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청년’ 이청용을 영국 볼턴 현지에서 직접 만났다. 리버풀 이적설에 대해선 “아니다”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이주연 프리랜서 |
이청용과 인터뷰를 하기 이틀 전에 볼턴 홈구장인 리복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볼턴과 선덜랜드전을 관전할 수 있었다. 이청용은 이날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가 도움과 득점 없이 후반에 교체됐는데, 볼턴은 1-1 무승부에서 인저리타임 때 선덜랜드로부터 역전골을 허용하면서 1-2로 패하고 말았다. 이날 기자 바로 뒤에 앉아서 ‘청용’을 소리치며 열심히 응원을 하던 인상 좋은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자신을 스튜어트 듀어든이라고 소개한 그는 “아시안컵 때문인지 청용이 올 시즌 많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면서 “최근 이적설이 나돌고 있는데 볼턴 팬의 입장으로선 청용이 다음 시즌까진 이곳에 남아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청용을 만났을 때 스튜어트 듀어든의 얘기를 들려주자,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다음 시즌에도 볼턴에 남아 있는 건 확실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긴 시즌을 보냈어요. 시즌 중 아시안컵까지 포함돼서 어느 해보다 시즌이 길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올 시즌을 마무리하는 소감을 얘기한다면?
▲지난 시즌과 달리 올해는 팀이 강등권 위기에 처하지 않아 마음을 졸이면서 시즌을 보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FA컵 4강에서 탈락하며 선수들한테 동기 부여가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마무리하는 모습이 좋진 않은데, 앞으로 두 경기 남았으니까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진 말아야겠죠.
―아무래도 스토크시티와 붙었던 FA컵 4강전이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것 같아요.
▲‘웸블리의 악몽’이라고 한다면서요(웃음)? 그날 따라 부상 선수들이 많아서 팀 전체가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었어요. 선수들을 비롯해서 저 또한 이겨야 한다는 욕심이 앞서다보니 차분하게 경기를 치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선제골을 먹은 뒤 금세 회복이 안 됐어요.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데 대해 경험이 많지 않아 우왕좌왕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우리의 실수보다 스토크 선수들이 너무 잘했어요. 그날은 슈팅만 하면 거의 다 골이 들어가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경기 이후 우리 선수들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어요.
―올 시즌은 ‘체력 안배’라는 차원에서 교체 출전하는 횟수가 많았어요. 감독이 진짜 이청용 선수의 체력 안배를 위해 주전이 아닌 교체 선수로 투입시킨 게 맞나요?
▲감독님께서 절 배려해서 그런 것도 맞고, 좀 더 저한테 자극을 주기 위해 일부러 주전으로 안 내보낸 이유도 있을 거예요. 아시안컵 이후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나 설령 제가 체력이 떨어졌어도 좋은 기량을 보여줬더라면 교체 출전 카드를 꺼내지 않았겠죠. 지난 시즌 대부분 주전으로 뛰다가 갑자기 교체 선수로 뛰다보니 익숙하지가 않더라고요. 후보 선수가 돼보니 그 위치가 얼마나 애매하고 힘든 건지 절감할 수 있었어요. 언제 투입될지 몰라 계속 준비하고 긴장 상태로 기다려야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대표팀 차출 문제로 볼턴의 오언 코일 감독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어요. 선수 입장에선 소속팀과 대표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 됐겠어요.
▲아시안컵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바로 이어진 터키 원정 경기는 좀 문제가 있었어요. 선수 입장에선 아시안컵 때문에 한 달가량 팀을 비웠다가 또 다시 대표팀에 합류해야 하니까 많이 미안해지더라고요. 당시 오른 무릎 부상도 있었던 터라 대표팀에 들어가더라도 뛸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대신 전 스승님이셨던 귀네슈 감독님을 만나서 좋았죠 뭐(웃음).
―지난 아스널전과 박지성 선수에 얽힌 얘기가 있다면서요?
▲아스널전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지성 형이 아스널은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 경기에서 두 차례의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거든요. 나중에 지성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막 뭐라고 하는 거예요. 저 때문에 아스널한테 지는 줄 알았다면서요. 경기 내내 마음 졸이면서 TV를 봤대요. 믿었던 후배가 뻘짓하는 모습을 보니까 열받았던 거죠(웃음). 그런데 형도 실수했잖아요. 우리가 이겨놓으니까 맨유는 아스널전에서 형 실수로 경기에 졌는걸요. 하하.
―맨유와 첼시의 경기 봤어요?
▲당연히 봤죠. 지성 형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그런 형과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정도였어요. 오늘 팀 훈련하는데 선수들이 모여선 저한테 지성 형 얘길 많이 하더라고요. 도대체 박은 뭘 먹느냐? 어제 게임을 보니까 그라운드를 혼자 누비고 다니더라. 박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꼭 알려주라 등등 온통 지성 형 얘기뿐이었어요. 형이 축구하는 걸 보면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유럽파들의 CF 경쟁도 볼만해요. 박지성을 비롯해서 차두리 기성용 이청용 선수 모두 광고 모델로 활약 중이잖아요.
▲지난해 지성 형이랑 같이 CF를 찍은 적이 있는데,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축구할 때랑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두리 형은 워낙 자연스럽게 잘 소화하는 것 같고, 성용이는 솔직히 눈에 확 들어오진 않잖아요(웃음)? 이전에 대표팀에 있을 때 나이 많은 선배님께서 이런 얘길 하셨어요. 자신이 젊었을 때는 CF도 가려서 했는데 지금은 그게 후회가 된다고. 저한테 CF는 닥치는 대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한참 웃었어요.
