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바람이 있고 맑은 물이 있고 천년 세월 동안 변함없이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오랜 세월 전란과 산불, 벌목의 위기 속에서도 온전히 제 몸을 간수해 온 천년 사찰림. 그러나 이 숲은 저절로 보존되지 않았다.
수행자이면서도 밤낮으로 숲을 관리했던 산감 스님들의 수고로움도 빼놓을 수 없다. 단지 숲이 아닌 수많은 생명과 함께 수행자가 배워야 하는 진리의 가르침까지 품고 있는 사찰의 숲. 우리나라 최대의 수행 도량이자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는 봉암사의 숲을 중심으로 송광사, 해인사, 선운사 등 명찰들의 숲을 만나본다.
문경 희양산 자락에 터를 잡은 1100년 역사의 봉암사. 예로부터 수많은 선사들이 지혜를 얻고자 찾아온 수행 도량이다. 명맥은 지금도 이어져 여름이 되면 전국에서 많은승려들이 찾아와 하안거에 들어간다.
하안거는 참선을 통해 바깥 출입을 적게 함으로써 땅에 사는 미물조차 밟지 않으려는 의미가 있다. 해발 999미터 희양산 봉우리 밑에 거대한 바위 밑 작은 토굴에서 5개월 째 홀로 수행 중이라는 만송 스님. 이곳에는 수많은 식구들이 함께 살아 가고 있다. 다람쥐, 나비, 무당 개구리, 쇠살모사까지. 각자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기에 서로 존중하되 간섭하지 않으며 그렇게 오늘을 살아간다.
밤이 되면 천년의 사찰 숲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숲의 밤은 그야말로 전쟁터. 한 달의 보살핌을 끝으로 둥지를 떠날 채비를 하는 올빼미. 그리고 그 나무 밑에서는 멧돼지가 몸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송진 목욕을 한다.
그 뒤에는 뱀, 들쥐, 애벌레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는 밤의 무법자 오소리도 활동을 시작한다. 또 어둠이 찾아오면 거미줄을 뭉쳐 만든 끈끈한 방울을 만든 다음 내려놓고 공기의 파동을 통해 먹잇감이 감지 되면 거미줄을 돌려 사냥을 하는 조용하지만 강한 여섯뿔가시거미까지. 어둠이 찾아오면 그 고요함 아래에서 모든 미물들이 잠들어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활발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행자이면서 사찰숲의 관리자이기도 한 산감 스님들. 야생 동물과 산불 관리는 물론 솔잎혹파리 등의 병해충 예방까지 산감 스님들의 하루가 짧기만 하다. 환경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찰숲에는 고란초 구상나무를 비롯하여 담비, 산양, 삵 등 멸종위기종만 30여 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 생명의 보고인 사찰림. 사찰숲과 같은 오래된 숲이 멸종위기종들의 마지막 은신처인 셈이다.
오늘날 숲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다양한 기능을 뜻하는 '생태계 서비스' 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다. 숲은 지하수원을 높여주는 기능, 산사태 등을 방지해 주며 동물들의 서식지 역할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기후 위기 시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생산하며 산림치유에 이용되는 등 다양한 공익 기능들도 수행한다.
이토록 수많은 생명들을 품어내고 사람에게도 곁을 내어주는 사찰림의 올바른 보전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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