오프라인 사업부를 축소해 비용을 절감하고 금리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고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인뱅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혁신 없는 가격 경쟁에 그칠까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의 인뱅 진출을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시장이 과열되면 과당 경쟁이 일어나면서 본연의 목적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이 아니라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시장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결국 인뱅 시장을 소수 플레이어가 독점하면서 추후 경쟁이 사라져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후퇴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진출을 허용해주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이 금융 참여를 통해 기존 금융권에 혁신을 일으켜 달라는 당초 인터넷은행 인허가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며 “거대한 자본을 가진 시중은행들이 인뱅을 만들어서 기존 인뱅과 경쟁 구도를 만드는 것이 금융 산업 경쟁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계열사 등 내부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금융지주가 자회사로 인뱅을 설립하면, 계열사 내 기존 은행과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오프라인 고객이 인뱅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금융지주 안에서 간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로 인해 오프라인 구조조정 속도가 가팔라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카뱅이 성공한 이유는 플랫폼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플랫폼 자체가 약한 금융지주의 경우 인뱅 사업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기존 인뱅과 지주 내 은행 등 양쪽 경쟁을 다 이겨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인뱅 진출로 온라인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기보다는 전망 좋은 투자은행(IB) 시장에 진출하거나 현재 인뱅이 주력으로 하고 있지 않은 혁신 상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에서 이종산업 간 결합을 통해 각자의 경쟁력을 잘 활용했던 사례가 성공 모델인 것을 보면 인뱅 진출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며 “신탁상품처럼 대중화되지 않거나 인뱅이 잘 하고 있지 않는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상 간편 대출, 이종업종과 결합해 서로 다른 경쟁력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서비스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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