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악재 속 홍준표는 턱밑 추격하고…중도 확장보다 집토끼 잡기 올인할 수도
#윤석열, 엎친 데 덮쳤다
설마는 현실이 됐다. ‘한물 간 정치인’으로 봤던 홍준표 의원 지지율은 어느새 윤 전 총장 턱밑까지 쫓아 올라왔다. 홍 의원은 9월 9일 발표된 2건의 여론조사 결과, 보수 후보 적합도에서 모두 선두를 차지하며 약진세를 나타냈다.
일요신문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9월 5일부터 9월 7일까지 사흘간 실시해 9일 발표한 ‘윤석열 홍준표 양자대결’ 여론조사(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 따르면 홍준표 의원은 36.6%를 기록하며 윤석열 전 총장(30.0%)보다 6.6%포인트(p) 앞섰다(관련기사 ‘양당별 양자대결’ 홍준표 36.6% vs 윤석열 30.0%, 이하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리얼미터가 발표한 보수야권 대선후보 적합도(95% 신뢰수준, ±2.2%p)에서도 홍 의원은 직전 조사보다 12.4%p 오른 32.6%로 1위에 올라섰다. 윤 전 총장(25.3%)과는 7.3%p 차이였다. 윤 전 총장의 경우 직전 조사보다 2.8%p 내려간 수치다. 이러한 홍 의원의 약진은 정치권 주목을 이끌어내고 있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일정한 추세를 탄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까지 이에 대해 의미를 실었다. 이 대표는 9월 8일 부산에서 진행된 청년당원·대학생 간담회에서 “요즘은 젊은 세대의 무게추가 어디로 가냐에 따라 후보들의 인기가 굉장히 많이 달라진다. 젊은 세대가 최종적으로 마음을 준 후보가 (그 젊은 세대의) 부모 세대 설득을 통해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 그리고 6·11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당대표로 선출된 것도 2030세대의 바람 덕분이었다는 취지였다.
이 대표 발언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윤 전 총장 지지세가 잠시 주춤한 사이 홍 의원 지지율이 올라가는 흐름이 명확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홍 의원 맹추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윤 전 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윤석열 검찰’이 야당을 통해 여권 주요 인사 등을 고발하려 했다는 요지의 보도가 나왔다. 검찰이 총선에 영향을 주려 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여권의 비난이 터져 나오면서 초대형 이슈로 떠올랐다.
행위자로 지목된 검찰 내부 당사자, 야당 창구로 지목되면서 기자회견까지 연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전혀 아니다” “기억이 전혀 없다”라고 언급, 전면 부인하는 모양새를 나타내면서 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의혹에 대해 검찰의 자체 감찰이 진행 중이고, 시민단체 고발로 공수처까지 나섰다. 감찰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이 강제수사를 포함한 전면적 수사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도 높다.
윤석열 캠프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될 것 없다”면서 태연한 표정이지만 내부 분위기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윤 전 총장 측으로서는 현재 검찰의 주요 의사 결정자들이 윤 전 총장에게 유리한 결정을 해줄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수사가 진행된다면 예측할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특히 수사를 끌다가 경선 최종 국면이나, 본선 막바지에 결과가 나온다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설사 수사를 통해 고발 사주 의혹이 조작된 증거에 의한 가짜뉴스라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수사 기간 중 윤 전 총장이 받아내야 할 당 안팎의 공세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모시킬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출신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고발 사주 의혹을 벗기 위해 윤 전 총장이 기자회견을 했고 본인이 직접 나서 정면 돌파를 잘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에게 호통을 치고 비주류 언론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면서 잘못된 언론관이 그대로 표출되는 등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사주 의혹이 윤 전 총장에게 맞지 않아도 되는 펀치를 너무 많이 맞게 만들었고, 이 펀치 세례가 검찰의 마음먹기에 따라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걱정이 든다.”