―혹시 제가 떠올리고 있는 그분인가요?
▲하하 네…, 지금 러시아에서 뛰고 계시죠. 한때 ‘진공청소기’로 축구계를 평정했던 분이요.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겠네요(웃음). 볼턴 선수들과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거 있어요?
▲그런 건 별로 없어요. 전 선수들과 식사하는 건 괜찮은데 같이 클럽에 가거나 사람들 많은 곳에 가서 큰소리로 떠들고 그러는 게 잘 맞지 않아요. FC서울 때도 컵 대회 우승하고 모두 나이트클럽으로 놀러갔지만 저만 휴대폰도 꺼 놓은 채 잠수를 탔었죠.
―누군(박지성) 아무리 수도승처럼 지내도 선수들과 가끔 클럽에 가기도 하던데, 이청용 선수는 여전히 그런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네요.
▲FC서울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 워낙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선수들과 어울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어요. 그런데 경기에 계속 출전하고, 골도 넣고 하니까 선수들이 먼저 다가오더라고요. 만약 제가 게임에 나가지 못하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면 제대로 ‘왕따’를 당했을지도 몰라요.
―문전에서 직접 슈팅을 하지 않고 공을 패스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지난 시즌처럼 문전을 향한 저돌적인 드리블 장면을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어요.
▲경기할수록 패스할 곳이 많이 보여서 그런가(웃음)? 처음에는 정신없이 공만 갖고 뛰어다닌 것 같아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초보운전자가 백미러를 볼 경황없이 무조건 앞만 보고 가는 거. 팀플레이를 하는 것보단 처음엔 개인플레이를 위주로 하다가 적응이 돼 가면서 도움을 주는 데 눈을 뜬 거죠. 골 넣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전 득점할 때보다 도움 줄 때가 더 기분이 좋아요.
―‘소녀슛’이란 별명도 있던데요?
▲그 별명 들어봤어요. 저도 왜 골을 넣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포지션의 특징상 공격수한테 도움을 줘야 하고, 가장 많이 뛰어다니는 자리다 보니 체력적인 부분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저도 경기 끝나고 비디오를 보면 팬들이 왜 그런 지적을 하는지 이해될 때가 있거든요.
―리버풀 이적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네요.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단 1년 더 볼턴에 잔류할 계획이에요. 리버풀이란 팀은 아주 매력적이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그 팀의 감독이 날 얼마나 절실히 원하느냐 여부예요. 스폰서나 뭐 그런 것 때문에 이적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최근 박주영 선수의 볼턴 이적설도 화제였어요.
▲이전에 팀 스카우트가 주영 형에 대해 물어보더라고요. 잘 아느냐면서요. 그런데 주영 형 몸값이 비싼 편이라 우리 팀과는 인연을 맺기가 쉽지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주영 형이 더 좋은 클럽으로 갔으면 해요. 이적보다 지금은 6월에 있을 결혼식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요? 하하.
이청용은 오랫동안 연애 중인 여자친구와의 결혼에 대해선 “한 가지 분명한 건 지성 형보다 일찍 갈 것이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짓궂게 싱글인 박지성을 끌어들였다. 박주영이 먼저 장가를 가고, 이청용마저 상투를 튼다면 유럽에는 박지성과 기성용만 총각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볼턴=riveroflym@ilyo.co.kr
“청용 놓친 풀럼 땅 치더라”
윔블던 테니스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영국 윔블던에는 ‘베이 빌리지’라는 중국식당이 있다. 아가시, 샤라포바, 나달 등 테니스 스타들이 윔블던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찾는 곳이고 첼시, 풀럼 등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들도 이 중국식당에 자주 나타난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은 중국인 마코 씨. 식당업 외에 중국 선수들을 대상으로 축구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그는 이청용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2년 반 전에 이청용의 에이전트인 티아이스포츠 김승태 사장을 통해 청용을 소개받았다. 첫눈에 청용은 축구선수답지 않게 왜소하고 조용하고 착한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선수가 볼턴 입단 후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봤을 때 입이 절로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파워와 터프한 면면을 선보이더라. 청용의 최대 장점은 인성이다. 프리미어리그 스카우트들은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보는데 그런 점에서 청용은 이곳 스카우트들한테 아주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마코 사장은 이청용이 영국 축구 전문 매체에서 뽑은 ‘라이징 스타 50인’에도 뽑혔다고 밝혔다.
“청용은 2010년 영국 인터넷 축구 전문 매체 <풋볼>에서 선정한 ‘라이징 스타’로 뽑혔다. 그뿐만 아니라 2009년 <더타임스>가 선정한 라이징 스타에도 이름이 걸려 있다. 청용의 성실성이 이곳 영국 사람들한테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마코 사장은 이청용이 볼턴 입단 전, 영입을 추진했었던 풀럼에 대한 얘기도 털어놨다.
“풀럼의 수석스카우트인 베리 시멘즈라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청용 얘기를 한다. 그 당시 청용의 왜소한 체격 때문에 입단을 포기했던 그는 청용과 인연을 맺지 못한 게 최대의 실수라면서 매번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마코 사장은 이청용이 중국식당을 찾을 때마다 가재요리와 닭고기를 즐겨 먹는다면서 한국의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과 최근에는 조광래 감독도 자신의 식당을 찾았다며 자랑스러움을 드러낸다.
“청용 에이전트의 소개로 한국을 방문해서 축구 경기를 직접 본 적이 있다. 프리미어리그 열기 못지 않은 한국 사람들의 축구 사랑을 현장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청용 때문에 한국 축구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