#‘노잼’에다 ‘맹탕’ 논란까지
윤 전 총장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1위 후보’의 숙명처럼 반드시 따라붙는 외부적 검증 공세가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어려운 국면을 윤 전 총장 측이 스스로 자초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부자 몸사리기’ 전략에 치중하면서 ‘맹탕’ ‘노잼’이라는 악평이 따라붙었고, 이틈을 홍준표 의원이 파고들면서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지난 6월 정치 참여를 선언한 이후 민생 행보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정치 무대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20시간 노동’ ‘후쿠시마 방사능’ 등 잇따른 말실수가 터져 나오자 전략을 확 바꿨다. 언론 인터뷰나 외부 공개 행사를 크게 줄이는 모습이 감지된 것이다.
윤 전 총장은 7월 말 국민의힘 입당 이후 이준석 대표와 갈등이 빚어지고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두고 당내 대선주자들 간 신경전이 벌어졌을 때도 특유의 직설 화법적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8월 한 달 동안, 그리고 9월 초까지도 이러한 소극적 모습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피로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 “이러려고 정치하느냐”는 등의 비판도 나왔다.
홍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수세적 태도를 보이는 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이라는 신조어를 히트시키면서 딱딱한 윤 전 총장과 달리 재미있는 할아버지 전략으로 2030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다.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을 앞세워 윤 전 총장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홍 의원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잡는 동시에 중장년층의 주목까지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대선 당시 홍 의원이 경쟁 상대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토론회에서 몰아세우는 토막 영상도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재가공돼 퍼지고 있다. 윤 전 총장 측이 2030세대를 겨냥해 기획한 프로젝트인 ‘민지(MZ)야 부탁해’가 기대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2030세대 류호정 정의당 의원조차 9월 6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최근 대선후보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홍 의원을 두고 “앵그리홍 후보는 좀 재밌으신 분이다. 홍 의원의 골든크로스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맞붙었던 지난 대선을 떠올려보면 홍 의원은 그때 ‘홍찍자(홍준표를 찍어야 자유대한민국을 지킨다)’로 효과를 좀 봤다. 홍 의원은 그때 기억을 되살려 이번 선거에 임하고 있다. 다소 무거운 공약 경쟁도 중요하지만 연성 전략, 즉 유권자들이 후보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를 개발해 내야 한다. 이 점에서 윤 전 총장이 밀리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탈출구는 무엇?
위기라는 진단이 내려진 윤 전 총장에게 발등의 불은 역시 고발 사주 의혹이다. 이 사안을 빨리 넘어 국면 전환을 해야 경선은 물론, 본선 승리까지 가능하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윤 전 총장은 일단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9월 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고발 사주 의혹 보도에 대해 “출처와 작성자가 없는 소위 괴문서”라며 전면 부인했다.
국민의힘 법률지원단을 경험한 한 법조인은 “다소 흥분되고 격앙된 모습이 아쉽기도 했지만 ‘나는 항상 탄압받아왔는데 이번에도 또 탄압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지지층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안은 국민의힘이 당 차원에서 좀 더 강하게 방어막을 치고 나간다면 잘 풀릴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이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중도 확장을 앞세워왔지만 이제는 핵심 지지층을 다잡아 어떤 외풍도 막아낼 튼튼한 바람막이 구축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윤 전 총장 캠프 내부에서는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대구·경북(TK)을 비롯해 영남권 민심 잡기에 올인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후보가 ‘만 1주일 대구·경북 상주’를 내세우면서 TK 올인 전략을 쓴 것처럼 깜짝 놀랄 수준의 핵심 지지층 민심 잡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캠프에서 핵심 지지층 접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에 대한 분석 결과다. 두 전직 대통령은 그들의 고향인 TK에서 압도적 지지는 물론, 높은 투표율까지 달성한 추동력을 통해 청와대로 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 있었던 한 전직 의원은 “당시 박근혜 후보는 TK에서 80% 이상 투표해서 80% 이상 득표하자는 목표를 가졌고 성공했다. 이번 대선은 TK 출신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나타났기 때문에 국민의힘은 TK에서 어려운 싸움이 예상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시험날짜가 가까워올수록 아는 문제에 집중하듯이 윤 전 총장도 중도확장 등의 모험적 선거 전략보다는 핵심 지지층 결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당내 다른 대선주자들과의 단일화, 나아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까지 품는 대통합 계획도 염두에 둬야 하고 커진 캠프 크기를 최대한 활용, 전국 각 지역별 메가 플랜이 담긴 공약 개발, 발표도 좀 더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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